2020년 7월 5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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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는 반드시 통계가 있었다
채경기
광주시 법무담당관

  • 입력날짜 : 2019. 12.10. 19:26
어느 날 사무실 책장을 정리하면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1918년 일제 강점기 때의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사본이었다. 그 책을 한 장씩 넘기면서 암울했던 그 시절, 설움으로 가득찼던 선조들의 모습을 회상해 보았다. 연보에는 인구자료만 있었는데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은 일본인을 내지인(內地人), 우리나라 사람은 조선인(朝鮮人)으로 표기해 외국인 취급을 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서글픈 대목이었다.

그 당시 광주와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전라남도 행정구역은 목포부(지금의 목포시)와 광주군(지금의 광주광역시), 제주도를 포함한 22개 군·도로 이루어졌고 약 185만명이 살았으며 대부분 목포에 인접한 무안군과 나주군, 제주도에 약 25%가 살고 있었다. 광주는 지금과 면적으로 보나 모든 환경면에서 다르지만 그 때 광주군의 인구는 내지인 3천791명, 조선인 8만706명, 지나인(支那人, 중국인) 56명, 기타 외국인 34명으로 총 8만4천587명이 살았고 전라남도 인구의 4.6%에 해당한다. 이후 광주는 해방직후인 1949년도 13만명에서 새마을운동 시작 전인 1960년도에 31만명, 밀레니얼 세대가 시작되는 1980년대에는 73만명으로 증가하여 21세기에 들어서면서 138만명으로 급속히 증가하였고 현재는 149만명에 이르고 있다.

1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많은 역경을 이겨내면서 경제도 성장했고 인구도 크게 늘었다. 뒤돌아보면 금모으기, 고철모으기 등을 통해 IMF를 이겨낸 국민이 아니던가! 지난 7월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생산에 필수적인 품목의 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와 8월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킨 일이 있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힘없이 짓밟힌 그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나로 힘을 모아 ‘NO JAPAN’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일본제품과 일본 관광 불매운동 등을 통해 일본 경제를 압박해 휘청거리게 했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의하면, 이로 인해 일본 경제성장률이 0.1% 포인트 하락하고, 고용률이 저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못할 것 없는 우리 국민, 특히 광주 시민들은 현재 광주가 추진하고 있는 광주형일자리, 인공지능(AI), 미래 자동차 산업, 소상공인 전통시장 활성화, 공기산업 등 많은 일들을 이뤄 내는 선도도시로서 광주를 대한민국의 미래로 이끌어 낼 것이다. 이 일의 성공을 위해 많은 통계자료들이 뒷받침할 것이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통계는 우리 곁에 밀접하게 다가온다. 생활 속에서 함께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통계는 반드시 필요한 자료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많은 통계자료가 수록돼 있는 통계청 사이트인 ‘KOSIS 국가통계포털’을 소개하고자 한다. 고용, 물가, 복지, 교육, 주택, 교통, 금융 분야 등 주제별 통계와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등 기관별 통계, 지방지표 통계는 물론, 과거 및 중지된 통계까지 수록돼 있고 국제통계와 북한통계까지 알 수 있는 많은 자료들이 내장돼 있다. 시민들이 통계를 알고자 할 때 종종 시청과 구청 통계부서로 연락하여 통계자료를 얻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통계자료가 수록돼 있는 ‘KOSIS 국가통계포털’을 이용한다면 언제든 원하는 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고 활용만 잘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인터넷에서 KOSIS로 검색해 한번 활용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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