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0일(금요일)
홈 >> 특집 > 광주문인협회 문학마당

[문학마당]농부의 마음 - 수필 신중재

  • 입력날짜 : 2020. 08.31. 18:19
아침에 주말농장을 갔다.

장마가 계속되어 며칠 동안 가보지 못했다. 고추가 제대로 자라고 있는지 궁금했다.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까무러치게 놀랐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엊그제까지도 그렇게 싱싱했던 고추나무가 벼락 맞은 나무처럼 말라 비뚤어진 고추만이 빨갛게 달랑거렸다. 고춧대가 땅에서부터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었다. 주인을 부르며 몸부림 친 흔적이 보인다. ‘고추들아! 미안해! 얼마나 힘들었니?’ 누가 볼까봐 빠르게 고춧대를 뽑기 시작했다. 아내는 남아있는 고추라도 따야 한다며 죽은 자식 만지듯이 얼리면서 억지로 말라 빨갛게 쭈그러진 고추와 싱싱한 것을 추려서 따기 시작했다.

속상해 죽겠는데 아내가 서운함을 털어놓는다. “당신이 비료를 많이 뿌린 탓이 아닐까요?” 두 번째 열무 씨를 고추 고랑에 심을 때, 복합비료를 몇 줌 뿌리고 계분퇴비를 뿌렸다. 열무는 하나도 싹트지 않았다. 싹이 나와도 농약을 뿌리지 않으니 눈 깜빡할 사이에 벌레 밥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고추 고랑에 풀도 나지 않게 하고 부드러운 잎을 얻기 위해 열무 씨를 뿌려 작황이 좋았다. 두 번째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비료 기운이 고추 고랑에 잠겨 그 독으로 죽은 것일까? 계속된 장마로 물 빠짐이 좋지 않았던 탓일까?

옆 도랑을 임대해 채소를 재배하는 A씨는 “사장님은 얼마나 농사를 많이 지어 보셨으면 채소를 이렇게도 잘 기르세요? 이런 큰 가지는 내 생전 처음 봅니다. 생으로 가지포를 떠서 잡숴 보세요. 너무 맛있을 것 같아요. 열무도 밭고랑에다 그렇게 잘 재배하시고 청양고추도 최상품입니다.”라며 칭찬한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원래 농촌에서 살다보니 조금 지어 본 것이죠. 다 하느님이 길러 주시지 않겠어요.” 그러면서도 나는 뽐냈다. 그 분 밭도랑의 감자재배는 형편없이 풀만 길렀고 고추 농사도 엉망이었다. ‘이 부근 밭에서는 내가 최고의 채소를 기를 거야!’ 고추밭 고랑에 길렀던 열무는 너무 많아 이웃들과 나누는 기쁨도 맛보았다. 무공해의 열무김치를 맛있게 담가 자식들에게도 부모의 정성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이 황당한 꼴을 보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이번 기나긴 장마로 논밭의 작물을 잃고 인명피해며 재산피해가 전국으로 엄청난데 이런 것쯤이야 잊읍시다. 금방 가을무를 뿌리면 되니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장마 때 고추 고랑에 물을 뺐어야 했는데 방심한 탓이오. 고추는 열대식물이라서 두둑을 높게 해서 물 빠짐을 좋게 해야 하고 장마 때에는 고춧잎을 가리기 위해서 비닐을 덮는 농가도 있답니다. 그런 수고를 하지 않은 대가를 치른 것 아니겠소.”

아내가 위로해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따온 고추가 세 봉지나 된다며, “냉장고에 넣어 두면 오랫동안 양념감으로 충분할 것 같소.” 하며 아내는 흡족해 했다. 집에서 기르던 반려견이 죽으면 부모가 돌아가신 것처럼 장사 지내며 우는 사람들이 있다더니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아침 꿈속에서 신병으로 신음하는 친구가 보이더니 고추가 대신 죽다니, 이상야릇했다.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잰다./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
외로운 별 빛도 그 안에 스몄네./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었네./세상의 노래가 그 안에 울리네.
쌀 한 톨의 무게는 생명의 무게./평화의 무게./농부의 무게./세월의 무게.’

‘쌀 한 톨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란 노래다. 쌀 한 톨의 무게는 0,02g밖에 되지 않지만 그 한 톨이 생산되기까지 겪을 농부들의 수고로움에 머리 숙여진다. 오늘 아침, 나 같은 황당한 꼴을 농부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얼마나 많이 겪을까?

어제 저녁에는 내 평생 처음으로 경험한 폭우였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인가? 아침에도 천둥을 동반하며 가슴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늘을 가를 것 같은 번개에 마음이 찢어진다. 창가에 빗방울이 세차게 내리친다. 오늘은 또 전국에 얼마나 많은 비로 피해를 입힐까? 갈수록 급변하는 기후현상에 우리들은 어떻게 적응해 가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다.

‘서구청’의 호우경보로 ‘영산강 범람 위험, 서창동 영산강 침수위험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은 지금 즉시 서창동 주민센터로 긴급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코로나 19의 중대본 문자들을 비롯한 지자체들의 계속되는 안전문자, 긴급재난 문자는 우리들의 일상을 얼룩으로 물들인다.


<신중재 약력>
▲전 서광초 교장, 광주시 장학사 역임
▲2016 수필문학 등단, 수필문학, 한국수필가, 징검다리수필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광주시미술대전 서예초대작가, 가톨릭신문사 명예기자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