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1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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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佛日庵) - 수필 장봉화

  • 입력날짜 : 2020. 09.14. 19:26
순천 송광사 불일암을 찾았다. 고려시대 자정국사가 창건하여 자정암으로 불리었다. 몇 차례 중수를 거듭했지만 6·25 전쟁으로 퇴락하여, 1975년 법정스님이 중건하면서 불일암으로 불리며 스님의 명성만큼 유명세를 타게 된다. 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종교를 초월하여 각박한 시대와 황량한 가슴에 윤기를 더해 주었다.

스님은 세속의 명리와 번잡함을 피해 이곳에 칩거하여 글로 세상과 소통하며, 청빈의 도를 실천하셨다. 낮고 부드러운 가르침이 불일암 곳곳에 숨어 있다. 스님이 떠난 지도 수년이 흘렀건만 그 온기와 감동은 여전히 그대로다. 주차장에서 불일암까지는 약 40분 정도 약간 가파른 길을 오른다. 길가에는 민들레와 씀바귀, 방가지똥, 소리쟁이들이 자라고 있다. 개울에는 개구리미나리가 노랗게 피었다. 어두운 숲길을 따라 걷는다. 법정스님이 매일 걸었던 무소유길이다. 표지에는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 그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라. 그래서 당신의 인생을 환하게 꽃피우라’라 안내되었다.

종교는 다르지만 스님의 거의 모든 저서를 사서 섭력하여 스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스님은 어느 해 난초 두 분을 정성껏 길렀는데 실수로 그만 죽어버렸다.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게 아닌지 곧 반성하고 무소유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스님은 소유 관념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다고 충고한다.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게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라고 한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어부들은 호수나 강 또는 바다에서 필요한 만큼의 물고기만 잡아 매일을 살아간다. 선진국에서는 무지하게 많이 잡아 과식하고 남으면 버린다. 편리한 생활을 추구하여 제품을 스티로폼으로 포장한다. 쓰고 남은 쓰레기와 포장지는 지구를 오염시킨다. 무소유 정신이 절절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사람은 모든 복을 다 가지지는 못한다. 누구나 하나 이상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한다. 재산을 많은 사람을 보면서 필요한 것만 소유하면 된다는 법정 스님을 생각하곤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만족하려고 노력한다.

키 낮은 대나무 사립문이 한쪽 문만 열고 들어가면 컴컴한 조릿대 숲 터널을 지나 한발 한발 디디면 불일암에 이른다. 스님께서 재배하던 텃밭에선 작약꽃이 고요한 미소로 환영하였고 상추, 쑥갓, 머위, 가지, 오이 등이 신선처럼 자라고 있었다. 스님이 말년에 살던 집 앞에는 쓰시던 의자와 책이 놓여있고 자그마한 스님의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스님의 가족처럼 느껴졌고 스님을 만난 것 같았다. 잠시 스님을 우러러 보며 상념에 잠겼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고 탁자 위에는 큰 주전자와 컵도 준비해 놓았다. 물 한 컵을 들이켰다. 배속까지 시원하고 정신이 맑아진다. 후박나무 아래 스님께서 잠들어 계신다. 묵념을 올리면서 스님을 그리워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고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어디 있는가? 모두 한 때일 뿐, 그러나 그 한 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스님의 말씀이 머리에 영상으로 나타나고 일갈하시는 말씀이 선명하게 보인다.

조용히 돌계단을 오르는 내 앞에 ‘정진 중, 묵언’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고요와 평화가 깃들어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무하도록 간결하다. 그 동안 삶은 크고 작은 소유욕으로 점철되기 쉽다. 침묵만이 감도는 불일암 마당에서 스님을 만나니 내면이 고요해지고 텅 빈 상태를 갈구한다. 무(無)가 아니라 무궁무진한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空)의 상태는 어떤 것일까. 나무도 묵언수행 중이다.

나이를 먹었으니 말을 줄이고 조심해야 하겠다. 사유와 성찰로 묵언수행을 실천해야 하겠다.


<장봉화 약력>
▲ 한국인 문학(2009), 월간 수필문학(2017) 등단
▲한국수필문학회, 세계한국인문학회, 광주수필문학회, 징검다리문학회, 광주문인협회 회원
▲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는 학교경영’(2003), ‘어떻게 하면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을까?’(2010), ‘공부하는 즐거움·보람 있는 인생’(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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