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1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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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
임미란
광주시의원

  • 입력날짜 : 2020. 09.22. 17:48
고사리는 잎사귀의 어떤 부분을 보아도 전체의 모습과 똑같다. 부분의 전체와 같은 모습을 ‘자기 닮음’이라고 하는데 카오스 이론에서는 이를 ‘프랙탈’이라 한다.

20세기 과학혁명을 촉발시킨 노벨상 수상자이자 ‘열역학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과학사상가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은 사회적 행동을 하는 곤충과 인간의 행동에 ‘프랙탈’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개미의 예를 들어 입증한 바 있다.

한 집단의 개미는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른 개미로 나뉘고 게으른 개미집단도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른 개미로 양분 되며, 게으른 개미가 부지런해지기도 하고, 부지런한 개미가 게을러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프리고진’은 이 같은 사실을 사람들의 행동에 대입해, 각자의 행동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이를 해석해보면, 각자가 모여 만든 사회나 국가는 성원들의 상호작용에 따라 좋게도 되고 나쁘게도 된다는 것이며, 결국 사회나 국가는 나의 모습이고 반대로 나의 모습이 사회나 국가의 모습인 것으로 풀이된다. 작금의 우리사회 현실을 보면 모두가 상대 탓에만 열중하고 내 탓으로 돌려 나부터 바로 잡고자 하는 경우는 드물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자영업자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고통을 강요받은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위기극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나온 시대는 신 대신 인간이 이성을 앞세워 인간의 삶을 계몽하려고 했지만 그 같은 이성과 계몽은 결과적으로 비이성과 역 계몽을 자초하고 말았다. 과학의 악용으로 폭력과 전쟁에 의한 살상, 소수의 의한 다수의 지배,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문제 등이 그 결과다.

군대, 학교, 대기업, 대량생산, 세계 최고 등 규모와 속도 경쟁을 통한 보여지는 외형만이 최고의 선이요 미덕이었다. 과학과 기술이 만든 문제는 한 단계 더 심오한 과학과 더 나은 기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유행처럼 번져 있다.

우리는 잘못된 관리를 해결하는 방법은 더욱 더 적극적이고 더 많은 양의 관리라고 여기고 있다.

이는 마치 오염된 강을 되돌리는 길은 더 강력하고 많은 비용이 투입된 합성세제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과 같은 이치다.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쌓고 더 많은 과학과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억누르려고 하는 것은 그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 없이 가속페달만 더 세게 밟으면 모든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태국에는 오랜 역사에 걸쳐 만들어진 ‘쿨롱’이라는 운하가 있었는데 이 운하들은 전국을 바둑판처럼 교차하며 뚫려있어 사람과 물자가 운하들을 따라 자유롭게 이동 했다.

건기에 몇몇 마을로 가는 운하가 끊기기도 했지만, 정기적으로 잠시 고립되는 상황에 맞추어 사람들은 긴 휴일을 명상과 축제로 누렸다고 한다.

그런데 태국 정부에서 효율적인 교통 정책을 위해 운하를 메우고 포장도로를 깔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어 훨씬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것을 기대했다.

태국에서 포장도로와 자동차의 등장으로 강을 이용한 이동이 완전히 없어지고 집집마다 하나씩 보유하고 있던 맵시 좋은 볏단보트를 타며 누리던 기쁨과 독립성을 박탈당했다.

뿐만 아니라 방대한 소음과 오염물질 자원의 대량 흡수 등 많은 문제들이 나타났는데 이러한 문제들을 덮어두고 진정한 발전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까?

근자에 대한민국에서도 사회적 갈등과 반목으로 혼란이 크게 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급한 불은 일단 끄고 보는 것이 상책 일진데 우리는 가장 시급한 ‘코로나19’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각자 스스로 생활양식의 변화를 가져야 할 것이다.

비이성과 역 계몽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에 입각해 태동하고 있는 생활양식의 새로운 제안이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통한 2045년 광주시 에너지 자립도시 실현 등 이른바 ‘광주형 그린 뉴딜’이라 생각한다.

작은 물방울 하나 작은 모래알 하나가 모여 망망대해가 되고 태산에 이르듯, 작고 하찮아 보이는 개인의 실천이 끝을 알 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단초가 된다.

계절은 세상과는 무심하게 흘러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쌀쌀함이 제법 느껴지는 가을이 왔다. 우리 모두가 상생하는 길은 상대가 아닌 바로 나부터 변하는 것이며, 작지만 큰일은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코로나19’가 지구촌에 던지는 교훈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국가와 국가가 각각 남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얽히고 설키어 있어 나 혼자가 아니다. 내가 곧 우리의 모습이며 우리가 곧 나의 모습인 것이다. 시인의 표현처럼 “북풍이 스쳐간 자리에도 봄꽃이 피고, 지진이 지나간 자리에도 지하수가 샘솟는 희망”을 품고 뚜벅뚜벅 함께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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