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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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 깊은 곳에 향불이나 피우고 싶어라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390)

  • 입력날짜 : 2020. 10.27. 18:16
下仙巖(하선암)
추사 김정희

깊숙한 그늘진 곳 골짜기 행랑 같아
유유히 흐른 물에 해와 달이 떠도는데
흰 구름 먼지 없어서 향불이나 피우리.
陰陰脩壑似長廊 流水浮廻日月光
음음수학사장랑 유수부회일월광
一點緇塵渾不着 白雲深處欲焚香
일점치진혼불착 백운심처욕분향


암자를 찾거나 정자를 찾아 시문을 음영하면서 자연을 즐기는 선현들의 시상을 많이 만난다. 스님이 도를 깨치는 곳이기도 하지만 온갖 정세에 시달리다가 암자를 찾아 자연과 벗하면 더없는 휴식이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친지들과 암자나 정자를 찾아 막걸리를 나누면서 시문을 주고받은 마음은 더 없는 풍류였을 것이다. ‘그늘진 깊숙한 골짜기는 마치 긴 행랑만 같은데, 흐르는 시냇물에 해와 달이 떠돌고만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흰 구름 깊은 곳에 향불이나 피우고 싶어라(下仙巖)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68-1856)로 조선 후기의 문신, 실학자, 서화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유배에서 풀려난 후, 안동 김씨가 득세하던 때라서 결국 정계에 복귀하지는 못했다.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하면서 학예와 선리에 몰두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그늘진 깊숙한 골짜기는 마치 긴 행랑만 같은데 / 흐르는 시냇물에 해와 달이 떠돌고 있어라 // 검은 먼지가 한 점도 전혀 붙지도 않고 있는데 / 흰 구름 깊은 곳에 향불이나 피우고 싶어라]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하선암을 보며]로 번역된다. 하선암은 충북 단양팔경의 하나다. 삼선구곡으로 불리는 심산유곡의 첫 경승지로 3층으로 된 흰 바위는 넓이가 백 여척이나 돼 마당을 이루고 있다. 그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렇게 얹혀있는데, 그 형상이 미륵 같다고 해 ‘불암’이라고 한단다. 선암계곡의 3경인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중의 하나다.

시인은 이와 같은 유서 깊은 단양팔경의 하나인 하선암을 찾아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늘진 깊숙한 골짜기가 길어 마치 행랑 같아서, 흐르는 물에 해와 달이 떠돈다고 했다. 골짜기를 긴 행랑 같다고 했거나 흐르는 물에 해와 달이 떠돈다는 시적인 상상력은 우둔한 것 같으면서 예민한 감수성을 보인다.

화자는 시적인 상관물인 하선암의 모양을 더 큰 모습으로 상상해 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검은 먼지 한 점까지도 전혀 붙어 있지 않아서, 흰 구름 깊은 곳에 향불이나 피우고 싶다고 했다. 하선암과는 전혀 다른 상관물을 대두 시켜도 조금도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다는 밑그림이다. 시는 낯설게 하기를 잘해야 비유의 큰 덩치가 붙는다는 실증을 보이고 있다.

※한자와 어구

陰陰: 그늘지고 그늘지다. 脩壑: 깊숙한 골짜기. 似長廊: 긴 행랑과 같다. 流水: 물이 흐르다. 浮廻: 떠돌다. 떠돌이가 되다. 日月光: 해와 달의 빛깔. // 一點: 한 점. 緇塵: 검은 먼지. 渾不着: 흐려서 붙지 않다. 白雲: 흰 구름. 深處: 깊은 곳. 欲焚香: 분향을 하고자 하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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