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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으로 간다 / 전동호
전동호
전남도 건설교통국장

  • 입력날짜 : 2020. 11.30. 19:15
전동호 전남도 건설교통국장
馬韓(마한), ‘말의 나라’인가? 알 수 없다. 우리의 소리를 한문으로 변환시킨 고대 중국의 역사 기록이기 때문이다. 오호십육국시대 서진(西秦) 진수(陳壽·233-297)의 ‘삼국지 위지동이전’과 송나라 범엽(范曄·398-446)의 ‘후한서 동이열전’에 나온다. 위치와 이름, 성곽이 없는 산과 바다 사이 초옥토실에 살며, 누에를 쳐서 면포로 만든 두루마기를 입고, 가죽신을 신고, 상투를 틀며 지게를 사용하고, 북 낙랑과 남 왜에 접한다고 했다.

그들을 찾아간다. 갈대꽃이 더 희어가는 옛 금천, 영산강변에도 가을이 지나고 있었다. 먼저 점심 길이다. 1964년 이래 똑 같은 맛으로 승부하는 구진포 ‘신흥장어’ 집을 택했다. 멀지 않아 이파리를 거의 떨군 반남(潘南) 뜰 고분 옆으로 고즈넉한 건물이 들어온다. 국내 첫 풍광이라며 2013년 11월 문을 연 국립나주박물관이다. ‘신령스러운 빛 영광’ 특별전과 마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웃음을 주는 ‘호자’와 홀로그램까지, 은은하고 화사하면서도 수려하기까지 하다.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더하게끔 자전거 길을 연결하고 전봇대는 보이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해진다.

마한은 나라 이름이 아니다. 한강 서남부에서 1만호부터 수천 호의 국읍주수(國邑主師)를 취하던 54부족연맹체였다. 일난국, 불미국, 구해국, 막로국, 그리고 졸본부여 온조계열의 십제(十濟)까지 포함됐다. 이후 백제(百濟)가 몽촌토성, 한성에서 웅진(공주), 사비(부여)로 세력을 확장하자 싸움은 싫다며 고인돌 밭이던 영산강유역에서 삶의 터를 이어갔다. 500여 분묘에 흔적을 남겼지만 1천500여 년을 지나며 대다수가 도굴되고 만다. 그래도 아직은 바른손을 기다리는 땅속이 더 있을 것이다.

영산강은 예전처럼 신선봉 용소에서 발원해 서남부 140여㎞를 돌아 흐르며 기름진 평야와 생명을 공급하고 있다. 그 시절에는 하나 더, 서호강을 만나 바다의 시종(始終)이 되고 포구의 중심 도포(都浦)를 열며 외부로 나갈 수 있었다. 그 연안을 따라 나주 신촌리와 복암리, 영암 내동리 고분에서 100여년 전부터 금동관과 용신, 새발문양토기, 봉황무늬고리자루칼, 독널, 유리구슬 등이 나왔다. 특히 아파트형 다장(多葬) 방식은 고구려와 백제의 석곽, 신라의 적석목관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국보 제295호 금동관은 ‘山’모양의 신라 형식과는 다른 복잡한 풀꽃 모양을 띠며 더 오래됐다고 하면서도, 신촌리 고분은 ‘백제가 공주 도읍 시기에 영산강유역을 다스리던 수장의 묘’라는 설명이 많다. 이렇게 백제에 묻혀있는 현실이다. 김부식(1075-1151)의 삼국사기에 근거한 고대사 때문이다. 거기 ‘신라본기 제1,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에 38년, 호공에게 명하여 마한을 예방케…’라 했고 ‘백제와 고구려본기’에도 나오지만 시기적인 차이가 100여년을 넘으며 신뢰를 잃고 있다. 일연(1206-1289)의 삼국유사에도 등장하지만 그가 보았던 고기(古記)는 더 이상 없다.

그래서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고 했는가 보다. 그 시대의 해석이라는 거다. 삼국 이전부터 이 땅에 살던 옥저와 동예, 삼한(마한, 진한, 변한) 당시의 기록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오늘날의 역사는 ‘진한은 신라, 변한은 가야, 가야는 신라로 다시 병합’되며 삼국을 통일한 힘이 됐다는 것이다. 가야문화권은 그렇게 탄생했다. 영산강유역 고대문화권으로 시작한 마한은? 일찍이 1천여 년 전에 최치원은 환인의 아들 환웅, 단군과 기자조선을 이으며 고구려의 근간인 큰 나라였다고 했다. 그럼 대한(大韓)도 거기서 왔는가? 늘 경계를 넘는 융합과 비정(比定)이 필요하다. 일시적인 권력에 취해 지역 편가르기를 하고 지식의 한계에 얽매이진 말자는 거다.

우리의 과거와 오늘, 내일을 여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마한은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를 이끌며 6세기 중엽까지 이어오다 백제에 전부 흡수되지만, 후삼국을 거치며 918년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한 해상세력으로 이어진다. 그들의 모습을 더 볼 순 없을까?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박물관과 고분이 가고 싶은 섬으로만 남지 않게, 더 쉽게 찾아서 즐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필요한 예산을 더하면서, 우리 것이 귀한 것이란 걸 보여줘야 하는 국가의 의무다. 국민은 무엇을? 각자의 생각, 재능과 재력을 나눌 수 있는 길을 열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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