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0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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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경남 합천 ‘남명 조식 선비길’
경상우도 대표하는 남명 선생 체취를 따라 걷다

  • 입력날짜 : 2021. 01.05. 19:17
뇌룡정 앞에는 용암서원이 있다. 용암서원에는 남명 조식선생이 제향돼 있다.
조식선생이 태어났던 삼가면 외토리 토동마을에는 남명의 생가터가 남아있다.이 생가터는 남명선생이 태어나 5살 무렵 한양으로 이사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경상좌도에 퇴계 이황이 있었다면, 경상우도에는 남명 조식이 있었다. 조선 중기 영남학파의 거봉으로 불렸던 퇴계와 남명은 같은 해에 태어났다. 연산군 7년(1501) 퇴계는 예안현(지금의 안동)에서, 남명은 삼가현(지금의 합천)에서 태어났다.

남명 조식 선생이 태어나고, 한동안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쳤던 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는 남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옛날 삼가현청이 있었던 삼가면소재지에도 삼가현의 자취를 남긴 옛 건물들이 남아있다. 합천군 삼가면을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양천강이 삼가면소재지와 남명유적지를 이어주고 있다.

오늘은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남명유적지에서 삼가면소재지로 이어지는 하천길을 따라 이어지는 ‘남명 조식 선비길’을 걸으려고 한다.

산청군 생비량면을 지나면 경남 의령 땅이다. 의령군 대의면소재지를 지나자마자 양천강을 건너게 되는데, 의령군 대의면에서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로 건너는 다리가 바로 남명교다. 다리 이름부터가 조식의 호를 따서 ‘남명교’라 했다. ‘남명 조식 선비길’은 남명교에서 시작된다.

남명교에 서 있으니 곡선을 그리며 흘러오는 양천강이 낮은 산줄기와 어울리고, 강변으로 좁지 않은 농경지가 펼쳐진다. 남명교에서 도로를 따라 200여 m 정도를 걸으니 수령 5백년이 넘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마을을 지키는 수문장마냥 근엄하게 서 있다. 느티나무는 남명 선생이 자라던 시절부터 이 자리를 떠나지 않았으니, 이 나무야말로 남명유적지를 지켜온 산증인이다.

느티나무 바로 옆 길가에는 외토리 쌍비가 있다. 비각 안에 효자비와 백비가 나란히 서 있어 쌍비로 불리는데, 오른쪽에 있는 비가 풍화로 글씨가 마모돼 백비라 부른다. 고려 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이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비다. 이온은 조식 선생의 외가인 인천 이씨 가문이다.

쌍비 앞에 서있으니 남명선생을 기리는 뇌룡정과 용암서원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5살에 고향을 떠난 조식은 한양생활을 거쳐 30세부터 처가가 있는 김해에서 살다가 48세 때인 1549년 이곳에 뇌룡정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양천강변에 자리한 뇌룡정으로 향한다. 5살에 고향을 떠난 조식은 한양생활을 거쳐 30세부터 처가가 있는 김해에서 살다가 48세 때인 1549년 이곳에 뇌룡정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뇌룡정 앞에는 용암서원이 있다.

용암서원 안에는 남명 조식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용암서원의 묘정에 세웠던 비석이 서있다.
용암서원에는 남명 조식선생이 제향돼 있다. 용암서원 안에는 남명 조식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고 추모하기 위해 용암서원의 묘정에 세웠던 비석이 서 있다. 용암서원 묘정비의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고, 글씨는 당시 삼가현감 오철상이 해서체로 썼다.

용암서원에서 제방을 따라 300m 쯤 가다보면 외토리 쌍비의 주인공인 이온의 위패를 모신 용연서원이 있다. 용암서원과 같이 앞쪽은 강당이 있는 서원이고, 뒤쪽에는 이온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 용연사가 있다.

조식선생이 태어났던 삼가면 외토리 토동마을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마을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마을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곳에 남명선생 생가터가 있다. 이 생가터는 남명선생이 태어나 5살 무렵 한양으로 이사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남명선생은 조선 중기의 큰 학자로 이황과 더불어 경상좌도와 우도를 영도하는 인물이었지만,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남명의 학문적 명성이 널리 알려진 터라 중앙에서는 여러 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한 번도 부임하지 않았고,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며 비판정신이 투철한 학풍을 수립했다.

조식선생은 61세에 지리산 아래 산청군 덕산으로 옮겨 산천재를 짓고 말년을 보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인홍을 비롯해 오건, 김우옹, 정구 등 수백 명의 문도를 길러냈다. 이들은 대체로 북인 정파를 형성했다.

최근에 복원을 마친 조식 생가지는 마을과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오랜 세월 생가지를 지키고 있었을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집 뒤 언덕에 우뚝 서 있다.

조식선생 생가터에서 도로로 내려와 양천강 제방을 따라서 걷는다. 안쪽에는 넓지 않은 논이 겨울을 나고 있고, 산자락에 용계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양천강은 낮은 산자락과 만나고, 농경지와 접하면서 굽이굽이 흘러간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쌀쌀하지만 찬바람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준다. 멀리 철쭉으로 유명한 황매산이 낮은 산줄기 너머로 고개를 내민다.

겨울 하천길은 고요하고 쓸쓸하다. 유속이 느껴지지 않는 강물은 산봉우리의 그림자를 껴안고 있다. 산자락에 둥지를 튼 마을 앞쪽에는 텅 빈 들판이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다. 유유히 흘러가는 하천과 낮은 산봉우리, 산자락에 기댄 마을과 주변 농경지가 한가로운 농촌풍경을 연출해준다. 강 위에는 왜가리가 앉아 한가로움을 즐기다가 하천을 따라 천천히 날아가곤 한다. 겨울 강은 이런 새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

하천변을 따라 걷다가 두모리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안에 있는 두산정을 찾는다. 두산정은 고려말 산청현감을 지낸 심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14년 건립한 정자다. 경내에 있는 안분사에는 지후공 심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매년 추모행사를 한다.

다시 양천강변으로 돌아온다. 멀리 의령 자굴산이 우뚝 솟아 안정감을 불어넣어준다.
양천강을 따라 걷다보면 멀리 의령 자굴산이 우뚝 솟아 안정감을 불어넣어준다.

삼가면소재지에 들어서니 기양루가 맞이한다. 기양루는 삼가현성 안에 있던 관청 부속건물의 하나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이 건물에 머문 적이 있다. 주로 연회용으로 사용된 건물로 추정되는 기양루는 현재 합천군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기와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삼가초등학교 앞을 지나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언덕위에 삼가향교가 기다리고 있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향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조정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 서원이 사립학교라면, 향교는 공립학교인 셈이다.

삼가향교는 조선 세종 때에 세웠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4년(1612)에 다시 지었다. 전체적인 건물배치는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앞에 있고, 제사지내는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다.

향교 담장 너머로 자굴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싸늘한 겨울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삼가향교는 조선 세종 때에 세웠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4년에 다시 지었다. 전체적인 건물배치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다.


※여행쪽지
▶‘합천 남명 조식 선비길’은 남명선생이 태어나고 중년에 후학을 양성했던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남명유적지와 조선시대 삼가현청이 있었던 삼가면소재지까지 하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코스 : 남명교→외토리쌍비→뇌룡정·용암서원→용연사·용연서원→남명생가지→두모리 두산정→기양루→삼가향교
▶거리/소요시간 : 9㎞ / 3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남명교(경남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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