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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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화의 '5월이야기']유네스코 등재 10주년 맞이하는 5·18기록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

  • 입력날짜 : 2021. 01.21. 19:36
얼마 전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어느 시민이 찾아왔다.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여기가 뭐하는 곳이여? 80년 5월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어.” 몸을 비틀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소란을 피우지 말아 달라는 말에 그는 광주 민주화운동 유공자증을 내밀며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유공자 14급이었다. 우리는 얼른 편한 자리로 모신 뒤, 그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80년 당시 카톨릭센터 7층 CBS 방송국에 공수부대가 배치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CBS를 지키려고 찾았다가 몽둥이에 맞아 큰 부상을 입었단다. 과거를 회상하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5·18은 가정의 행복까지 앗아갔다. 아내와 이혼한 뒤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고 죽어버리려고도 했다. 아이들이 “아빠 어디가?” 하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새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지난 41년 간의 삶을 눈물로 전하며 기록관 문을 나섰다. 필자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직도 80년 5월의 아픔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이 적지않을 것이다.

그이는 “어디다 이야기하지 못하고 묻어둔 이야기들…”이라고 했다. 그렇다.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라도 충분히 들어줄 데가 기록관이라고 생각한 것에 고마웠다. 처음에는 분노한 그이를 맞이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사연을 듣고 보니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함께 한 시간 속에서 그이의 굳은 마음은 알게 모르게 서서히 녹아내렸다.

올해로 5·18민주화운동이 유네스코에 등재된지 10주년이 됐다. 이젠 개인 개인들의 기억이 보편화되고 공적기억이 됐다. 유네스코에 세계기록물로 등재되면서 ‘문화적 기억’으로 되새겨지며 세계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우리들 중 누군가는 아직도 아프고 그 상처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광주 5·18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이 운동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운동의 밑거름이 됐다. 벌써 41주년이다. 그러나 여전히 80년 5월의 기억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날의 기억들은 망각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망각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기억과 재현의 정치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특히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의 항쟁’을 기억해야 한다. 광주시민들은 10여 일의 시간 동안 죽음을 무릎 쓰고 저항했다. 그 10일간의 항쟁은 민주와 인권 그리고 자유의 소중한 가치를 알게 하는 날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들을 기억하며, 망각의 역사에 저항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10일간의 항쟁을 보다 입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10일간의 5·18에서 시선을 돌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봐야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올해 유네스코기록물 등재 10주년을 맞이해 다양한 전시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5·18기록물을 일반시민들이 더 쉽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지금도 그 당시 많은 이들이 저마다 경험했던 자료와 기록들을 수집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5·18의 주체는 광주 시민 모두이다. 일상의 소중한 삶을 살아가던 시민 전체가 민주화운동의 주인인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왜 항쟁에 참여하게 됐는가? 10일의 기억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5·18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린 사람들이 참 많다.

그들의 기억을 우리는 온전히 보듬어내야 한다. 기억이 묻히는 게 아니라 밖으로 튀어나와 제대로 자리매김되었을 때 그 상처에 딱지가 내려 개인의 이야기가 역사로 치환되게 된다. 그래서 5·18의 기억은 기록되고 나눠야 한다. 5·18 41주년, 기록을 통해서 망각의 시간으로 넘어가고 있는 5·18을 다시 끄집어내는 기억의 시간으로 불러내야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 그것은 곧 치유의 과정이고, 개인사가 역사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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