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9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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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라는 이름의 집단이기주의 / 최형천

  • 입력날짜 : 2021. 03.07. 17:57
최형천 ㈜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모 부장판사 탄핵소추 사건은 드라마로 비유한다면 종합 장르극이라 할 수 있다. 단체로 조연을 맡은 탄핵대상자의 소위 연수원 동기 150명이 떼로 몰려 우정 출연한 모습은 억지로 눈물을 강요하는 멜로물이다. 또한 이토록 많은 변호사 등 법조인이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는 일이 흔치않아서 스펙터클하다. 게다가 상사와의 대화를 비밀리 녹음하여 폭로하는 고위법관의 추태에 이르러 서는 완전한 막장드라마 수준이다.

그런데 탄핵사유가 만만치 않다. 그 부장판사는 수차례에 걸쳐서 후배 법관이 담당하는 사건에 부당하게 개입하여 지시하는 등 법관으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이미 직권남용 사건 판결에서는 명백하게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위법을 적시했으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탄핵소추 대상이라고 의결하면서 동료법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국가가 처벌해달라고 요청한 바가 있다. 이렇게 명백한 범죄자를 단순히 연수원 동기라고 옹호하고 나서는 것을 보면서, 이들의 오만함에 허탈한 시민들의 심사는 몹시 불편하다. 이건 분명 잘못된 우정이며, 조폭수준의 의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과거 전두환씨 부하인 어떤 장군 하나가 법정에 나와 모두 다 본인이 한 것이라고 전씨를 비호하는 모습을 연출하여 세간에서 “그래도 장 아무개는 의리가 있다”고 평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실망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시민들이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면 진실을 밝히는 게 결코 쉽지 않겠다는 불안감이 스쳐갔다. 지금까지도 5·18의 발포명령자가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것은 가증스런 야합을 의리로 인정하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처럼 빗나간 우정이 용인된다면 우리 사회는 불의가 활개를 치게 될 것이며 더욱 어두워질 뿐이다.

헌법까지 유린한 법관을 동기라는 이유로 비호하는 것도 정의롭지 못한 검은 우정이라 할 것이며, 그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사법부 독립을 해치는 일이다. 특히 상식을 믿는 시민이나 건전한 사회와 대적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다. 이번 사건으로 법조인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일탈한 그들의 집단이기주의는 그나마 남은 국민의 신뢰를 깡그리 털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건전하고 양심적인 법조인에게 위로를 보낸다. 법관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떳떳한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정서와 배치되는 제도와 관행을 시급히 정비해야 할 것이다.

늦었지만 국회의 탄핵발의는 정말 다행이다. 이제부터는 법에 규정되어 있는 권한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길 바란다. 시민들도 이번에 비호세력으로 이름을 올린 법조인을 법률대리인으로 이용하는 것을 재고해 봐야한다. 많고 많은 법조인 중에서 더 건전하고 상식적인 법률대리인을 고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겠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시민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상식적인 수준에도 못 미치는 도덕과 윤리를 가진 법전문가를 배출하는 법조인 양성제도의 근본적인 개혁도 필요하다. 외우고 분석하는 것은 사람보다 AI가 더 잘하는 디지털시대에 필요한 법조인의 자질은 양심에 입각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윤리의식과 균형감감이라 할 것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져야 한다. 못이 삐져나온 낡은 의자를 바꾸듯 주인을 괴롭히는 낡은 제도는 바꿔야 한다.

끝으로 판례를 좋아하는 법조인들을 위해서 참된 우정의 사례를 인용한다. 2016년 4월 미국 콜로라도주 브룸필드 메리디안 초등학교에서 암 투병 중인 친구를 위해 80명의 학생들이 단체로 삭발을 했다. 1년간의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을 모두 잃어버린 마리 팩(당시 9세)은 자신의 대머리가 부끄러워 상심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친구 카메론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함께 대머리가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교장선생님의 동의를 얻은 이 삭발행사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마리 팩에게 용기를 주었고, 암환자를 위한 기부금도 모아졌다. 이처럼 친구와 아픔을 같이하려는 순수한 마음이 진정한 우정이며 세상을 훈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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