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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1천년] 제2부 천년의 인물-(7)고산 윤선도
강직한 선비의 삶…조선시대 대표 지성인
정치·문학·실업 능통…자기주장 강해 시련의 삶
유배생활 3차례 14년 그때마다 은둔·풍류로 자족

  • 입력날짜 : 2017. 05.15. 20:13
사적 제167호로 지정된 고산 윤선도의 고택 녹우당. 양반식 전통가옥인 녹우당은 덕음산을 배산으로 자리잡은 우리나라 최고 명당 중 하나로 꼽힌다.
고산 윤선도는 우리나라 국문학상 시조시인 1인자로 꼽힌다. 그는 16세기를 풍미한 문학인이자 원림문화의 전통을 형성한 조경인이다.

고산 윤선도는 해남 윤씨의 16대 손이다. 의정부 우참찬을 지낸 운의중에게 유심·유기·유순 등 세 아들이 있었는데, 고산은 유심의 세 아들 중 둘째로 1587년 6월22일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해남 종가에 아들이 없어 입양돼 대를 잇고 있던 작은아버지 유기 역시 아들이 없자 고산은 여덟살 때 유기의 양자로 입양돼 그때부터 해남 연동에서 자랐다.

고산 윤선도 선생 영정.
그는 천성적으로 강직하고 바르며 곧은 성격을 지녀 부당함을 보면 자신의 주장을 감추지 못해 순탄한 일생을 살지는 못했다. 26세가 돼서야 진사시험에 합격했지만 당시는 광해군 시절로 광해군에 아첨해 권세를 부리는 세도가의 횡포를 보고 망군빈국(忘君貧國)하는 죄를 묻는 상소를 올렸다. 이로 인해 첫 시련을 맞았다. 서른 한 살 되던 해 그는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고 다음해에는 경상도 기장으로 이배돼 6년이나 귀양살이를 했다.

1623년 인조반정 때 유배에서 풀려나 의금부도사에 제수되지만 유배의 심정이 정리되지 않아 곧 사직하고 해남에 돌아왔다. 그는 처절했던 유배의 아픔을 달래며 두문불출 은둔생활에 젖으면서 인생의 깊이를 느끼는 원숙한 나이로 들어섰다.

고산은 42세가 돼서야 출사의 꿈이 펴진다. 별시초사에 장원급제하고 봉림대군(효종)과 인평대군의 사부를 거쳐 7년간 요직을 두루 거치며 정치적 경륜을 쌓는다. 그러나 성산현감으로 좌천되면서 경세의 뜻이 좌절되자 해남으로 귀향한다.

인조 14년 병자호란때 남달리 애국의 정이 깊었던 고산은 의병을 이끌고 배를 이용해 강화도까지 갔다. 그러나 이미 왕자들은 붙잡히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을 개탄, 평생 초야에 묻혀 살 것을 결심하고 뱃머리를 돌려 제주도로 향했다.

이때 남하하다 ‘어부사시사’의 배경이 된 완도의 보길도를 발견한다. 그가 보길도에 정착해 나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자 조정에서는 그를 지탄하는 모함이 일어 1년간 경상도로 유배됐다 해남에 돌아왔다.

그의 문학 활동 주무대는 해남군 현산면 중에서도 금쇄동과 수정동, 이수동 3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10년을 번갈아 머물면서 ‘산중신곡’ 등 시편을 쏟아 냈고, 보길도의 부용동에서는 7차례 걸쳐 약 12년 간 풍류했다. 그러나 이런 은거는 세상을 잊은 행위라기보다는 세상을 피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효종이 등극한 후 임금을 잊지 못하고 자주 나라의 부름에 응한 출사는 이 같은 본심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74세 때 승하한 효종의 산릉과 조대비의 복제 문제로 서인과 대립하다 “3년 복이 옳다”고 강경하게 주장하는 고산의 말에 과격함이 있다는 송시열 등 반대파에 의해 사형이 주장됐다. 그러나 고산은 바른말을 하는 선비요 또 선왕의 사부이니 경솔히 죽일 수 없다는 상소가 받아들여져 다시 유배돼 7년4개월 간 긴긴 세월을 보냈다.

고산유물전시관 내부 모습.
따라서 고산의 출사는 9년에 불과하지만 유배생활은 3차례에 걸쳐 14년이 넘는다. 그때마다 은둔과 풍류의 즐거움으로 자족하기도 했지만 그의 일생은 출사와 유배, 은둔이 거듭되고 희비가 교차하는 생애였다. 다시 말해 시련과 극복, 득의와 풍류, 고난과 개척의 일생이었다. 고산은 유배에서 풀려난 2년 뒤인 1671년 6월11일 완도 보길도 낙서재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5세.

확고한 자기주장을 설정하고,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조선 지성인의 한 전형 윤선도. 무수히 남긴 그의 시편들은 우리에게 삶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성찰을 도모하게 하며, 문학의 본질적 사명을 일깨워준다.

/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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