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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면 다 사람일까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9. 01.09. 18:48
기자가 된 이후 30여년 이상 한해도 거르지 않은 화두가 있었다. ‘전두환과 나’. 동시대 대한민국 광주에 태어나 청년기에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고, 그 이후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으니, 엄청난 인연이다.

2019년 벽두에 광주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서울 전두환집 앞에서 울며 소리치며 항의하는 모습이 뉴스 머리로 장식되는 걸 보면서, 지긋지긋한 이 악연을 끊어내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봤다. 그이가 죽는다한들 끊어지는 악연도 아니다. 그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그에 상응하는 역사적 심판만이 광주가 전두환을 잊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전두환은 여전히 사람이길 포기한 모양이다. 사람이라면 1980년 이후 39년 동안 이렇게 무례할 수가 없다.

전씨는 지난 2017년 4월에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등으로 표현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5월 단체와 유가족은 회고록이 출간된 직후 전씨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며, 검찰은 전씨를 불구속기소했다.

대부분 정상적인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 쓴 회고록에선 반성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전씨의 회고록은 재판에서 규명된 것들도 죄다 부정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 ‘북한군 개입에 의한 폭동’ 등으로 묘사했다가 하면, 스스로를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로 비유했다.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정당하고도 불가피한 조치’라며 ‘셀프 면죄부’를 내리기도 했다.

결국 법원이 5월 단체 등이 전씨를 상대로 낸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는 동시에 전씨가 회고록을 통해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5·18 관련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7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전두환은 역사적 평가를 반대하고 당시 계엄군 당사자들이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변명적 진술을 한 조서나 일부 세력의 근거 없는 주장에만 기초해 5·18 발생 경위, 진행 과정에 대해 사실과 다른 서술을 해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적시했다.

지난 20세기에 5·18 민주화운동 당시 총칼로 시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주동자이며, 국가반역죄와 국가내란죄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대역죄인’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호·경비 등의 예우를 누리고 있는 것도 울화통터지는데 최근에 그의 부인 이순자는 전두환은 ‘민주주의 아버지’라는 망언을 해 공분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광주지법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 나오지 않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구인장이 발부됐다. 광주지법은 5·18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 씨를 심판하기 위해 재판은 열었으나 피고인 전씨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두 차례의 연기신청 끝에 지난해 8월27일로 잡혔던 첫 공판기일에도 전 씨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이유로 불참을 알려와 재판은 열리지 못했다. 이번에는 출석하지 못하는 이유로 고열과 독감을 들었다. 재판부는 이날은 사전 약속한 대로 재판은 열었으나 피고인 부재로 인정신문 등 절차를 진행하지 못해 다음 재판 날짜를 3월11일로 정한 뒤 마무리했다.

이제 법원은 3월11일도 전씨가 불출석하면 강제로라도 법정에 세워야 한다. 국가 형사사법 체계에 도전하는 오만한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 5·18을 능멸하고 매번 망언으로 광주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그의 뻔뻔함을 더 이상 용서해서는 안 된다.

보라. 전두환은 늘 법을 조롱하고 있다. 정의(正義)의 실현이 지연되는 것 역시 불의(不義)다. 대법원이 1997년 4월17일 전 전 대통령에게 군형법 반란·내란과 수뢰 혐의를 유죄 확정하면서 무기징역형에 추징금 2천205억 원을 부가했지만 실형은 특별사면 됐고, 추징금 집행은 4분의 1에 그쳤다. 그러니 민간인 학살, 삼청교육대 사건, 수많은 고문치사, 의문사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 등 전씨가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자행한 온갖 불법은 다 잊어버리고 ‘민주주의 아버지’ 운운하는 것 아니겠는가.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이렇게 오랫동안 피해자 눈에서 피눈물을 짜낸다. 프랑스는 해방 직후 독일 부역자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한 뒤 망각의 시간을 보냈지만 반세기 후 다시 유대인 6만여 명을 독일 수용소로 보낸 르네 부스케 경찰총수를 단죄하는 등 과거사 청산 작업을 이어갔다.

전두환가의 망언은 한국 현대사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진실규명이 안되었기 때문에 계속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특별법이 지난 9월 시행됐지만, 자유한국당의 직무유기로 정작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이 지연되고 있다. 한국당이 조사위원 추천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을 보면 진상조사위 출범을 장기 표류시키려는 속셈이 있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 한국당이 이처럼 5·18조사위원 추천에 소극적인 것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 출범을 장기표류시키려는 속셈으로 밖엔 달리 해석이 안 된다.

‘전두환과 광주’. 5월의 진실을 어둠 속에 가둬놓는 한 우리는 그의 무덤까지 찾아가 항의할 수밖에 없다. 빨리 인연을 끊고 싶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빨리 가동되어야 할 이유다. 죄 없는 광주 엄마들이 왜 이 찬 겨울, 전씨 집 앞에서 울어야 하는가. ‘피의자 전두환’과의 이 악연, 올해는 반드시 끝장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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