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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이름으로 세상에 고하다] 편의점을 통해 본 현대인의 삶의 단편
‘누구를 위한 편의인가’…가짜 필요, 욕망과 필요의 함정
만능·다기능 갖춘 편의점, 현대인에게 24시간 서비스 제공
익숙한 상황·길들여진 사람들…안주하지 않는 삶 모색해야

  • 입력날짜 : 2019. 04.24. 18:29
요즘 아이들에게는 편의점이 굉장히 익숙할 것이다.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는 구멍가게가 훨씬 익숙하다. 최근에는 구멍가게마저 편의점으로 바뀌는 추세라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한다. 꼬맹이 때는 단돈 500원만 있어도 행복했고, 그 돈으로도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먹을 수 있었다. 구멍가게 시절을 지나 시골에도 편의점이 하나둘씩 생겼다. 편의점에서 처음 사본 것은 삼각김밥이었다. 서울에 사는 친척 동생들이 놀러왔는데, 삼각김밥을 사먹는 걸 보고 엄청 신기해서 나중에 사먹어 봤다. 처음에는 어떻게 포장을 뜯는지 몰라서 헤맸던 기억이 난다.

편의점이 없을 때도 한 번도 불편함을 못 느꼈는데, 사람 마음이 간사한지, 어디에나 있고, 또 자주 가니까 이젠 없으면 불편하다. 사실, 없을 때도 잘 살았고, 안 간다고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편의점은 이제 너무 다양한 기능을 갖추게 됐고, 24시간화된 인간들에게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엄청난 다기능을 넘어 만능에 가까운 무언가가 됐다. 목적·정체성의 측면에서 대체 편의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가 산 속에서 은둔해서 살지 않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아도 마주치는 곳. 내 필요와 상관없이 언제나 준비된 자세로 그곳에 있는 편의점을 마주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은 욕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욕망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다. 얻으려는 욕망은 그것을 손에 넣는 순간 저만큼 물러난다. 처음에는 대상이 실재(實在)처럼 보였지만, 대상을 얻는 순간 허상이 되기 때문에 욕망은 남고 인간은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오직 죽음 뿐이다.”

만들어진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 나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주체성을 가지고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진짜 필요와 만들어진 필요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편함과 불편함을 구분 짓는 기준은 무엇일까? 전에는 불편함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불편함이 돼버린 것들도 있다. 그리고 가짜 필요가 판을 치는데, 그것을 진짜 필요로 착각하기도 한다.

‘편의점 사회학’의 저자 전상인은 “편의점은 신자유주의 모바일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신종 도시 통치 인프라로 급부상 중이다. 그럼에도 막상 현실 속 우리들은 편의점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는 생각만 할 뿐, 세상을 은밀히 지배하는 편의점의 숨은 권력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편의점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통치 ‘장치’이며, 현실 속 우리들이 편의점의 숨은 권력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그러한 숨은 권력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일까? 아니, 그 전에 그러한 권력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면, 몇십년간 복역했던 수감자가 모범수로 풀려나는 부분이 나온다. 모범수로 사회에 돌아갈 수 있게 된 그 수감자는 오히려 나가기 싫다며 패닉 상태에 빠진다. 동료들의 다독임으로 그는 사회에 돌아가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교도소 밖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자유의 몸이 돼 사회로 나갔지만, 새로운 업무와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삶에도 적응하지 못한 그는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주인공의 친구 레드는 이렇게 말한다. “이 철책(담벼락)이란 게 참 웃겨. 처음엔 그것을 싫어하지. 그런데 점점 익숙해져. 세월이 지나면, 그것에 의지하게 돼. 그게 ‘길들여진다’는 거야.” 교도소의 담벼락을 처음에는 싫어하지만, 어느새 거기에 익숙해지고, 의지하게 되고, 그리고 결국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나를 속박하는 어떤 것이 사라져 해방되고, 자유를 얻었는데도 그 자유를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속박되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그 수감자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 모두 현실이라는 감옥에 속박돼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담벼락에 갇혀, 처음에는 탈출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엔 안주하고 마는 것이다.

‘편의점 사회학’의 저자는 결론-편의점 사회의 명암에서 “편의점 스스로 주장하는 ‘편의성’의 의미 혹은 ‘편리성’의 본질을 묻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편의이고, 무엇을 위한 편리인가?”

익숙해진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어렵다. 고민은 독자들의 몫이다. 스스로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과 논의도 해보자.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샛길도 있고 골목길도 있고, 조금 돌아가는 길도 있다. 그리고 모두가 똑같은 속도로 가는 것도 아니다. 한 가지 길만 강요하는 것도, 빨리 가라고 닦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반 일리치는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에서 현대를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들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교통수단으로 두 다리가 쓸모없게 되고, 정신없는 일과에 쫓기다가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호르몬요법에 중독되고, 시끄러운 미디어에 침묵을 강요당하고, 불량 음식으로 아파하는 거대한 대중”을 말하며, 전문가들이 필요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중 많은 것이 실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거나, 없어도 아무 지장 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 때문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편의점에 갈 때 한번쯤 생각해보자. 욕망과 필요의 함정을 잘 비켜가길, 그리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길./장다정 전남대 문화학과 박사과정


장다정 전남대 문화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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