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록자 불견산(逐鹿者 不見山) |
| 2004년 07월 12일(월) 00:00 |
노무현 대통령이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반대여론을 자신에 대한 불신임 또는 퇴진운동과 연계시켜가며 또다시 강도높은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수도이전과 관련된 반대에 대해 "대통령 흔들기의 저의도 감춰져 있다"거나 "정부의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던 노 대통령이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정부 정책의 안정성을 해치고, 흔드는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한 것"이라는 청와대 대변인의 풀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수도이전계획이 결정적인 난관에 봉착할 경우 불가피하게 국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질 수 밖에 없고, 이 때 재신임을 연계하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예측은 제법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반대할 자격없는 한나라당
하지만 수도이전에 대한 국민투표여부를 논의하기 전에 새삼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논란의 핵심인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은 바로 한나라당이 앞장서서 국회를 통과시킨 법률이라는 점이다. 노 대통령의 최근 발언에 대해 참여정부의 난국 돌파 비법(?)인 '올인' 전략이라고 비난하는 한나라당이지만 수도이전에 대해 여전히 당론을 정하지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맥락이 같다. "도박판에서처럼 올인하는 노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수법에 국민들이 이제는 익숙해진 상태이기에 자주 쓰면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한나라당 대변인의 논평은 오히려 점잖다.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축록자 불견산'(逐鹿者 不見山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않는다)이라는 고사성어까지 동원한 대표 권한대행의 비판은 적반하장이기 때문이다. 행정수도 이전 자체는 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을 당시부터 분명 국가적인 중대사였다. 한나라당은 이런 중대사안을 담은 특별법 통과에 앞장서기 전에 국민여론을 묻자고 나섰어야 했지만 눈앞에 닥친 선거에서의 표심 때문에 이를 외면했다.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을 놓고 볼 때 한나라당이야말로 '축록자 불견산'했던 셈이다.
위헌심판대 오른 수도이전
자격없는 한나라당에 비해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기로 한 '수도이전 위헌 헌법소원 대리인단'의 움직임은 차라리 명쾌하다. 이들은 신행정수도 이전으로 서울시가 특별시로서의 지위를 잃고 광역시로 전락함에도 법제정과정에서 서울시와 협의를 거치지 않아 서울시 행정특례에 관한 법률과 지방자치법을 위반하고, 서울시 공무원의 공무담임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한다. 국회 역시 의결과정에서 청문회나 공청회를 거치지 않아 국회법을 위반했고, 국회 의결전 대통령 결제를 거친 것이 아니라 국회 의결후 대통령의 결제를 거쳐 헌법상 권력분립원칙에도 위배됐다는 입장이다. 특히 대리인단은 헌법소원과 함께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의 시행을 정지시켜 달라는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활동정지 가처분신청'도 내기로 해 본안 결정에 앞서 가처분 인용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선행될 전망이다. 당사자 적격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또 한번 헌재의 판단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국회가 제역할 다해야
사실 선거에서 표심을 얻기위해 특별법 통과에 앞장선 것은 한나라당 뿐이 아니다. 여야 모두 국민여론수렴을 무시했다. 결국 대리인단의 이번 헌법소원은 축록자 불견산했고, 축수자목불견태산(逐獸者目不見太山)했던 여야 모두에 대한 심판이다.
대선자금수사와 탄핵심판 이후 뼈를 깎는 자성을 해낸 국회라면 당연히 스스로 통과시킨 법률의 하자를 다시 점검하고 정비해야 맞다. 더구나 지금 상황은 수도이전 후보지가 발표되고 해당 지역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 행사에 큰 제약이 가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만일 이전계획이 백지화라도 된다면 이들이 겪은 피해는 보상해줄 길이 없다. 수도이전에 대한 논란이나 헌재의 판결이 빨리 매듭지어져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 역시도 수도이전이 불가피하게 국민투표를 거쳐야한다면 이를 마다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혹시 이를 자신의 진퇴와 연결시켜 생각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수도이전에 대해 국민여론수렴미비라는 절차적 하자는 분명한 것 같고, 더구나 수도이전의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 확산작업은 더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