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토균형개발의 허상 |
| 2004년 09월 06일(월) 00:00 |
지난달 말 광주시와의 정책간담회에서 한나라당 '지역화합특별위원회'가 산적한 지역현안을 제쳐두고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사안은 엉뚱하게도 전남도청 이전문제였다. "전남도청 이전사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 이를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반대할 경우 대통령 뜻에 반대하는 것으로 인식돼 눈 감고 넘어간 것이다. 현재 행정수도 이전도 같은 상황이다."
행정수도 이전의 부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지역민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전남도청 이전문제가 청사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어 때늦은 문제제기였다는 점에서가 아니다. 전남도청의 이전은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사업이 아니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남도청 이전 및 그 부지에 5·18 공원건립' 지시에 따라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집권여당이 한나라당이었음을 감안하면 '반대할 경우 대통령 뜻에 반대하는 것으로 인식돼 눈 감고 넘어간 것'은 다름아닌 한나라당이었다.
지역민심 못읽는 동·서진정책
실패한 일이기는 하지만 '2010년 세계박람회'의 여수유치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2010년 세계박람회의 여수유치를 정부계획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당사자는 분명 김영삼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추진이 김대중 정부 때 이뤄졌기 때문인지 "왜 여수냐"고 문제를 제기하며 '전남도청 이전 및 5·18 기념사업'에서 처럼 관련 예산 반영에 제동을 걸고 나선 이들이 바로 한나라당 의원들이었다.
그렇다고 '호남 껴안기'에 나선 한나라당의 '서진정책'을 문제삼고 싶은 의도는 없다. 광주·전남에서 추진된 국책사업에 대해 착수 때에는 무슨 큰 일을 벌일 것처럼 요란을 떨다가도 막상 예산지원에 있어서는 마치 생색이라도 내듯 찔끔거린 것이 역대 정부였다. 특히 도로, 철도, 항만 등 인프라 구축은 수십년 걸리는 장기공사로 전락하는 것이 다반사다. 광주·전남에서 벌어진 현안사업이 워낙에 오랜 세월이 소요되는지라 한나라당이 어느 정부가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추진됐던 '동진정책'을 계승해 '新동진정책'의 불씨를 여전히 지피고 있는 참여정부 역시도 호남에 대한 인식 만큼은 아쉽지만 역대 정부와 차이가 없다. '영남 껴안기'와 동진정책을 내세운 열린우리당이 얼마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영남지역의 민심을 읽지못하는 것도 호남의 사정에 어두운 한나라당과 아마 같은 처지일 것이다.
겉다르고 속다른 지역균형정책
광주·전남발전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호남지역 SOC 실태분석결과는 참여정부가 내건 국토균형개발의 기치가 얼마나 허울뿐인지를 대변한다. 30년이 훨씬 넘게 걸린 호남선 복선화는 제쳐두고라도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시작된 목포∼광양간 국도 2호선(총연장 150㎞)과 광주∼완도간 국도 13호선(137㎞) 확장사업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중'이다. 매년 7∼8㎞씩만 확장해온 때문이다. 광주권과 서해안고속도로를 잇는 17.1㎞에 불과한 고창∼장성간 고속도로 건설은 계획기간이 2010년까지 9년이 소요된다. 매년 2㎞씩만 공사하겠다는 것이 건설교통부의 계획이다. 달팽이가 기어가도 이 보다는 빠를 것이다. 1989년 시작된 전라선 철도 개량화 사업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광주·전남의 인프라 구축은 찔끔공사도 예사일뿐만 아니라 계획기간내 완공된 경우가 서해안고속도로뿐일 정도로 지연되기 일쑤다.
호남선 복선화와 영낙없이 닮아가는 전라선 철도 개량화 사업은 지금 한창 논란에 휩싸인 광양항 개발과 닿아 있다. 지난 7월 노무현 대통령이 목포에서 광양항 활성화를 역설하기 직전 국무총리실은 광양항 개발 재검토 의견을 내놓았다. 참여정부가 내세운 국토균형개발의 '겉'과 '속'은 이토록 다르다. 그동안 광주·전남의 인프라 확충을 주저하고 완공을 늦추는 이유로 들이댔던 잣대는 바로 경제성과 타당성이다. 하지만 경제성과 타당성에 있어 전문가들 조차도 부정적이었던 부산신항을 억지 개발해야했던 정부 정책 당국자가 그 완공을 눈앞에 두고 광양항 활성화에 나설리는 만무하다. 이것이 국토균형개발을 겉구호로 내건 참여정부의 속모습이다. 진정으로 국토의 균형개발과 지역의 균형발전을 유도해내려면 이 속모습부터 바꾸는 것이 순서다. 균형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여전히 지역차별의 구습에 젖어있는 정부 각 부처내 '인의장막'부터 걷어내야 한다. 더구나 지역이 처한 현실을 바로 파악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바로 참여정부의 국토균형개발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