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실험의 두 얼굴 |
| 2004년 09월 20일(월) 00:00 |
얼마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던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월스트리트저널사의 편집간부로부터 "10월의 서프라이즈(10월의 충격)에 대해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미국 정가에 떠돌고 있다는 북한의 10월 핵실험설에 대해 진위확인에 나선 것이었다. 핵실험의 주체인 북한의 동향이나 그 실행여부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포함되지않아 그야말로 미국 정계 인사들이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핵실험설'이다. 박 의원이 모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최근 북한 량강도에서 발생했다는 의문의 폭발(혹은 폭파)은 바로 이 10월의 충격설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외신들은 핵실험일 수 있다는 보도를 재빨리 확산시켰다. 결국 사실무근의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원인모를 폭발음이 나고, 구름인지도 분간할 수 없는 검은 연기가 폐쇄된 북한에서 발생했다는 것만으로도 국제사회는 할 수 있는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냈던 것이다.
량강도 폭발설은 희망사항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정찰위성 KH-12는 해상도가 15㎝다. 500㎞ 이상의 상공에서 지상의 15㎝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다목적 위성인 '아리랑 1호'가 갖고 있는 6.6m 이상의 물체만 식별할 수 있는 능력과는 비교가 안된다. 우리 정부에 제공되었다는 폭발추정지역에 대한 이 KH-12의 촬영사진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의 지진연구센터 역시도 지진파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폭발이나 폭파는 없었다고 확인한바 있다. 량강도 폭발은 애당초 아무런 사실적 뒷받침이 없는 추측이었던 셈이다. 북한이 중국과의 접경지역에서, 그것도 방사성 낙진피해가 뻔한 지상에서의 핵실험을 감행할리가 없다는 것은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상식이다. 더구나 지구촌 곳곳을 최첨단 정찰위성으로 손금보듯하는 미국이 핵실험 사실을 간과할리는 만무하다. 이런 미국이지만 '10월의 충격설'에 량강도 폭발소식이 이어지게된 것은 그야말로 기다리던(?) 호재가 아닐 수 없다. 대선 때마다 외부세계의 누군가와 항상 긴장국면을 만들어내곤 했던 것이 미국이었으니까.
원소기호 U, 원자번호 92, 원자량 238.029, 녹는점 섭씨 1천132도, 끓는점 섭씨 3천800도. 자연상태에서 존재하는 물질 가운데 원자번호가 가장 큰 원소인 이 우라늄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뭍매를 맞고 있는 한국의 상황 역시도 미국에게는 더 없이 훌륭한 카드다.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북핵문제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의 재개를 앞두고 있다. 또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지않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의심을 사고 있는 이란을 유엔에 회부해 본격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우랴늄235 '0.2g'을 분리한 한국을 유엔의 혹독한 심판대에 세워 본보기로 삼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평화적 핵이용 인정받아야
지난 70년대에 이어 82년에도 플루토늄을 비밀리에 추출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초강경 자세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한국이 우라늄235를 분리할 수 있는 레이저동위원소분리(LIS)기술 보유국임은 이미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공개된 사실이다. 한국원자력연구소의 과학자들이 분리한 우랴늄235 0.2g은 그야말로 '과학적 실험'임이 분명하다는 것은 우리 정부 당국의 해명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마치 은밀하게 핵무기 개발이라도 시도한양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IAEA의 태도는 북한과 이란을 겨냥하는 목적외에 핵이 가진 이중성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미국 등 강대국이 우라늄을 농축하면 '평화용'이고, 약소국이 하면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군사용'이 된다는 사실이다.
IAEA가 회원국에 쳐놓은 핵사찰망은 물샐틈조차 없다. 안전조처(Safeguards)협정과 추가의정서에 따라 신고된 핵시설은 물론 미신고 핵시설과 비핵시설까지도 사찰할 수 있고, 폐쇄된 시설에 대해서도 사찰을 요구하면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촘촘한 비확산의 그물망은 우라늄 분리기술에 있어 온갖 실험을 해대는 일본에 대해서는 '평화용'이라는 이유로 인정하면서도 한국 등 다른 나라들의 우라늄 분리는 곧 핵무기 개발로 규정하는 '이중잣대'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IAEA의 강경한 태도가 곤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상황이 기회일 수도 있다. 기왕에 우리의 핵기술이 국제적인 관심대상이 된 만큼 모든 의혹을 씻어 핵무기 개발의도가 없음을 명백하게 확인시킬 수 있다. 또 정부가 천명한 '평화적 핵이용 4원칙'에서 보듯 차제에 핵에 대한 우리의 폭넓은 과학적 이용에 관해 국제사회로부터 용인받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