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老人들의 자살 방치할 것인가 |
| 2004년 10월 18일(월) 00:00 |
지난 5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는 90대 노인 부부가 부인(93)은 목이 졸린채, 남편(92)은 옷장 손잡이에 철사로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 '백년해로'한 금슬좋은 부부였지만 부인의 치매가 이들에게 죽음을 택하게 한 고통이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않기 위해 따로 살면서 치매에 걸린 부인에게 음식을 떠먹이고, 대소변을 직접 받아내왔던 남편이 부인을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은 자살을 택한 것이다. 이 노인이 남긴 것은 폐지, 고물 등을 주워 모은 250만원과 유서 세장. 유서에는 '78년이나 함께 산 아내를 죽이는 독한 남편이 됐다. 살 만큼 살고 둘이서 같이 세상을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 250만원은 상을 치르는 데 써라'로 씌여 있었다.
이들 노 부부의 안타까운 죽음은 고령화된 우리 사회 시급히 해결되어야할 과제는 과연 무엇인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7남매를 당당하게 키워내며 해로했던 부인을 스스로 목졸라 숨지게 한 남편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자신이 병수발을 한다고는 했지만 치매라는 질병은 얼마나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었을까.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고물줍기외에 아무런 할일이 주어지지 않는 노인들의 처지는 또 얼마나 고달팠을까. 어쩌면 가까운 미래 한국의 가장 큰 사회문제가 될 노인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왜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인지 분노까지 느껴진다.
세계 최고속의 고령화
LG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에 이미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비중이 7%가 넘는 고령화사회(aging society)에 도달했다. 오는 2019년에는 고령인구비중이 14%를 돌파해 고령사회(aged society)에 진입하고, 2026년에는 고령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프랑스가 156년, 영국 92년, 미국 86년, 일본이 36년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고령화 속도(26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이같은 고령화가 심각한 저출산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통계청이 집계한 '2003년 출생·사망통계결과' 전국적으로 출생아수에서 사상 최저를 기록한 지난해 전남의 영광군 낙월면과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출장소, 안좌면 자라출장소 관내에서는 단 한번도 아기울음소리가 들리지않았다. 출생자가 한명도 없었다는 얘기다.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농어촌에서의 저출산은 전국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이다. 전체 출산인구 가운데 농어촌지역에서 태어난 인구는 2001년 10만3천797명에서 2002년 9만216명, 2003년 8만6천525명으로 줄어 출산인구 중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18.6%, 2002년 18.2%, 2003년 17.5%로 감소했다. 특히 고령화와 저출산이 심각한 지경에 있는 전남에는 이미 노인들만 남아 있다. 지난해 전남의 주민등록인구 202만4천422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8만4천670명으로 전체의 14.1%를 차지했다.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전남이 처음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했음은 물론 고흥군과 곡성군 등 9개 지역은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급속한 고령화는 경제적으로 노동력의 공급감소와 생산성 저하, 소비감소 등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대다수 선진국들이 수십년전부터 고령화에 대비해온 반면 우리의 경우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금에 와서야 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는 정도다. 요구르트 배달원에게 안부를 살피게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해야할 우리의 노인대책은 이미 고령화된 우리 사회에 도무지 걸맞지않는 것임에도 정책방향의 대전환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도 우려스럽다.
지난해에만 3천653명의 노인들이 자살을 선택했다. 전체 자살자 비율의 2.3배나 된다. 더구나 노인들을 자살로 내모는 원인 제공자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을 수용할 마땅한 의료시설도 없을 뿐더러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한 일자리도 거의 무관심의 대상이다. 고착되어가고 있는 핵가족화는 노인문제를 더 이상 전통적인 효사상에만 기댈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율 속에서의 노인문제에 대한 해법은 간단치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홀로사는 노인 안부 살피기'식의 노인문제에 대한 접근방법 자체에 대한 재검토다. 국가 차원의 노인대책이 세워져야 할 것이고, 여기에는 실버농업육성 등 일자리 창출에서부터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염두에 둔 의료시설확충까지도 포함돼야 한다. 노인문제에 대한 대응은 지금 서둘러도 늦다는 자각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