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위만으로 세상이 바뀌나 |
| 2004년 11월 19일(금) 00:00 |
대한민국은 시위공화국이다. 참여정부 출범때부터 어느정도 예상된 일이지만, 하루도 그냥가는 날이 없다. 시위대가 내건 목표도 천차만별이고 유형또한 다양해졌다.오늘은 진보세력이 여의도에서 목소리를 높이면 내일은 보수집단이 광화문에서 맞대응한다. 농민들이 아스팔트에다 볏단을 쏟아버렸고, 식당주인들도 솥을 집어던졌다. 집창촌 여성들이 국회앞에 누웠고, 사학재단들이 학교패쇄 피켓을 들었으며, 종교인이 궐기대회를 열었다.이익집단들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급기야 공무원까지 총파업에 나서 징계후유증으로 엄청난 몸살을 앓고 있다. 어찌됐건 한국사회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시위 전시관'이 되버렸고,요즘 같은 세상에 경찰과 시민들이 극렬하게 대치하고 싸우는 모습을 매일처럼 보는 것도 안타깝고 지겨운일이다 .
데모할 사람만 천만명이라니
도대체 왜 사람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나올까?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다른 방법들이 있는데 굳이 집단 몸싸움으로 풀어야만하는가.물론 시위중에는 터무니없이 집단이익만 얻어내려는 계산된 몸짓도 없진 않다.하지만 대부분은 개혁정치의 미래효과를 기대하기엔 현실의 고통이 너무 커진데 따른 자연발생적 몸부림으로 봐야 맞다.사는것 자체에 지치지 않고서는 생계에 바쁜 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이유가 없다.
더구나 내년은 국내외적 상황이 더욱 심각할 것으로 보여 자칫 '아스팔트위의 파국'을 맞지않을까 벌써부터 답답해진다. 오죽하면 경제장관이 국회의원앞에서 "내년엔 경기가 더 나빠지면서 기초생활보호대상자와 차상위계층을 합한 빈곤층(월수입이 최대 1백20여만원이하)이 1천만명에 달할 것이다. 유사시 못살겠다고 길거리에 쏟아져나와 데모할 국민이 1천만명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라고 말했겠는가.극심한 부의 양극화로 내수 구매력이 붕괴했고, 빈곤층이 1천만명으로 급증한다면 그것은 바로 공황진입 국면, 즉 '준(準)공황'으로 봐야 마땅하다.
더구나 그동안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마저 미국의 '약한 달러' 정책으로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후 처음으로 세 자릿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경제전문가들은 "이럴 경우 실물경제는 치명타를 맞을 수밖에 없어▲ 무역흑자의 적자전환▲ 국가신용등급 하락 ▲주가 폭락 등 일련의 충격이 가해질 것"으로 우려한다. 여기에다 부시의 재집권으로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가위험도까지 높아진다면 한국경제에 중대한 시련이 불어닥칠것은 불보듯 훤한 일이다.
상황은 이렇게 적신호가 켜졌지만 우리의 준비태세는 한마디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할 정치권은 그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병명이 분명해졌음에도 그들이 내놓은 대책은 악성미봉책 일색이다. 정부여당이 함께 1백30조원대의 국민연금을 경기부양 수단으로 동원하려는 것이나,근원적 해법보다는 모든 경제정책을 색깔공세 몰아가는 한나라당이나 정신못차리기는 마찬가지다.삶에 찌든 국민들의 마음에 따뜻한 처방을 내리기는 커녕 허황된 구호만 앞세워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현실부터 제대로 알려야
또 하나 언론도 문제다.그래도 과거엔 사회의 나침반으로서 여론의 조정 통합 기능을 제법 발휘했는데 지금은 조정·통합보다는 자의든 타의든 대립 갈등하는 세력들의 어느 한 편에 서서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민주사회에서 다양한 여론이 형성되는 것이야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그러나 그 다양한 여론은 지금 우리처럼 치유불능의 국론 분열로 이어지지 말고 언론이 하나로 수렴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언론이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 사회 통합의 역할을 해야하는데 현실은 거꾸로 가고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더늦기 전에 폭력을 부르는 시위는 가급적 중단하고 말을 사용해 상대와 논리와 정책으로 대결하는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정치권에서 동반자 정신을 회복하려면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먼저 팔을 걷어부쳐야 한다.더이상 변죽만 울리는 심리치료를 그만두고 경제위기 상황을 국민앞에 솔직히 밝힌 뒤 암환자를 수술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길고 고된 재생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이같은 선택을 미룬다면, 경제가 정치의 목줄을 죄는 국면은 더욱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도 벌써 2년이 흘렀다.더 이상의 낭비나 시행착오는 없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확실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사용해 국가적 위기를 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