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기부가 더 아름답다

2007년 12월 27일(목) 00:00

김대종 논설주간
　
　그토록'황금돼지띠 해'라고 난리던 정해(丁亥)년이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는 막판 대선이라는 정쟁(政爭)이 한층 세밑을 빨리 닫히게 하는지도 모른다. 저물어 가는 정해년도 양극화의 그늘에서 힘들게 살았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오히려 팍팍해졌다는 볼멘소리가 많다.
　기부문화도 마찬가지다. 광주시공동모금회에 알아보니 2007년도 모금액은 예년보다 턱없이 적다고 한다. 이유인즉, 17대 대통령선거와 경기불황 여파가 주원인이란다. 올해 목표액은 17억2천만원인데 어제 날짜로 고작 5억2천만원이 모금됐으니 초라한 액수다. 사정이 이러니 관내 양로원과 보육원,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들의 집에는 오죽하겠는가 싶다. 그들의 마음은 분명 겨울날씨 보다 더 추울 텐데 걱정이다.
　하지만 이맘때가 되면 익명의 온정이 나오고, 얼굴없는 천사들이 가끔씩 나타나는 계절이다. 지난해에는 매달 수천만원씩 서구청에 전달했던 '얼굴없는 40대 남자'가 우리를 감동시켰다면, 올해는 단연'가난한 동네사람들의 기부행위'가 눈에 띈다할 수 있다.
　얼마전 광주 5개 구청이 구별로 불우이웃돕기에 제일 앞장선 동네를 선정한바 있다. 조사결과 동구지역은 계림1동, 서구는 양동과 양3동(발산마을), 남구는 월산 4동, 북구는 일곡동, 광산구는 평동이 꼽혔다는 것이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기부 내역을 분석한 것이어서 차질이 없겠지만 이중에선 발산마을 얘기가 제일 감동으로 다가온다.
　알다시피 발산마을은 광주에서 가장 노후화된 주택이 많고, 저소득층 비율 또한 최고로 높은 동네다. 그런데도 오래전 부터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후원회를 만들어 수시로 불우이웃 돕기에 나서고 있다니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현재 광주시내에는 전체인구 143만명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수는 4.2%인 6만 4백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발산마을은 전체 동민 4천443명 가운데 기초수급자가 301명(전체 6.7%)이라면 가난의 정도를 익히 알 수가 있다.
　이처럼 경기침체에도 가슴찡한 자선행렬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사회가 희망이 있다는 얘기다. 얼마전 가난한 할머니들의 잇따른 기부 사연도 코끝이 찡하다. 비록 관내 얘기는 아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가 1천만원을, 폐지를 주워 파는 할머니가 900만원을 성금으로 내고, 어떤 할머니는 옥탑방 전세금 1천500만원을 유산으로 내놓았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이처럼 '서민기부'가 대기업들 보다 한층 아름다운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인간미가 진한 감동으로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서민들의 기부와는 달리 우리의 기부문화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통계가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1인당 평균 기부액이 10만원으로 미국의 200만원에 비해 큰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기부 무경험자도 총 인구의 40%에 달한다는 수치도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래서 기부의 모델인 영국 중고품 자선가게인 채리티 숍(Charity Shop)이 자주 회자되곤 한다. 영국은 황실까지 이 숍에 중고품을 내놓고 수선된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국판 채리티 숍이 '아름다운 가게'인데, 국민 참여율을 높인다면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이러한 일을 아우르는 구심점 역할은 지역사회구성원 중에서도 먼저 시민사회단체가 적극 실천에 나선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정해년이 가고, 육십간지중 25번째인 무자(戊子)년 쥐띠해가 다가오고 있다. 가난한 동네의 선행이나 할머니들의 잇따른 성금을 기억하면서 내 주변에는 불쌍한 이웃은 없는지 한 번쯤 되돌아 보는 세밑이 됐으면 한다.
　자고로 우리 민족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국채보상운동과 금모으기 운동을 펼친 민족이다. 그리고 기름제거운동도 마다하지 않고 태안 앞바다까지 달려가는 그런 '따뜻한 마음'의 후예자들이다.
<bigbellk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