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로시티 전남'은 안되나 |
| 2009년 03월 05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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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증도면) 완도(청산면) 장흥(유치면) 담양(창평면),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slow city)'들이다. 내달 18일 이 슬로시티 가운데 한 곳인 완도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린다. 제1회 세계 슬로 걷기축제. 현대인의 건강 지키기 비법인 '걷기'에 '슬로'가 붙은 이유가 있다. 건강도시연맹과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가입 1주년을 기념하고 유엔 산하 '세계걷기도시연맹' 창설과 '세계 걷기의 날' 지정을 한국 주도로 앞당기자는 의지다. 김종식 완도군수는 발빠르게도 지난해 5월 세계 걷기의 날 조직위원회와 함께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만나 세계걷기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해 줄 것을 건의했다. 완도를 '건강의 섬'으로 이미지 메이킹했고, 청산도를 아시아 첫 슬로시티로 만든 김 군수의 '그린 리더십'이 다시 돋보인다.
세계적 유행·문화 '슬로운동'
이탈리아의 그레베-인-키안티(Greve in Chianti), 세계 첫 슬로시티다. 이 곳이 자랑하는 세가지가 있다. 고용율 100%로 전 주민이 직업을 갖고 있고, 소득수준이 이탈리아 중소도시 평균보다 훨씬 높으며, 세계적인 관광도시임에도 범죄율은 전국에서 가장 낮다. 과거엔 우리 농촌처럼 인구와 소득감소, 고령화가 심각했다. 소득원은 해발 500-700m 산간의 계단식 포도·올리브밭이 전부였다. 인구 1만4천명의 보잘 것 없는 이 도시를 탈바꿈시킨 계기가 바로 '슬로운동(slow movement)'이다.
슬로는 '속도'를 뜻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즐거운 기다림'이다. 물질과 기계 속도에 맞추는 대도시가 '패스트시티(fast city)'라면 인간과 자연환경 속도를 존중하는 삶이 유지되는 곳이 바로 슬로시티, '즐거운 기다림의 도시'다.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과거로 회귀하자는게 아니다. 인간과 환경을 위협하는 '효율성'과 '속도' 지상주의서 탈피해 자연적인 삶으로의 복귀를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자는게 목표다. 대량생산과 규격화, 산업화와 기계화를 통한 '패스트 푸드', 맛의 표준화를 지양하고 국가별 지역별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식문화를 계승발전시키려는 움직임을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이라한다. 바로 슬로시티의 출발점이다.
그레베-인-키안티의 파올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 시장이 1999년 '슬로시티 선언문'을 선포하는데는 고집스럽고 의미있는 노력이 뒷받침됐다. 절대로 지역민이 중심이 되고, 지역민 또는 마을이 주인공이며, 철저하게 지역민 소득을 염두에 둔 점이다. 파올로 시장은 취재온 언론이나 견학온 관광객들에게 자신이 아닌 정육점 주인, 포도농장주인 등을 앞세워 '스타'로 만들었다. 일정구역에만 주차장을 만들어 방문객 모두 걸어서 마을을 돌게했다. 도시 전체를 자연친화적 산책로로 만들었다. 마을 체재시간을 늘려 지역내 소비를 높인 것이다. 최초의 슬로시티는 고집스런 지역민과 파올로 시장의 이런 그린 리더십이 더해진 결과물이다.
슬로시티 성공요인은 '참여'
2007년 12월 슬로시티로 지정된 전남 4곳은 어떨까. 일단 문제점보다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 낙후를 탈피할 기력도 없는 곳에서 싹튼 자생적 발전방안 모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4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되기까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행정(도와 군)이 주도해 주민참여가 부족한 점이다. 예외적으로 완도에 '가고싶은섬추진위'가 있지만 슬로시티를 성공으로 이끌기는 부족해보인다. 철저하게 지역민이 중심이 된 커뮤니티운동이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그레베-인-키안티의 교훈을 되새겨야한다.
일본에는 슬로시티와 유사한 '슬로타운'이 있다. 16개 현·도·부 21개 시·정·촌에 퍼진 슬로타운운동은 11가지 계명 자율준수가 골자다. 산지생산 산지소비(地産地消), 농가의 리폼, 향토문화·예능·공예품·요리의 리뉴얼, 1+1^3운동(아이 많이 낳기) 등등. 주택개량에 출산장려까지, '새마을운동'을 연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초가집을 없애고 기와집도 슬래트지붕으로 바꾸는 '패스트운동'이 아니라 슬로운동인 점에서 근본이 다르다. 이런 일본에서처럼 완도 등 4곳에서 시작된 슬로시티운동을 전남 전역에 확산시켜보면 어떨까. 아예 전남도정과 22개 시·군정의 방향을 슬로운동으로 바꾸고, 모든 자체 투자를 슬로시티 만들기에 쓰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