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야구전쟁'에 관한 斷想 |
| 2009년 04월 02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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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한국과 일본의 승자전을 하루 앞둔 지난달 17일. 완봉승과 콜드게임승을 주고받은 한·일 양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일본은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1시간30분가량 공식훈련을 했다. 한국선수들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도 포함됐다. 전날 밤 늦게 열린 한국-멕시코 경기에는 전력분석요원을 대거 투입해 면밀히 분석했다. 한국은 어쨌을까. 선수들에게 자유시간을 줬다. 밤늦게 경기를 마쳐 피곤한 상태여서 "훈련보다는 쉬는게 보약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런 두 팀의 대조적인 모습을 묘사한 연합뉴스 기사가 재미있다. "양팀의 판이한 훈련 스타일은 문화적인 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완벽하고도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비난이 쏟아지는 일본 국민과 과정보다는 결과(목적)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한국사회의 차이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포츠와 집단무의식
이어령은 "'로마인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도 '한국인 이야기'는 이념논쟁을 해야 하는 재미없는 역사교과서에서 배울 수밖에 없다는건 우리의 불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왕에 스포츠와 국민성이 연계된 마당이다. 우리의 집단무의식(성향)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무의식은 자아와 외부 사이 내사(introjection)와 투사(projection)의 동적양상에 의해 형성된다는게 '신프로이트학파'의 생각이다. 자아가 원하는 대로 가려는 '자아이상(ego ideal)'과 자아를 억제하려는 '초자아(super ego)'가 있어 인간은 항상 현실에 순응하려는 욕망과 변화를 추구하려는 욕망이 갈등한다. 인간이 경험한 최초의 좌절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형성된, 자아를 억제하려는 욕망이 초자아다. 독일 비판이론가들은 오이디팔(Oedipal) 기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경쟁자로 아버지를 인식하면서 인간은 정당한 권위와 법의 필요성을 깨닫는다고 본다. 산업사회 특징이 (아침에 출근해 밤늦게 귀가하는 家長에서 보듯) 아버지의 권위상실이고, 이는 옳고 그름의 판단의식까지 앗아가 결국 "현대사회는 건전한 권위마저 사라진 자기도취주의적 사회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어쨌든,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이 '목적중심의 사고'인 것은 농경문화에 뿌리를 둔다. '나'보다 '우리'가 강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목적중심의 사고가 수단·방법 안가리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무의식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불행히도 우려는 군사독재를 거치며 현실이 됐다. '안되면 되게하라' 식으로 절차(이는 민주주의 기본이다)를 무시하는 퇴행성을 부추긴 것이다.
일제강점과 6·25, 5·16 등 사회변동의 영향도 컸다. '거시기'라는 단어서 연상되듯 (낮에는 경찰, 밤에는 공비가 장악하는 마을 주민들처럼) 자기 소신대로 행동하기 어려운 무의식을 낳았다. 무소신의 자아는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이의 해소를 위해 타인에게는 분명한 소신을 요구한다고 한다. 논리야 있건 없건 분명한 소리를 해야 용기있는 사람이다. 갈등해소를 위해 양쪽의 의견을 모두 듣는 이는 소신없는 기회주의자다. 김용신은 '보수와 진보의 정신분석'이란 책에서 "우리의 정치·사회적 갈등이 항상 양극의 극한 상태인 것은 바로 이 목적중심의 사고와 흑백논리의 무의식 때문"이라고 본다. 나아가 "감성이 풍부한 우리 국민성이 합해져 한국인은 논리를 떠나 일단 우리편이 이겨야 한다는 감정이 먼저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또 묻혀버린 스포츠의 현실
본론으로 가보자. 야구전쟁을 앞둔 양팀 표정을 국민성으로 대비시킨 기자는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승자전만 놓고보면 이긴 한국이 정답이다. 그 뒤 결승에서 패했으나 언론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쏟았다. 비록 2승3패이긴 해도 아시아 최고 일본야구의 콧대를 꺾었다는 목적달성의 포만감에서였을까. 네티즌들은 봉중근을 '안중근의사'에 빗대 '봉의사'라 불렀다. 한·일 야구의 기본과 토대에 터무니없는 격차가 있기에 오히려 한국야구가 한수 위라는 기막힌 표현도 나왔다. 그러면서 맨 땅에서 뒹굴어야 하고 지켜보는 관중없이 경기해야 하는 한국야구 꿈나무들이 처한 현실은 또 외면당했다. 안되는 걸 되게 했다는 찬사에 또 묻혀버렸다. 결과에 환호하기보다 기본이자 토대부터 튼튼히 다지는 변화는 정말 우리에겐 요원할까. 2차 야구전쟁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 정답은 일본이었다는게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