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노선(Maginot Line)' |
| 2009년 04월 16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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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1998년 개봉 영화 '아미스타드(Amistad)'는 실제 있었던 노예들의 반란을 다룬다. 칠흑 같은 겨울밤, 비바람 속에 53명의 흑인을 싣고 쿠바 해안을 떠난 아미스타드호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주모자 신케이와 흑인들은 항해를 계속할 선원 2명을 제외한 모든 백인을 무참히 살해한다. 항해기술이 없는 흑인들은 살려둔 선원들에게 키를 맡긴 채 아프리카로 가는 중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코네티컷 해안, 결국 미군 함대에 붙잡히고 만다. 같은 시기 개봉된 영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Titanic)' 역시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이 그 배경이다.
'아미스타드'와 '타이타닉호'
버락 오바마의 500만개 일자리 창출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책 '그린 칼라 이코노미(The Green Collar Economy)'에서 저자 반 존스(Van Jones)는 지구가 처한 상황을 '아미스타드가 타이타닉을 만났을 때'로 표현한다. 반란에 성공한지 불과 두 달 후 감옥에 갇히게 되는 신케이 같은 영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빙산에 충돌할 운명인 배(지구)의 항로를 바꾸고, 이를 위해 모든 이의 지혜와 힘을 결집시켜야할 때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환경운동단체 '그린 포 올(Green For All)'의 설립자 겸 의장의 주장인 만큼 흔한 환경론자들의 걱정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쓴 책이 오바마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지침서인 점만 보더라도 심상치 않은 비유다.
'제3의 물결'의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도 '불황을 넘어서(Beyond Depression)'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금 경제위기는 그 전까지의 위기와 다르고, 지도자들이 그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파국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글로벌 카지노로 변한 세계경제의 흐름 속에서는 각국의 금융정책은 잠자리채로 코끼리를 잡는 격이다…. '석유·밀·빈곤의 과잉'으로 요약되는 대공황과도 다르다. 지금 경제위기는 수요부족 아닌 식량과 에너지의 공급부족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 유례가 없는 사회변화 폭과 속도를 감안한 경제학이어야 치유할 수 있다…." 요컨대 현재의 경제위기는 과거의 치료방식으로는 결코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이 경제위기 해결을 위해 추진 중인 정책의 화두는 단연 '그린 뉴딜'(또는 뉴 뉴딜)이다. 오바마가 창출하겠다는 일자리는 '그린칼라'(보다 친환경적으로 업그레이드된 블루칼라를 뜻한다) 위주다. 일본 정부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절반으로 감축한다는 목표다. 유럽 각국도 한결같이 '그린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일피크(oil peak)'에 대한 논쟁이 일단락되면서 국제에너지기구(IEA)조차 2012년께 석유위기가 닥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 뉴딜'과 '뉴딜 2.0'
우리 상황은 어떨까. 이명박 정부 역시 핵심 국정 아젠더로 녹색성장을 내걸고 있다. 50조 규모의 '녹색뉴딜정책'은 이미 시행중이다. 국회에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상정돼 있다. 하지만 이를 반겨야 할 환경단체들은 '포클레인 성장' 또는 '녹색세탁'이라고 비판한다. 핵심인 재생에너지산업, 열복합발전, 유기농생산증대 등은 이름뿐이고, 그린뉴딜과는 반대되는 핵산업활성화, 4대강정비사업, 물산업육성 등이 주류를 이룬 때문이다.
반 존스는 "일시적으로 이 기업 저 기업에 감세혜택을 주거나 한두 군데 청정에너지기업에 임시보조금을 주는 정도로는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고 말한다. 대공황에 대한 처방이 연상되는 '뉴딜 2.0'으로는 3년 뒤 더 심각하게 다가올 에너지 및 식량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고도 말한다. 앨빈 토플러에 따르면 이는 마치 2차 대전 발발 전 막강한 화력과 방어력을 지닌 마지노 요새를 건설했지만 요새의 총구가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의 처방이 과연 총구를 제대로 겨누고 있는지 정말 심각하게 되짚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