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거리의 '위기' |
| 2009년 04월 30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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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식품사고가 거의 주기적으로 터진다. 내용도 점점 더 충격적이다. 의식주 관련 제품이 중국산 아닌 경우가 드물지만 특히 식당에선 중국산을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정말 예외일 것같은 설렁탕, 갈비탕도 우리 것이 아니다. 맛을 좌우하는 육수 농축액이 중국산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 농축액에서 '클렌부테롤'이 검출됐다. 천식치료제로 기관지 이완효과가 있어 1회 투여만으로도 빈백(맥박이 빨라지는 현상)이나 어지럼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주·전남의 김치 대표 브랜드 '감칠배기'에는 중국산 고춧가루가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원산지 표시단속이 강화됐지만 김치를 제조하는 업체에 납품하는 고춧가루는 잘 단속하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린 유통업자의 소행이었다. 국산 저질 마른고추에 중국산을 혼합한 정도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김치宗家'의 자존심은 말이 아니다.
식품사고 왜 끊이질 않나
국내 수입되는 식품 80% 가량이 서류검사와 관능검사로 검역을 통과한다. 검역을 거쳤다고 안심하고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시수거해 검사해야 하나 최근 식약청장이 흘린 '눈물'이 암시하듯 인력 장비 모두 여의치 않다. 결국 우리도 모르게 천식치료제가 든 설렁탕과 멜라민이 섞인 분유, 말라카이트그린이 함유된 장어구이, 살충제가 든 냉동 고등어 등을 섭취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간다.
왜 이렇게 됐을까. 영어에는 없는 '슬로 라이프(slow life)'라는 말을 세상에 처음 퍼뜨린 한국계 일본인 쓰지 신이치는 그 원인을 음식의 '패스트푸드화'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패스트푸드는 단지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올림픽 구호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를 식생활에 적용한 것이 패스트푸드다. "음식이나 요리법뿐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사람들의 생활,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산업구조 등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양식이자 사상"이라는 것이다. 더 싼값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해야하는 체제가 식생활에 도입되면서 나타난 규격화된 대량생산과 유전자 조작 등으로 대변되는 이 패스트푸드문화가 바로 식품사고를 끊이지 않게 만든 장본인이다.
패스트푸드문화의 또다른 폐해는 신토불이의 '실종'이다. 1991년 백형조 전남지사가 즐겨 써 제법 유행했던 신토불이는 '우리 몸엔 우리 것이 최고'라는 생각이다. 1989년 카를로 페트리니가 이탈리아 로마의 유서깊은 스페인 광장에 '맥도널드'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주창했다는 슬로푸드운동과도 그 맥이 닿아있다.
'슬로푸드' 그리고 '신토불이'
얼마전 '슬로시티 증도'에 가던 길에 신안 임자도서 열린 튤립축제장에 들렀다. 갑자기 쌀쌀해진 탓에 꽃은 시들고 찾는 이도 별로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축제장이면 어디나 있는 먹거리판은 그래도 인상적이었다. '슬로푸드점'라고 이름붙인 것이 맘에 들었고, 주민들이 손수 재배한 농산물로 직접 만들어준 해물파전과 동동주는 일품이었다. "슬로푸드가 뭐냐"는 질문에 주인은 서슴없이 "우리가 직접 만든 음식"이라고 답했다. "음식 앞에 '맛있는'을 넣어야 맞다"고 맞장구칠만큼 해물파전과 동동주는 별미였다. 임자도 주민들에게 슬로푸드는 이처럼 신토불이와 같은 개념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빈발하는 식품사고의 대안으로 떠오른 슬로푸드운동은 어떤 음식이 좋은 음식인지에만 관심 갖는 것이 아니다. 음식과 그 재료가 어느 지역 산물이고, 누가 생산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생산될 확고한 보장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이성적인 것이다'는 기조가 짙게 깔려 있다. 슬로푸드를 신토불이로 이해한 임자도 주민 생각은 그래서 옳다.
현대인의 식생활에 있어 음식으로 합당한 조건의 95%를 충족시키는 식물은 겨우 30종뿐이라고 한다. 소는 더이상 풀을 뜯지 않고, 산업폐기물이 먹이사슬에 끼어들어가며, 야채와 동물은 더이상 농민이 기른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의 합성품이 되어간다. 이처럼 지역성과 계절을 무시한 식료품이 판치면 식품사고는 피하기 어렵다. 임자도 주민들이 옛방식대로 키운 농산물이 멀지않아 각광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더욱 확실해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