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追慕民心 읽는 법' |
| 2009년 05월 28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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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봉하마을 방문객이 나흘만에 60만명을 넘었다. 전국 각지 시민·공식·사찰분향소까지 합하면 조문객은 영결식 전날까지 2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처럼 사상 유례없는 추모행렬을 어느 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진정성이나 삶의 원칙에서 존경심을 이끌어낼 사람을 갈구하는 국민 마음이 노 전 대통령을 향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분향소마다 비치된 방명록 취재기사에서도 그 열기는 전해진다. "한 노인은 '이 큰 슬픔과 충격이 이 나라의 평화와 정의가 되게 하소서'라고 썼다. 어떤 여성은 '대통령을 향한 비난에 큰소리로 분개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적었다. 한 여대생은 '당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합니다'라고 쓰다 눈물을 흘렸다. 어떤 이는 '평생을 불의와 싸우신 당신, 끝내는 자신까지도 용서하지 못하신 당신, 당신은 성자입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탄핵 반대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긴 하다. 그렇더라도 그의 죽음을 이토록 애석해하는 이유는 과연 뭘까. 시민분향소에서 조문한 것도 부족해 국화꽃 한송이 놓기위해 기어이 봉하마을까지 찾아가는 정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분향소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는 그 이유를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에서 찾는 이가 많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열네줄짜리 짧은 글이지만 행간의 의미는 깊다. 인터넷에선 한줄한줄 해석을 붙여놓을 정도다. 곳곳에 담겨진 실망감, 허탈감, 자괴감 등은 그가 검찰에 소환될 때 무심코 쏟아냈던 비난과 야유를 후회하고 미안하게 만든다. '화장'과 '작은 비석'에 이르면 "아 그는 이런 사람이었구나"는 느낌까지 든다. 비록 짧은 글이지만 이처럼 구구절절 국민들 마음을 움직인 것이 지금 추모행렬을 끊이지 않게 만드는 이유라는 것이다.
물론 그를 추모하는 이들만 있는건 아니다. 여전히 그를 비하하는 날선발언이나 댓글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다. 한 신문은 그의 죽음을 '사거(死去)'로 표현했는가 하면, 언론들이 그 높임말인 '서거(逝去)'를 쓴데 대해 "비언론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비민주적 용어"라고 공개비난한 이도 있다. '호남 비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이효선 광명시장은 시민분향소에 대해 "시설물을 치우라"고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보통사람들의 동의를 얻기도 어려울 뿐더러 도리에도 안맞다. 산자에 대한 우상화는 위험한 일이지만 죽은자에 대해서는 허물은 덮고 공적은 칭송해야 한다고 여겨온 우리 미풍양속에도 배치된다.
어쨋든 전직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는 긴 행렬에 담긴 민심을 읽어내는 것은 이제 정부나 정치권의 숙제로 남겨졌다. 생전에 고인이 소수의 목소리로 외롭게 추구했던 탈권위주의, 민주주의, 화해와 평화의 남북관계, 그리고 지역균형발전 등은 살아있는자의 몫이 됐다. 다양한 견해와 요구가 정당정치를 통해 흡수되지 못하는 우리 현실이 걱정이긴 하다. 이 때문에 생긴 수많은 비정부기구(NGO)도 미덥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비극이 다시 없게 하려면 추모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보수성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최근 논평은 이점에서 참고할만하다.
"노 전 대통령의 반대세력들은 그의 임기내내 '자격도 안되는 인물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의 정책에 대한 평가들도 여기에 맞춰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몇가지 실수로 비판세력에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는 정치적 반대자로부터 '적대적'인 취급을 받았다. 그가 틀림없이 자신에 대한 '몰이사냥'으로 간주했을 일들을 견뎌내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불법정치자금을 유용하는 전형적인 정치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죽음이 한국에서 정치논쟁의 강도를 줄일 수 있다면 헛된 일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