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자유주의자의 양심' |
| 2009년 07월 23일(목)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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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건국대통령은 우리 민족에 자유를 선물했다. 탁월한 외교력으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한 한미동맹을 체결했다. 그 결과 70년대까지 GNP 대비 4%대의 국방비 지출 및 절감을 통해 경제개발 우선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현재의 경이적인 대한민국 국가발전은 2차대전 후 다른 나라들의 엄청난 국방비 지출(GNP대비 10~20%)과 비교되는 우리나라 국방비 절감이 그 배경이다…."
지난 18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서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 44주기 추모식에서 한 보수단체 대표가 낸 논평이다. 근현대사에 대한 필자의 지식이 일천한 탓도 있겠지만 참 생뚱맞다. '건국대통령' 운운이나 '국방비 지출 및 절감이 경이적 경제성장의 배경'이라는 주장에는 억지가 느껴진다.
이 단체가 속한 소위 '뉴라이트'의 우리 역사구분은 1948년부터 시작되고 1960년까지를 '건국의 시대'로 본다. 이후 '개발의 시대'(1961-1987)와 '민주화의 시대'(1988-2007)를 지났고, 지금은 '선진화의 시대'(2008-현재)다. 이 기간 대한민국 국민들이 수세대에 걸쳐 누린 모든 혜택이 이 전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력과 그로인한 한미동맹의 결과라는게 논평의 요점이다.
역사인식엔 다양한 시각과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 존경심이라면 모를까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공로를 모두 이 전 대통령에 돌리는 시각은 특정인의 역사관까지 비판할 능력이 없는 필자가 봐도 문제다. 이 전 대통령이 만든 민족분단과 독재의 긴 터널을 어렵게 헤쳐온 '국민의 힘'은 통째 무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효종 교수(서울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념을 따지는 것은 무분별한 소금치기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작금의 사회분열은 이념의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어야 할 곳에 이념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이후 소고기를 먹으면서 이념을 떠올리는 반면 한·EU FTA 체결에 극렬한 반대가 없었던 것은 이념보다 경제적 실익의 관점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사회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탈이념이 아니라 이념의 오·남용을 막는 절제된 행위다"는 것이 박 교수의 결론이다.
명쾌한 지적이다. 최근의 혼란이 이념과잉에서 초래됐다는 지적도 타당하다. 하지만 그가 대표적인 보수논객임을 감안하더라도 비판의 화살이 주로 진보단체들을 겨냥해 있는 것에는 공감하고 싶지 않다. 이승만을 건국대통령으로 보는 것처럼 보수단체의 이념과잉이야말로 더 심각한 것은 아닐까? 보수와 극우의 경계조차 불분명한 상황속에서 만들어진 정부정책들이 불도저처럼 밀어붙여지는 현실이야말로 혼란의 근본원인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장 소통 잘하는 보수인사'로 꼽힌 박 교수가 최근 혼란의 원인을 진보세력의 무분별한 소금치기탓으로 돌리는 것 자체가 이념과잉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신아시아구상'에 따른 아시아 모든 나라와 FTA 체결, 공기업 민영화, 공공부문 고용축소, 상위 1%를 위한 감세정책 등 이른바 최근 쟁점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빼닮았다. 정작 신자유주의는 지난 30년간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주권 손상, 착취 심화, 환경 악화, 기업권력 확대 등의 비판을 받았다. 급기야는 금융위기를 초래하며 미국까지도 이미 폐기한 노선이다. 그런데도 정부 정책이 폐기된 흐름을 타는 것은 극우의 이념과잉으로 밖에 볼 수 없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어느 자유주의자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Liberal)'이란 책에서 "상위 1%의 이익을 위한 비양심적 신자유주의 정책은 미국의 중산층을 붕괴시켰다"고 비판했다. '서민행보'를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보수주의 핵심덕목이면서도 이념과잉 때문에 실종된 민족주의를 바로 보아야 한다. 인권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심도 더 필요하다. 무엇보다 극우에 봉쇄된 합리적 보수의 뒷받침은 더욱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