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金大中…盧武鉉…'

2009년 08월 20일(목) 00:00

　이춘성 수석논설위원/지역경제문화연구소장
　
　문득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난다. 생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깍듯이 대했던 그였단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선 종종 'YS'라고 호칭했지만 측근들과의 자유스러운 대화에서조차 단 한 번도 김 전 대통령을 'DJ'라고 불러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한 측근이 대화도중 자신도 모르게 'DJ'라고 말하자 노 전 대통령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 측근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로 민망했었다는 후문이다.
　2003년 대통령 취임 후 가진 청와대 만찬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특검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하다 실신 직전까지 갔다. 당시에는 확인되지 않은 가십성 기사거리였지만 김 전 대통령의 원통함과 분노는 극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 주치의가 달려오고 가까스로 진정한 김 전 대통령은 휠체어에 실려 아무도 모르게 청와대를 빠져 나갔다. 이 때 노 전 대통령은 현관 앞까지 달려 나와 발을 동동 구르며 한동안 어찌할 줄 몰랐다고 한다.
　이런 노 전 대통령에게 김 전 대통령 역시 극진했다. "전생에 친형제였던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때에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애통해했다. 노 전 대통령 국민장이 열리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지만 영결식 후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소리 내어 통곡한 그는 그날부터 꼭 82일째 되던 날인 그저께 인동초 같은 삶을 마쳤다. 아마 '동지'를 잃은 마음의 병이 아흔을 내다보는 그의 허약한 육신을 허물어트렸을 것이다. 결국 먼저 세상을 등진 노 전 대통령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접한 소설가 이외수는 "하나님, 이제 대한민국을 버리시는 일만 남았습니다"고 애도했다. 시인 고은은 "숨이 막혀 말이 안 나온다"고 애통해했다. 하지만 호남인들은 이런 비통함을 넘어 공허함을 느낀다.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이 만들어낸 '호남의 한'을 해원하던 창구가 '노무현과 김대중'이어서만이 아니다. 이들이 민주와 인권, 민족과 평화를 상징하는 두 얼굴인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접하며 노 전 대통령을 생각한 건 이 때문이다. 두 사람의 연이은 서거를 보는 호남인들은 그래서 허전하고 마음이 싸하다.
　김 전 대통령은 올 신년하례 인사말에서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경제위기' '남북관계의 위기', 그리고 '민주주의 위기'로 규정했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한 채였지만 가는 곳마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와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한 '행동하는 양심'을 부르짖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선 못 다한 추도사로 "죽어서도 죽지 말고 힘이 되어 달라"고 붙잡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이랬던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모두가 떠났다. "민주주의를 위해 서럽고 캄캄하고 한 많은 세상을 후손에게 넘기지 않고 자유가 들꽃같이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통일에의 꿈이 무지개처럼 솟아오르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국민) 여러분이 중심이 되어 투쟁할 것"을 신신 당부하며 그들은 떠났다. 먹먹하고 답답하다. 산자들이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워 보이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