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선의 경우…

2009년 09월 03일(목) 00:00

　이춘성 수석논설위원/지역경제문화연구소장
　
　제1야당인 민주당의 단독 과반수 확보로 끝난 '8·30 총선' 결과를 놓고 일본 열도가 뜨겁다. 전후 54년간이나 지속된 자민당 장기 지배체제가 끝나고 역사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총선 결과를 '세기의 전환'이라고 부르기는 좀 거창하지만 일본 역사를 바꾸는 대사건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야마구치(山口) 현립대 아사바 유키(淺羽祐樹) 교수 지적처럼 "유권자들의 변덕스러우면서도 무서운 힘을 통해 정권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민주주의의 진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점이 우선 그렇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은 이번에도 또 한 나라의 역사를 바꿨다. 특히 '뉴재팬'을 열망한 일본 유권자들의 바꿔 열기는 지난해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미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과 닮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자민당 집권 54년은 빈부와 도·농간의 격차 확대, 비정규직의 대폭 증가 등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했다. 한 예로 일본에서는 일을 해도 소득이 늘지 않는 서민층 비정규직을 뜻하는 '워킹푸어계층(근로빈곤층)'이 1천만명(우리나라는 300만명으로 추산)에 달한다. 4년 전 선거에서의 자민당 승리는 이처럼 중증인 '일본병'을 진단하고 치유할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인기에만 편승한 나머지 그 이후 정권을 갖고 놀다시피 총리를 바꿔 맡는 등 정부·여당으로서 당연히 져야 했던 책임을 스스로 배반했다. 그래서 유권자들의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 아사바 유키 교수가 내린 결론이다.
　이른바 '오바마노믹스'로 치유중인 미국 역시 최상위 1%가 國富의 거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1억1천300만명이 심장병과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지만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4천700만명이나 된다. 자녀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사람은 3천700만명이나 된다. 오바마가 전국을 돌며 '바꾸자(change)', '할 수 있다(Yes, We can)'고 외친 연설을 들은 미국인들은 그래서 눈물을 흘렸고, 그들 역시 역사를 바꿨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사회 양극화는 대학을 갓 나온 사회초년생부터 시작된다. 두 배 가까이 벌어진 대기업과 중소기업 초임연봉차는 무려 1천120만원이다. 도시근로자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격차도 지난해 9.32배에서 올해는 10.67배까지 벌어졌다. 2005년 이후 가장 큰 차다. 소득 상·하위 격차만 문제가 아니다. 상위 10%의 소득증가를 나머지 계층이 따르지 못한다. 상위 10%의 소득 독식을 의미하는 것이자 중산층의 몰락을 뜻한다.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심각한 양극화는 비좁은 국토에도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지역내총생산(GRDP)의 기준연도를 2000년에서 2005년으로 변경해 2007년 경제현황을 분석한 결과 수도권 경제규모는 478조원으로 전국 비중이 48.6%에 달했다. 반면에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8개 도의 경제규모는 328조원으로 한국 경제의 33.4%에 불과하다. 쉽게 말하자면 서울 강남의 아파트값은 전남보다 무려 10배이상, 광주보다도 9배이상 비싸다. 중앙과 지방의 격차는 10배가 넘은 소득 상·하위 10% 격차와 딱 일치한다.
　오바마는 양극화의 결말을 이렇게 우려했다. "소박한 꿈과 작은 기적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밤에 자녀들을 꼭 껴안을 수 있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 갑자기 우리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글로 쓸 수 있다는 믿음, 뇌물을 주지 않고도 아이디어를 내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까지도 앗아갑니다…."
　미국에 이어 일본인들이 변화를 선택한 것은 이처럼 소박한 믿음까지 빼앗겨 절망하기 전에 양극화 해소대책을 세워달라는 뜻이다. 물론 시작일 뿐이다. 오바마노믹스가 가시밭길속이듯 '신일본' 구상 역시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자민당을 '이마시메루(벌을 주다는 뜻)'한다는 의미이지 민주당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는 표심분석도 있는 것으로 보아 민주당의 진로 역시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더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지않도록 변화를 선택한 양 국민들의 도전만큼은 정말 부럽다. 대책없이 심화되어만 가는 우리사회 양극화를 생각하면 더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