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포비아(fluphobia)'

2009년 09월 17일(목) 00:00

　이춘성 수석논설위원/지역경제문화연구소장
　
　신종플루(인플루엔자A) 감염확산을 막기 위해 연인원 1천명 이상의 축제와 행사를 취소·연기하라고 '강권'했던 정부가 열흘 만에 기준을 바꿨다. 만 5세 미만 영유아나 65세 이상 노인 등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행사와 감염예방조치를 시행하기 어려운 실내행사만 취소·연기하고 옥외행사는 지자체 판단에 맡긴 것이다. 전국적으로 300여건의 행사가 다시 열릴 수 있게 됐지만 지자체와 지역민들은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지난 주말과 휴일에만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신종플루는 여전히 기세등등하기 때문이다.
　26년 전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 발병 이래 인간변종광우병,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조류독감, 신종플루로 이어진 새로운 전염병의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대응은 전염병마다 달라 에이즈와 광우병은 위험성이 과소평가된 반면 사스나 조류독감은 정반대였다. 신종플루는 위험을 과장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과연 우리 정부도 '경제위기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대처능력을 과시하는 한편 실제 위험에 비춰 도가 지나친 예방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일까?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발행하는 월간 '디플로마티크' 9월호(한국판,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가 편집인이다)는 신종플루가 만들어낸 공포증(fluphobia)을 머리기사로 다룬다. 사회의 '대형 공포'를 주로 연구해온 드니 뒤클로(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는 '플루포비아, 불온한 진실'이란 글에서 "문제의 전염병(신종플루)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동시에 맹목적 공포에 빠지지 않으면서 실질적 위험과 허상을 구분할 때가 왔다"고 분명히 강조한다. 눈여겨볼 그의 주장은 대략 두 가지다.
　첫째로 아직까지는 잠재적 수준인 신종플루 위험성에 대해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부정적 결과만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지구의 종말이라도 되는 듯 위험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귀 얇은 이들의 불안감만 가중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한 상상만 부추길 뿐이다"고 말하는 그는 신종플루와 백신이 통제 불가능한 인구를 감소시키기 위해 이용된다는 주장 같은 허황된 '바이오테러리즘'을 난무하게 하거나 더 나아가 합리적인 보건정책 일체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 한다고 우려한다.
　둘째로 '공포의 저울 위에서 모든 질병이 같은 무게를 갖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말라리아는 지금도 거의 모든 이들의 무관심 속에 100만명씩 희생자를 내고 있다. 당뇨병은 매년 4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세균성 혹은 바이러스성 위장염으로 매년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 100만명, 성인 60만명이 숨진다. 반면 신종플루는 겨울에 치사율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나 발병 8개월 동안 1천250명이 사망해 계절독감으로 인한 평균사망자수(전 세계 매년 30만명)에 훨씬 못 미친다. 신종플루에 매겨진 공포의 무게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다.
　개인위생관리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에게 신종플루는 분명 만만한 질병이 아니다. 치사율은 낮지만 전염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직접 나서 지역축제와 행사까지 취소시켜야 감염확산을 막을 수 있는 질병은 더구나 아니다. '비행기에 숨어든 모기도 세계여행을 하는 시대'에 신종플루 감염확산을 막을 조처는 (철저한 개인위생관리 외엔)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때마침 귀화인 첫 공기업(한국관광공사) 사장인 이참이 정부 지침을 비판하고 나섰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중국, 태국, 홍콩, 대만, 호주 등 신종플루가 만연하고 있는 각국에서 국제행사나 지역축제 등 관광 관련 행사가 취소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전염병 전문가인 마르크 장틸리니는 "전 세계 위생 실태를 감안해보면 현재 신종플루에 두는 무게는 적절치 않다. 부적절함이야말로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지구 곳곳의 상황을 볼 때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인플루엔자를 피한답시고 감행하는 모든 조처들이 부끄러울 지경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이참의 지적이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의 축제금지조치는 '유행병처럼 번진 부적절함'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