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사람이 바꾸지만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교육" 전 장성군수 김흥식 남성숙 논설주간 nam48@kjdaily.com

2009년 09월 28일(월) 17:35

사진^김애리기자 kki@kjdaily.com

[만나고 싶었습니다] 전 장성군수 김흥식
남성숙 논설주간 nam48@kjdaily.com

　지자체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바로 공무원입니다.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1등이 될 수도 있고 꼴찌가 될 수도 있습니다.…나는 당장 계급이 높을수록 도장만 찍는 그런 식의 근무 태도를 뜯어고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장성 아카데미를 통해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실수를 하더라도 담당자를 문책하지 않았습니다. 한번 실수를 문제 삼으면 대부분은 다음 일을 벌일 때 위축되거나 아예 일을 벌이지 않습니다.…사람에겐 인성과 능력이 모두 중요한 요소이지만, 인성이 능력보다 중요합니다. 신뢰는 인성을 바탕으로 하고, 신뢰받는 사람은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합니다. 인정받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더 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다른 공무원보다 곱절로 신바람 나게 일합니다.
　　
　앨빈 토플러는 21세기 경제로 달려가는 주요 기관들을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에 비유했다. 그리고 각 기관에게 속도 측정기를 들이댔을때 그 기관이 보이는 '변화의 속도'가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 적응력이 탁월하고 미래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뜻이다. 앨빈 토플러의 진단에 의하면, 시속 160킬로미터로 가장 빠르게 질주하고 있는 것은 기업이다. 그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민첩하게 움직이며 기업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자신과 같은 속도를 내라고 요구한다. 쏜살같이 질주하며 변화를 선도한다. 상품, 시스템, 회계, 유통, 기술, 노동력 등 모든 면에서 기업은 16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다. 기업 바로 뒤에서 시속 14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는 것은 시민단체라고 한다. 그들은 환경, 정부규제, 국방비지출, 인권 등 수많은 이유를 들어 변화를 요구하거나 부당한 변화에 반대한다. 그렇다면, 행정부인 중앙정부와 정부기관, 지방정부의 변화 속도는 어떨까? 앨빈 토플러는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의 4분의 1 밖에 안되는 느린 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에 비하면 지방조직은 그야말로 태평하게 걷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앨빈 토플러 진단 방식대로 대입해보면 지자체는 4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다. 그러라 김흥식(73) 전 장성군수가 민선 군수로 일한 11년을 자동차경주에 견주어 보면 적어도 기업의 속도, 160킬로미터로 달렸다. 인구 5만의 시골 자치단체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하나로 우뚝 선 이유는 장성의 대변화를 주도한 CEO 군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160킬로미터가 가능했던 이유는?
　－처음 장성군이라는 차 핸들을 잡았을 때 자동차 상태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길을 달리는데 적합하도록 자동차를 재정비할 필요가 절실했습니다. 구형 엔진은 출력이 떨어져 힘이 약했습니다. 바람 빠진 타이어는 공기를 더 넣어야 했습니다. 보닛 안에 들어있는 각종 기계 장치들 중 낡은 것들은 새로운 부품으로 바꿔야 했습니다.

　▲무조건 액셀을 밟는다고 속도를 낼 순 없잖습니까.
　－속도를 좌우할 엔진에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장성군이라는 차의 엔진은 두 개 '공무원'과 '군정을 이끌어가는 원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속도를 내기 위해, 먼저, 변화 속도를 떨어뜨리는 주범인 관료주의와 불합리한 관행을 뿌리뽑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당연한 것처럼 통용되던 관행은 내가 싸워야 할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굳어진 공무원의 의식과 행동에서 관료주의를 없애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교육'이십니까?
　－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공무원의 의식과 행동을 바꾸는 것 만이 뿌리 깊은 관료주의를 떨쳐낼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었습니다. 의식의 혁신은 공무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군민들 역시 변해야 했습니다. '주식회사 장성군'의 성공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무원과 군민, 군수가 모두 혁신적인 의식, 생각을 공유해야 했습니다.
　이 같은 필요에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장성 아카데미'다. 변화와 의식개혁의 산실이 된 장성아카데미는 대한민국 최고라고 인정받는 이들의 강의가 매주 2시간씩 꾸준히 계속되었다. 장성아카데미를 통해 공무원, 군민, 군수는 21세기에 필요한 경영마인드를 공유했다. 장성아카데미는 '21세기 장성군의 비전과 발전을 위한 연구모임'이라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 아카데미는 1995년 9월 15일 첫 강좌를 가진 이후 11년 동안 500회 가까운 기록을 세우며 전국 지방자치단체 교양강좌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1995년 민선 1기부터 3선 연임을 하고 물러난 김흥식 장성군수는 '주식회사 장성군'의 CEO로 불린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주식회사 장성군'의 설립을 선언, 군청 내에 '경영관리팀'을 구성하고 팀제를 도입했다. 초등학교 교사와 행정 공무원, 교육위원을 거쳐 기업체에서 부사장을 지낸 경력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보다도 공무원과 기업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기업의 경영마인드를 행정에 접목해 공무원조직의 규정과 관례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개혁에 착수했다.

　▲군 행정 CEO개념을 도입한 것은 군수님이 처음이시죠?
　－제가 '주식회사 장성군'을 쓴 다음에 '주식회사 대한민국' 등 행정에 CEO 바람이 불었지요. 지자체장이야말로 유능한 사장이어야 합니다. 저는 주주인 군민을 주인으로 소중히 섬기겠다는 맹세와 함께 '교육' '문화 관광''첨단산업 유치'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취임 후 3년간 오전 5시 반이면 일어나 읍·면·이장에게 전화를 걸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처음에 이장들은 "나 군수요. 동네에 무슨 일 없어요?"라고 물으면 놀랐다. 이런 대화가 3년간 이어지자 그는 군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알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걸려오는 안부 전화에 감동해서 이장들은 그가 하는 일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문화와 관광산업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마치 옛것이 없고 오로지 새것만 있는 것 같다. 외국은 옛것을 팔아서 먹고산다. 우리도 옛것을 활용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동안 주목하지 못했던 자원을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내세운 사업이 홍길동 캐릭터 사업이었다. 요즘 웬만한 지방자치단체도 캐릭터를 다 개발하고 있지만, 원조는 장성의 홍길동 캐릭터였다. 장성군은 이러한 경영마인드로 민선 자치 출범 이후 1996년 정부를 상대로 사업비 2천183억 원을 따낸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중앙부처와 언론사, 경제단체가 주는 상을 휩쓸어 106억 원의 상금을 휩쓸었다. 그래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깡다구' '원칙 맨' '불도저' 등 이다.

　▲변화와 혁신으로 가는 길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으셨죠?
　장성군이라는 자동차가 속도를 낼 수 없도록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세력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부당한 집단의 힘이었습니다. 일부 지방언론의 압력이나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당하지 못한 압력에 맞서는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소신과 원칙, 부당한 힘에 무릎 꿇지 않는 것입니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자에게는 '최초'라는 영예가 주어집니다.
　장성군은 1995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보다 앞선 기록이다. 전국 최초로 전자결재 시스템 도입, 군 단위 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CI(이미지통합)실시, 군 단위 지자체 최초 토지민원행정 종합전산망 구축 등 앞서가는 첨단 행정을 펴나갔다
　그래서 군수를 그만둔 지금 그는 전국의 지자체로부터 강의 요청이 쇄도한다. 그리고 공무원을 대기업 회사원처럼 바꾼 김흥식 전 장성군수의 리더십을 소개 책 '주식회사 장성군' '모두를 리더로 만든 CEO 군수, 김흥식 리더십'은 불티나게 잘 팔린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식회사 장성군'을 읽고 감동 받아 공무원에게 추천하여 유명세를 탔다. 이끈 그의 지식경영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목록에도 올라 있다.

　▲현 지자체장들이 공무원 인사로 애를 먹는데…
　－저는 첫 인사발령을 통해 군청 내 동요 분위기를 가라앉혔습니다. 선거 때 상대 후보를 지지한 L과장을 내무과장에 발령한 것입니다. 한직으로 밀려날 것을 예상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마당에 승진 발령이 나자 군청 공무원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동안 힘깨나 있다고 알려진 선호 부서에서 10년 동안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공무원은 다들 기피하는 부서로 내보내고,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실력 있는 공무원은 당당히 요직으로 불러들여 학연이나 지연 같은 인맥 중심 인사가 아닌 철저히 능력 중심의 인사 발령하는 것을 보면서, 직원들은 크게 공감했고 술렁이던 군청은 안정을 찾았습니다.

　▲지자체장 중에는 예산 타령, 규정 타령하며 일을 벌이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직무를 시작한 이래 한 달 동안, 나는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예산이 없어서 어렵습니다' '그런 관례가 없습니다' '규정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습니다. 철옹성 같은 험산이 사방에 버티고 있어서,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을 판이었습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예산이 있고, 관례가 있고, 규정이 있으면 한다는 말입니다. 없는 것은 만들면 됩니다. 문제는 '없다, 안 된다'에 붙잡혀 있는 고정관념입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돈 버는 방법은?
　－내가 가지고 있는 원칙 중의 하나는, 지방자치단체는 직접 경영수익 사업을 벌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의 존재 이유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이윤을 내기 위해 그야말로 하루를 25시간으로 늘여가며 일합니다. 그렇게 자신 전부를 걸고 뛰더라도 냉엄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데만 익숙한 조직입니다. 일정한 돈을 받아 그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의 미덕입니다. 지방자치단체는 기업과는 존재 목적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다릅니다.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에게 '서비스'하기 위해 일하지만, 기업은 '이윤'을 위해 뜁니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는 주어진 예산 외에 재정을 늘릴 만한 방법이 전혀 없다는 말인가? 있습니다. 행정 내부 구석구석 찾아보면 한쪽에서 쿨쿨 잠자고 있는 수익이 꽤 있습니다. 재정이 풍성해진다는 의미가 곧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쓸데없이 새나가는 돈을 줄이는 것도 돈을 벌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묵혀 있는 돈을 똑똑하고 안전하게 굴리는 것도 돈 버는 것입니다.

　▲내년 선거에 나오려는 자치단체장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나는 공식 행사 외에는 꼭 집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 덕목은 '원칙을 지키는 민주적인 카리스마'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해보자!' 마음먹은 일이 있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처음에 정한 원칙과 기본에 따라 끝까지 해내는 것이 내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일을 추진하다가 '오만하다' '독선적이다'는 소리를 종종 듣거나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수백 번, 수천 번 최선의 방법을 찾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정하면, 흔들리지 않고 반대를 무릅썼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끝까지 설득했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많은 주민의 생각과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리더의 바람직한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주민들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장성의 미래를 생각해볼 때 그런 주장들이 옳지 않다는 판단이 서면, 올바른 방향으로 주민을 설득하고 이끌고 가는 것이 리더가 갖추어야 할 참된 자질이라고 믿습니다. 주민 이기주의를 이기기 위해서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민주적인 카리스마로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리더가 원칙과 중심을 지키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은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공무원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데요.
　－지자체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바로 공무원입니다.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1등이 될 수도 있고 꼴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장성군이 1등 군, 장성군민이 1등 군민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1등 공무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나는 당장 계급이 높을수록 도장만 찍는 그런 식의 근무 태도를 뜯어고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장성 아카데미를 통해 교육을 실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상급 공무원이 더 많이 일해야 하는 팀제 시스템으로 조직을 바꿨습니다. 또한 공무원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밀어주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실수를 하더라도 담당자를 문책하지 않았습니다. 한번 실수를 문제 삼으면 대부분은 다음 일을 벌일 때 위축되거나 아예 일을 벌이지 않습니다. 특히 직원들 사이에서 신의를 지키는 사람을 더 눈여겨보게 되었고, 신의를 중요한 인사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사람에겐 인성과 능력이 모두 중요한 요소이지만, 인성이 능력보다 중요합니다. 신뢰는 인성을 바탕으로 하고, 신뢰받는 사람은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합니다. 인정받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더 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다른 공무원보다 곱절로 신바람 나게 일합니다. 장성군 공무원들이 그랬습니다.
　성공하는 리더들은 피그말리온 효과를 잘 알고 있다. 격려하는 만큼, 믿어주는 만큼 상대방은 자부심을 갖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매우 단순한 방법이지만, 그것의 효과는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곧 숨어 있는 보석을 발견해 잘 닦아서 보석의 진가를 발휘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