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의 오류’ |
| 2009년 09월 30일(수)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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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오류(Don't Believe Everything You Think)’라는 책을 쓴 토머스 키다(Thomas Kida)는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두 요인으로 ‘기대’와 ‘바람’을 꼽는다. 우리의 인식은 이로 인해 실제와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보고 싶거나 보리라 기대하던 것만을 보며, 이로 인해 때로는 생생한 환각을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경험에서 비롯된 기대나 보고자 하는 열망은 심지어 있지도 않은 무언가를 보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 토머스 키다의 주장이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필자에게 기대와 바람이 매우 큰 경우다. ‘서울대 총장 출신의 양심적인 경제학자’가 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의 전부다. 그럼에도 그의 총리 기용이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은 정부와 여당 내 극우세력에 봉쇄된 ‘합리적인 보수’가 그로 인해 제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바람에서였다. 참여정부 시절 서울대 총장이면서도 ‘3불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고, 수능비중을 낮춰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수능등급제에 대해서도 반대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그가 아니었던가.
유시민은 “진보는 ‘당위’를 추구하고 보수는 ‘존재’를 추종 한다”고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진보의 경쟁력은 이상을 향한 열정과 논리의 힘이며 망할 때는 거의 언제나 ‘연합하는 능력의 부족’ 때문에 망한다. 반면에 보수의 경쟁력은 가장 강력한 권력을 중심으로 단일한 위계질서를 수립하는 줄서기 문화와 냉철한 이해타산 능력이다. 이 때문에 보수가 망할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부패’로 망한다고 말한다.
안타깝게도 정운찬 총리도 이 구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고위공직자들이 마치 훈장인 것처럼 지닌 위법과 부패라는 흠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대 총장 출신의 양심적인 경제학자는 청문회를 거치며 ‘상위 1%의 전형적인 기득권층’으로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그에 대한 필자의 기대와 바람이 걱정으로 바뀐 첫 번째 이유다.
청문회를 전후해 그가 받은 의혹은 배우자 위장전입, 병역 기피, 다운계약서 작성, 소득세 탈루, 논문 중복 게재, 사기업체 고문 겸직 등 무려 여섯 가지 분야에 걸쳐 있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때와 비교하면 사실로 밝혀진 의혹만으로도 그는 총리로서 결격사유가 충분하다. 오죽했으면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과거 우리가 야당시절에 들이대 공직후보자들을 줄줄이 낙마시킨 잣대에 대해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공직자 몸가짐에 대해 다시 합의해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겠는가.
‘밖에서 본 한국사’의 저자 김기섭은 한 인터넷 매체에 올린 “정운찬 형님, 관두시죠!”라는 글에서 “제기된 의혹을 회피하기에 바쁜 그의 모습에선 국회 동의가 필요했을 뿐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았다”고 썼다. 그에 대한 필자의 기대와 바람이 많은 부분 실망으로 바뀐 두 번째 이유도 청문회 내내 정 총리가 보여준 답변의 기조였다.
다행히 정 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가마를 타면 가마꾼의 어깨를 먼저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을 되새기겠다”고 했다. 그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모두 허상이 아니려니 생각하는 이유로 삼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국민들은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人知坐輿樂)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르는(不識肩輿苦) 공직풍토에 신물이 나 있다. 너무 힘에 겨운 가마 밧줄에 눌려 어깨엔 자국이 패이고, 돌에 채여 부르튼 발은 미처 나을 새가 없는 국민들이다. 청문회에서의 허물 모두 털어내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고 또 구하는 진정 서민들을 위한 총리가 되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