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謹弔 국토균형발전론’ 이 춘 성 수석논설위원/지역경제문화연구소장

2009년 11월 12일(목) 01:39

80년대 후반 ‘광주·전남 이대로 좋은가’라는 기획물을 쓴 적 있다. 호남선 복선화, 목포신외항, 대불산단 인입철도 등 지지부진한 현안사업들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연재 후 서울에서 학계 전문가, 정부 부처 관계자, 여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대토론회까지 열었으니 지방지로서는 제법 의욕 넘친 시리즈물이었지 싶다.
기획물에 뒤이어 당시엔 건설되지도 않은 지금의 서해안고속도로 노선을 따라 3박4일 동안 목포에서 인천까지 거슬러 올라가보기도 했고, 일제시대 비행장 잔재가 곳곳에 흩어져 있던 무안국제공항 건설예정지를 탐사하기도 했다. 다름 아니라 당시 정부가 제창한 ‘서해안시대’와 이를 구체화한 ‘서해안종합개발계획’에 대한 신문사 나름의 점검과 전망을 위해서였다.
서해안을 낀 단체장들이 요즘 자주 내거는 구호인 서해안시대는 87년 대선에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제창한 것이다. 김완주 전북도지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는 새만금간척지도 사실은 노태우 정부가 구상하고 시작한 일이다. 정치적 의도야 어떻든 그가 제창한 서해안시대나 서해안종합개발계획은 특히 중국의 문호개방에 맞춰졌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하기까지 했다.
물론 같은 서해안개발사업이라도 광주·전남은 타당성과 경제성에서 밀려 국비지원이 삭감·누락되는 처지는 서해안시대라고 별 수 없었다. 실례로 목포와 인천에서 동시 착공한 서해안고속도로는 인천 쪽은 일사천리인데 목포 쪽은 달팽이 기어가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해안시대는 지방에서 큰 의미를 가졌고, 지방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당시 백형조 전남도지사는 이를 ‘향(向) 전남시대’로 바꿔 도정구호로 삼기도 했을 정도다.
무엇 때문일까. 서해안시대는 결과적으로 경인축 집중개발만 낳았을 뿐인데 지방이 이처럼 흥분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서해안종합개발계획이 바로 노태우 정부가 추진했던 국토균형발전정책이었기 때문이다.
균형발전정책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나 전두환 전 대통령도 예외 없이 채택해 추진했다. 60년대 박 정권이 편 개발정책은 국토의 경부축 내지 동남축 중심이어서 심각한 호남소외를 낳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호남선 복선화에 36년이나 소요됐지만, 박 정권으로서는 대미·대일 수출지향의 경제구조상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국토개발은 절실했다. 더구나 77년엔 임시행정수도 건설계획까지 입안했으니 그의 균형발전의 의지만큼은 높이 살 일이다.
경기도 과천에 제2청사가 지어져 11개 부처가 옮겨지고, 98년 대전의 제3청사에 11개 청이 이전한 것은 전두환 정권이 추진한 수도권 과밀해소와 균형발전정책 덕분이었다. 이처럼 지난 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내놓은 국토균형발전정책은 40년간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집중만 심화하는 결과를 낳긴 했지만 어느 정부든 국토균형개발을 포기하거나 정책을 폐기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지방은 그런대로 ‘흥’이라도 있었다.
새삼 옛일을 꺼내든 이유가 있다. ‘세종시’ 때문이다.
참여정부 때 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장을 지낸 김안제 서울대 명예교수는 “40년 동안 100개가 넘는 처방을 내리고도 수도권 집중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내놓은 일종의 극약 처방이 세종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수도권은 인구밀도가 전국평균의 4배가 넘고, GRDP(지역내총생산)의 47.7%가 집중돼 있으며, 아파트값은 광주보다 10배나 비싸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여야가 합작한 밑그림’인 세종시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존재이유인 ‘국토균형과 수도권 과밀해소’가 오간데 없기 때문이다.
정부부처 이전이 빠진 세종시라면 조성이유가 없다. 독일 남동부 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처럼 만드는 일은 더구나 균형발전정책과 무관하다. 세종시 원안수정이 40년 넘은 국토균형발전론의 폐기로 비쳐지는 이유다. 그렇지 않아도 도무지 흥이 없는 지방을 더욱 가라앉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