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歸鄕) 이 춘 성 수석논설위원/지역경제문화연구소장

2010년 02월 04일(목) 00:00

엊그제 일간지 외신면을 장식한 사진 한 장이 압권이었다. 자기 몸집보다 배가 큰 등짐을 지고 가방 들고 아기까지 안고 있는 한 여인이 중국 장시성 난청 기차역에서 열차를 타기 위해 바삐 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가냘프지만 억척스런 ‘어머니’ 모습이 전해지는 이 사진은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설날)을 앞두고 고향을 찾는 민족대이동이 벌써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중국에서 1월14일부터 2월20일까지는 춘절이동기간이다. 이른바 ‘춘운’(春運). 우리로 말하면 ‘설날특별수송기간’에 해당한다. 이 기간 연 이동인원은 25억4천100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세계인구의 3분의 1이 움직이니 갖가지 춘운대책이 무용지물일 정도로 올해도 교통대란은 피할 수 없단다. 지고 들고 안고라도 고향을 찾으려는 이 여인의 고단한 여정이 눈에 선하다.
설날 귀향에 나선 행렬이 민족대이동의 장관을 이루는 것은 규모의 차이일 뿐 우리나 중국이나 매한가지다. 하지만 이번 설날은 더욱 특별하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너도나도 ‘내 모든 것을 버리고라도 고향에 가겠다’며 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선거는 광역·기초단체장, 광역·기초의원(지역·비례), 교육감, 교육의원 등을 뽑도록 되어 있어 사상 유례가 없는 ‘1인8표제’로 치러진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출마자만 1만5천5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등 역대 최대규모 선거전이 전망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지역에는 춘절을 앞두고 귀향에 나선 여인보다도 더 일찍 서둘러 고향을 찾은 인재들로 넘쳐나는 것이다.
그동안 지역민 성원에 힘입었으니 이젠 고향에 봉사하겠다고 나선 것을 탓할 순 없다. 하지만 인재들이 선거 때마다 줄지어 ‘고향으로 고향으로’ U턴하는 현상이 유달리 심한 곳이 광주·전남인 점에선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이명박 정부 들어 관계(官界)는 물론 재계에 이르기까지 호남인맥의 고갈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여러 지적들이 생각나서다.
민주당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현 정부 들어 인사가 난 226명의 공공기관장 가운데 호남출신은 영남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영남 기관장은 95명으로 전체의 41.9%를 차지하는데 호남은 30명으로 13.3%에 머문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청와대 수석비서관급이나 장·차관급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우리 지역 청년들의 미래가 얼른 떠올려지는 경제계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최근 단행된 삼성의 사장단 인사가 수도권과 영남 등 특정지역에 편중됐다고 분석했다. 삼성그룹의 신임 사장단과 부사장단 인사 52명의 인적사항을 파악해보니 수도권 29명, 영남 17명 등인데 비해 호남권은 단 1명이었다는 것이다. 지역사회는 이를 두고 2007년 이병철 회장 타계 20주기를 앞두고 터진 김용철 변호사의 부정비리 폭로 이후 제기되었던 삼성의 ‘호남 인맥 배제설’이 현실화된 것 아니냐며 깊이 우려하고 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나 광주·전남의 ‘6·2 지방선거’ 승부수는 이번에도 역시 민주당 ‘공천 따내기’다. 고향에 봉사하겠다고 귀향한 수많은 인재들을 생각하면 정말로 어이없는 일이다. 유권자인 주민들로부터 능력과 정책을 검증받고 심판받을 기회를 갖기도 전에 발길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낙향한 인재들로 인해 끊어지고 없어진 호남인맥을 다시 키우고, 잇는 데는 또 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조만간 이루어질 민주당의 ‘인물검색’이 이번에야말로 철두철미해야 하고, 공천결과에는 결코 허점이 없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정들 때문이다. 그래야 아까운 인재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