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내 책임인데 무슨 두려움 있겠어요?” [만나고 싶었습니다] 천운 스님 /nam48@kjdaily.com

2010년 05월 18일(화) 00:00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만난사람·글=남성숙 논설주간 nam48@kjdaily.com

생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먼저 마음을 저 허공처럼 비워보세요. 미워하는 마음, 노여운 마음, 원망하는 생각, 슬픈 생각, 부끄러운 마음, 꽁하는 마음 그 모두를 미련 없이 버리세요. 그럴 때 우리들의 삶은 아침 햇살처럼 새로워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니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사흘 후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를 한자로는 ‘불타’(佛陀) 또는 줄여서 ‘불’(佛)이라고 한다. 부처는 BC 6세기경 인도의 카필라국에서 태어나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한 뒤 6년의 수행을 거쳐 일체의 번뇌를 끊고 무상(無上)의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교화했던 석가모니를 존경하여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부처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석가모니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은 아니다. 부처는 일체법(一切法), 즉 우주만법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서 더할 수 없는 진리를 체득한 성자(聖者)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러한 성자가 바로 석가모니이기 때문에 그를 부처라고 한다.
‘부처님오신 날’을 앞두고 만난 광주 향림사 천운(天雲·79) 큰스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부처님의 마음을 가지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당신 혼자만 성인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처님과 똑같이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다 하셨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일체 중생이 다 불성을 갖고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당신처럼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간곡하게 설해주셨는데, 우리 중생은 수 억 겁 전부터 익혀온 습관을 떨치지 못하고 중생놀음만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천운 스님은 불교의 요지를 한마디로 ‘깨침의 지혜와 자비’라고 했다.
“이 우주를 봤을 때 나와 인연 안 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을 위한다고 하는 일들도 따지고 보면 모두 나를 위한 것입니다. 내 주위가 괴로운데 나만 행복할 수 없고 연을 따져보면 모두 친척 아님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불어 사는 마음은 현실극락의 길입니다. 다시 말해서 착한 일을 한다는 것은 자기도 착하게 행동하면서 남도 착하도록 하는 것이지 나만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악한 일을 많이 하면 그 세상은 악의 세계일뿐입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 1600년이 넘었다. 하지만 불교 경전이 너무 방대하고, 어려운 한문으로 되어 있다 보니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어렵게만 느끼고 있다. 불교에 귀의해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현재 사회적으로 야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 중에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요즈음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계층간의 갈등, 남북한 문제, 지역감정 등 제반 사회 현안 또한 상생(相生)의 입장에서 접근하면 풀리지 않는 것이 없다. 불교에서는 무아(無我)로 돌아가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조금 넉넉하면 남을 도와야 하고, 내 몸이 괴롭더라도 남을 도울 일이 있으면 가서 얼른 도와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안 하려고 하면 자기도 타성에 젖어버릴 뿐 아니라 남들도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일을 선택하고 하는 것에 있어서도 타성에 젖어서는 안 됩니다.”
스님은 정치라는 것도 서로 도우며 발전하는 것이라 했다. 불교사상에서는 인간이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근본목적을 정당하게 벌어들인 재화(財貨)를 다시 사회에 회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해탈을 위한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삼는다는데 그 깊은 의미가 있다. 그것이 곧 불교의 사회복지사상이기도 하다.
천운 스님은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1946년 내장사에 입산했다. 1947년 지암 화상을 은사로 득도, 구족계 및 보살계를 수지하였다. 승주 송광사 자장선원, 화순 용암사 선원, 영암 도갑사에서 수선안거 수행정진 하였다. 구례 화엄사와 천은사 주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광주지구 갱생보호위원, 5·18광주 항쟁 이념계승사업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광주에서 향림어린이집, 향림유치원, 향림사 신용협동조합, 천운어린이집, 광주불교대학을 설립하였다. 저서로 ‘봐서 행하는 길’ ‘알고 가는 길’ ‘더불어 사는 삶’ ‘참회하는 마음으로’ 등이 있다.
“서당에서 글을 배우고 있었는데 고창중학교 다니던 친구가 자꾸 학교를 다니자고 꼬시는 겁니다. 조부님께 말씀드리자 완강하게 신식학교는 안된다고 하시길래 집을 나왔어요. 가출을 한 셈인데 그 길로 내장사로 출가하게 되었으니…. 근대 불교교육의 선구자인 박한영 스님이 내장사 조실로 계셨는데 스님께서 다짜고짜로 ‘중 될 생각 없느냐?’고 하시길래 ‘아직 생각 못해봤습니다’ 하니 ‘밥이나 먹고 며칠 쉬면서 생각 해봐라’하시며 껄걸 웃으셨습니다. 그렇게 내장사에서 사흘을 보냈는데 어찌나 잘해주시는지 집 생각도 안 나고 마치 고향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내 길인가 싶어 머리를 깎겠다고 했습니다.”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햇수로 삼 년 동안 노스님을 시봉하면서 사미과와 절 예법을 다 배웠다. 당신 품에 안고 한자 한 자 짚어가며 불법의 오묘한 뜻을 가르쳐 주던 그 따뜻한 손길과 따뜻한 말씀을 천운 스님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처음 불법으로 인도해준 한영 스님이 너무 연로해서 지암 종욱스님(독립운동가, 조선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대학교의 재단이사장, 국회의원 역임)을 은사로 계를 받았다. 은사스님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대로 천운 스님의 거울이 되었다. 은사스님은 수행일과가 아주 철저했다. 수행자가 시간을 헛되이 소비하는 것은 최대의 도둑이라시며 삿된 일이나 범속한 일상사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엄하게 경책했다. 특히 그는 은사 스님이 남의 말을 한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주로 장점을 얘기하며 칭찬해준 적은 간혹 있어도 남의 단점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씀하시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잘하라고 늘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원력을 북돋워주었지 남의 기를 죽이는 일이라곤 없었다.
이후, 천운스님은 꼭 은사스님처럼 사람을 대했다.
“사람마다 다 장단점이 있게 마련인데 단점만 자꾸 캐려들면 함께 못 삽니다. 이는 절 집 안 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도 마찬가지예요. 부부지간, 부모자식간에도 좋은 점을 보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지 미운점만 들추다 보면 점점 미워져서 끝내는 파국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천운스님하면 고아의 아버지로 통한다. 한국전쟁 이후 스님은 고아들을 꾸준히 돌봐왔다.
“전쟁 당시 군 복무 중에 전령생활을 했습니다. 전령으로 이리저리 다니면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고아원을 찾았지요. 한창 전쟁통이었는지라 고아가 말도 없이 많았습니다. 부모 잃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눈에 아른거려 자주 찾아보곤 했지요. 제대하고 나서 절에 찾아오는 고아들을 하나 둘 맡아 기르다 보니 점차 소문이 나서 아이들이 한 칠십 명에 이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을 돌보면서 느낀 것은 애들은 엄마가 키워야 된다는 것이다. 햇수를 거듭할수록 절절하게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단다. 그래서 저녁마다 개인면담을 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 해주고 가급적이면 마음을 열어 놓고 살 수 있도록, 삶의 주인공이 되어 살도록 독려하고 있다. 사중 스님네들에게도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활기차게 클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당부한다.
“우리 아이들은 자유분방한 가운데에서도 예의가 몸에 배어 있고, 아주 순수하고 착해요. 사람은 끊임없이 거듭거듭 변합니다. 물 속에 들어가면 옷이 젖고 불 속에 들어가면 옷이 타는 것과 같아 어떤 환경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스님의 교육열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다. 스스로가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공부를 시켜주었다. 박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박사과정까지 마치게 해 주었고, 유학을 원하면 유학도 보내주었다. 사회 곳곳에서 교사, 의사, 사업가 등 제 몫을 다하고 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직접 체험하고, 부모 인연이 박한 아이들과 수십 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스님에겐 애달픈 일이 많았다.
“광주 시립묘지에 5·18영령들을 매장해주는데 마음이 한없이 착잡하더군요. 힘없고 돈없고 약한 사람들은 당하기만 하는 인생이라 생각하니 이 사바세계가 어느 때나 부처님의 말씀으로 하나될 것인가, 맑고 깨끗한 세상 불국토가 이뤄질 것인가 싶어 발원하고 또 발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광주 시민도 모두를 용서하고 분심도 놓아버리고 내가 자유를 수호했다는 상(相)도 놓아버려야 할것입니다.”
5·18을 기념하느라 매년 5월 그 소중한 가정의 달을 제대로 즐기기 못하는 광주시민에게 천운스님은 ‘효’의 개념을 다시 되새기라고 강조했다.
“만 가지 선행의 기점이 효인데 핵가족이 보편화되고 있는 요즘에는 불효가 당연시되고 있는 풍토입니다. 불효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모 형제 모르고 오로지 저만 아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사회에서 뭘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인과법, 모든 이들이 서로서로 의지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인연법을 깨친 우리 불자들이 나서서 잘못 돌아가고 있는 이 세상 풍토를 제대로 잡아나가야 합니다.”
스님은 우리가 부처가 되어 산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이기는 극기생활을 말함이라고 했다. 모든 욕망을 이기고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찾아온다. 이러저러한 상실감 때문에 절망하고 욕심과 번뇌 망상 때문에 좌절하다 보면 극단적인 상황까지 초래하게 된다. 자기 스스로 자성을 발견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가 부와 명예와 향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 보는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고 했다.
천운 스님은 지혜로운 삶을 네 가지로 얘기해 주었다.
첫째, 사람들과 화합하며 살도록 노력하라. 그러려면 일단 말이 많으면 안 된다고 했다. 말을 하더라도 그 사람 장점을 이야기하라 했다. 항상 쓸모 있는 말, 필요한 말만 하라고했다. 망어 양설 악구 등은 시끄러운 문제의 발단이 되기 쉽다. 남에게 이득이 안 되는 이야기는 화합만 깨뜨린다.
둘째, 뭐든지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하라. 세상 이치가 인연법의 도리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좋은 원인에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부처님 일은 만사성취’란 말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일하면 뭐든지 잘 된다는 뜻이다. 자비로운 마음 갖고 욕심을 줄이면 부처님의 지혜도 저절로 생긴다.
셋째, 내 생활이 양명(陽明)해야 된다. 모두가 내 행실을 알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양명치 않으면 사람들이 나의 행실에 의문부호를 붙인다. 그러면 반드시 이상한 소문이 나는 법이다.
넷째, 나를 위한 일을 하지 말고 남을 위한 일을 하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는 ‘금강경’에 잘 나와 있다고 했다. ‘금강경’의 요지는 다 털어버리라는 것인데, 그렇게 말한 것은 세상만사가 ‘무유정법(無有定法)’이기 때문이다.
“자, 지금 내가 공기를 마시고 있는데 이 공기는 네 것이고 저 공기는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어? 내가 마실 수도 있고 네가 쓸 수도 있고 그런 것이지. 무유정법이기 때문에 어느 것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지? 바로 법정 스님이 말하는 ‘무소유’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야. 내 것이라 할 게 없는데 감출 게 뭐 있겠어. 나를 드러내니까 자연스럽게 양명도 되는 것이고, 굳이 나를 위해 따로 뭘 할 것도 없어. 이런 마음 바탕이 갖춰진 후에야 모든 게 차근차근 이뤄지는 것이야. 일단 무소유란 마음을 가지면 남을 구하겠다는 자비심, 보살심이 저절로 생기게 돼. 내 것이 없는데 남과 다툴 일이 있겠어? 남이 어렵다면 당연히 도와야겠지. 이렇게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는 사람, 남을 구제하겠다는 사람이 나쁜 말을 하고 사람들의 화합을 깰 턱이 없지. 불교는 하나만 알면 다른 것도 저절로 알게 돼 있어. 무유정법, 무소유, 자비심, 보살심이 모두 하나의 원리에서 나온 거야.”
그래서 스님은, 마음 비우는 훌륭한 공부 중의 한 가지가 참회라고 했다. 참회는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겹친 마음을 펴게 하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남의 탓으로, 혹은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을 지운다. 나는 아무 허물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냉철하게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그 상황, 그 만남에서 내가 어떻게 대응했느냐에 따라 사뭇 결과는 달라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천운스님은 불편한 몸을 추스르며 말했다.
“생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먼저 마음을 저 허공처럼 비워보세요. 미워하는 마음, 노여운 마음, 원망하는 생각, 슬픈 생각, 부끄러운 마음, 꽁하는 마음 그 모두를 미련 없이 버리세요. 그럴 때 우리들의 삶은 아침 햇살처럼 새로워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니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