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우주’라는 인간이 화합하면 못할 일이 없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김계윤 김병원 원장 |
| 2010년 06월 15일(화) 00:00 |
|
‘아름다운 인술은 겸손과 열정의 몸짓’
취미로 모은 작품 전시 문화재단 소망
“손해보는 인생 살다보니 모든 게 풀려”
만난사람·글=남성숙 논설주간 nam48@kjdaily.com
#인덕(人德)
주변 사람들은 계산이 그렇게 길면서도 굵게 잘 살아온 이유를 ‘인화 화합’에서 찾는다. 오랜 시간 학창생활을 같이 해온 친구나 사회생활을 같이한 이들의 한결같은 평가가 ‘인화 화합’이다. 그가 나타난 곳은 어디나 웃음과 화합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친구가 만나면 큰소리가 오갈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계산이 있으면 결과는 웃음으로 끝난다. 설득 안 되면 농담을 하던지, 그래도 안 되면 와이담을 하던지, 계산이 있는 곳의 결론은 늘 웃음과 화합이었다.
계산의 행복바이러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가 늘 마음에 두고 있는 말은 맹자의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理 地理不如人和 천시가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다. 천도(天道)와 지도(地道)의 가치보다 인사(人事)를 더욱 높이 평가하여 인화에 손을 들어준 이 한마디는 인간끼리 화합하고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함을 말한다.
“하늘의 운행법도는 매우 중차대한 것이지만 지구 인간에게 있어 지구의 영향력이 더 크며 그리고 땅의 보호가 잘 이루어진다고 해도 인간사회가 무정하면 다 별 볼 일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어 어지간한 천재보다 지변이 더 무섭고 그보다 더한 것은 인간들끼리 사이의 반목질시와 살육 같은 것들 입니다. 비바람이 매서워도 잘 지어진 땅의 집이나 굴 같은 곳에 피신해서 불을 피우고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늘이 비록 화창해도 땅이 척박하거나 온통 독소로 가득하다면 인간이 어찌 살겠습니까. 그런데 만일 인간이 현명하여 서로 도와가며 땅의 악조건들을 이겨낼 기술을 개발하고 응용한다면 능히 이러한 환경의 악재를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날씨도 좋고 땅도 비옥하지만 사람이 황폐하여 짐승보다 못한 짓을 일삼으며 지구에서 종치고 만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하늘과 땅의 기운이 고스란히 담긴 작은 우주라 불리는 인간이 서로 밝은 뜻이 통하고 천지와 조화를 이루어 살아간다면 참 아름다운 일이지요.”
# 장성에서 광주까지
계산은 1932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여름이면 맑고 푸른 물이 흐르는 황룡강가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물장구 치고 미역 감고 낚시하며 꿈을 키웠다. 장성성산초등학교, 장성중학교를 거쳐 광주서중학교 4학년에 편입했는데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 이후 광주서중과 동중이 통합돼 광주고등학교가 새롭게 설립되면서 광고 3학년에 자동편입 되었다. 1952년 광주고등학교를 1회로 졸업한 계산은 광주의과대학(전남대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육군 중위로 임관된 후 거기서 인턴과정을 거치게 되었지요. 석사과정 학적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의대 정형외과 교실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군 복무 중 결혼을 했지요. 첫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러나 대전에 있는 관구사령부 의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큰 시련이 닥쳤지요.”
하루는 출근을 하는데 갑자기 집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이상하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달려가 보니 아이가 실신상태였다. 당시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부인이 첫 아이가 자꾸 젖을 먹으려고 하자 힘들어했다. 계산은 말라리아 계통의 약을 두 알 주면서 젖꼭지에 발라두면 약이 쓰니까 젖을 안 먹게 될 것이라고 그 두 알을 두고 나왔다. 그런데 아이가 그 약을 먹어버렸던 것이다. 아이는 전신경련으로 호흡곤란이 오고 말았다. 결국, 아이는 사망하고 말았다. 계산은 그 일로 한때 좌절했다.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기도 하고 의사로서의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
“이것이 운명인가 싶었죠. 그러나 첫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더 열심히 공부해 많은 사람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군무를 마치고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박사학위 과정까지 마쳤지요. 마침 일본 구주에 있는 구유미 의과대학 정형외과에서 초청이 와서 6개월간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유학중에 일본정형외과에서 의국대항 테니스대회가 있었는데 출전해서 우승을 하기도 했지요.”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자 매부가 개업을 독촉했다. 광주시 대인동 소재 관동여관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 여관을 개조해 병원을 개업하라는 것이었다. 진찰실 수술실 입원실을 만들어 1969년 문을 열게 된 것이 오늘날의 김병원이다.
“당시 30만 원을 가지고 유리창을 달고 책상과 의자 등을 준비하고 나니 돈이 떨어졌어요. 하는 수 없이 약 30만원 정도의 의료기계 등을 의료기상에서 외상에 가져오고 약은 외상 구입하여 조수 하나 간호사 하나 세 사람이 초라한 개업식을 했습니다. 첫 달에 5명의 환자를 수술했지요. 이후 병원은 환자가 늘어 직원을 20명까지 늘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김병원은 영암에도 김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종합김진센터 산업보건센터 인공신장센터 등을 갖춘 큰 병원으로 성장했다. 큰아들 김대영과 막내아들 김대익이 의과대학을 나와 아버지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
# 운동이 보약
계산은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보물로 ‘아내’와 ‘건강’을 꼽는다. 50년 가까이 동행하면서 묵묵히 뒤에서 말없이 도와준 아내 이남희씨 내조 없이는 지금의 그도 없다고 말한다. 돈이 부족하면 말없이 빌려오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메꾸어 주고 직원들을 내 가족처럼 돌봐준 이가 아내다. 실제로 계산은 은행통장이 어디 있는지 얼마가 들어있는지 모른다. 모든 돈 관리는 부인 몫이다.
“더욱 더 아내가 고마운 것은 평소 형님이나 매씨 조카 등 시가 친척들을 진심으로 따뜻하게 맞아주고 가족간 우애를 중요하게 지켜준 것입니다. 자신을 죽이고 가족의 우애와 화목을 우선으로 해준 아내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특히 계산의 건강에 대한 신념은 투철하다. 지금도 새벽 5시에 일어나 헬스를 하고 8시에 돌아와 아침을 먹은 후 9시부터 어김없이 진료를 시작한다. 병원을 개업한 직후부터 최상채박사(전 전남대총장)가 강조한 의사는 꾸준히 운동하지 않으면 건강이 나빠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환자를 돌볼 수 없다‘는 경고를 잊어본 적이 없다.
계산이 운동할 시간은 새벽 밖에 없다. 처음엔 라켓 두 개를 가지고 전남대학교 테니스코트를 찾아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17년 동안 운동했다. 그 결과 테니스 테 자도 모르는 부인이 전남 대표선수가 되어 서울에서 열린 시합에 나가기도 하고 부부조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러다 전남 옥과에 처음 골프장이 개선된다는 소식을 듣고 연습장에 나가 연습을 시작 새벽에 골프를 했다. 그러나 골프한지 7년이 되면서 허리가 아프기 시작해 골프를 그만두고 쉬면서 등산을 시작했다. 5년 동안 국내의 국립공원과 도립공원 등 가보지 않은 산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등산을 했다.
그 다음 재미를 붙인 운동이 수영이다. 3개월 만에 기초적인 영법을 마치고 4년 동안 매일 새벽 수영을 했다. 요즘에는 새벽에 무등산을 오르거나 헬스를 한다. 나이 79세에도 새벽에 2시간가량 운동을 할 수 있는 체력, 정말 대단하다.
“저에게 새벽 운동은 건강을 유지해주는 원천이자 의사 생활을 오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샘물같은 것이지요.”
# 꿈에 어린 황룡강
계산은 최근에 첫 시집 ‘꿈에 어린 황룡강’을 냈다. 2005년 문예사조 신인상 공모에 시 ‘달개비’ 등 3편이 당선돼 문단에 등단한 후 꾸준히 시작 활동을 해왔다. 첫 시집에는 ‘죽순처럼’ 을 비롯해 향토색이 짙은 ‘섬진강의 봄’ ‘무등산 보리밥’을 비롯, ‘의사의 생’ ‘꿈에 어린 황룡강’ 등 99편이 담겨있다. 시인 손광은씨는 그의 시집을 보고 ‘아름다운 시어들이 구절 마다 살아 움직여 역동적인 시어들이다. 순수하고 순진한 마음,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마음, 고귀한 목숨을 살리려는 천직의 아름다운 인술은 계산이 살아가는 겸손과 열정의 몸짓이었기에 천품이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다’고 평했다.
“틀에 박힌 의사생활에서 여러 자연의 사물에 대한 자유분방한 생각을 하면서 하늘의 별을 보나 꽃을 보나 고향 산천을 보나 풀 한 포기, 돌 하나, 환자를 치료하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습작해봤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위하여, 진실을 위하여, 삶을 위하여 노래할 것입니다.”
계산은 시인들의 모임인 백야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시를 가곡으로 작곡하여 함께 나누는 ‘시가 노래되어 창작가곡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시인들의 시에 남도사랑작곡가회 회원들이 옷을 입혀 선율을 붙이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더해 노래하는 연주회에서 계산은 ‘월출산 안개’를 낭송했다.
사람의 뼈를 고치는 정형외과 의사가 쓴 시는 한량없이 부드럽고 또 부드럽다. 이런 그의 감성은 지역사회에서 수많은 봉사활동으로도 표출됐다. 계산장학회를 설립해 후진양성에도 힘쓰고 있으며 문화재에도 관심이 많아 광주시립민속박물관회 회장을 맡고 있다. 광주시민대상, 국민훈장 동백장(자원봉사 부문), 적십자 박애상 금장 등을 받을 정도다.
대한어머니회 광주연합회로부터 제1회 ‘바롬상’을 받기도 했다. 장애아시설인 사회복지법인 계산원을 설립해 지역 장애인의 재활을 돕고 불우아동에게 장학금을 후원하는 등 이웃사랑을 실천해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하게 된 것이다
특히 그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향토문화개발협의회 이사장 광주시립민속박물관회 회장을 맡아 지역 문화 지킴이 역할까지 하고 있다. 강좌를 통해 전통문화를 익히고 답사를 통해 그 맛과 멋을 즐긴다. 직장인과 주부, 대학생 등 일반시민 누구나 참여가 가능해 문화수도를 지향하는 광주시민들의 문화지수를 제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광주 민주의 종 추진위원회 위원장,범국민준법운동광주지역추진협의회 회장, 서석문화축제 추진위원장,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본부 이사, 고향사랑회 회장직을 맡은 것도 모두 광주 사랑의 한 표현이었다.
# 남은 소망
계산은 지난 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친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진 때도 있단다. 좀더 떳떳하게 살 수는 없었을까. 누가 봐도 손색이 없는 삶이었는가,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다만 지금까지 인생길이 후회 없는 삶이었고 이름 석자라도 남길 수만 있다면 천만다행한 일 아닐까요? 남은 소망이라면 죽을 때까지 환자를 보는 것이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그동안 취미삼아 모아온 민속공예품과 골통품 서화작품 수석들을 전시할 문화재단을 만들어 전시장을 하나 마련하는 것입니다. 문화도시에 살면서 이 만한 일 하나는 하고 가야 하지 않겠어요?”
노자가 한 말이 생각난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으뜸인 것은 물과 같은데, 그 물은 항상 낮추어 가지 않는 곳이 없고, 위에서 밑으로 흐르되 다투지 아니하고, 높은 곳은 깎아내리되 낮은 곳은 채워준다.
계산은 어쩌면 물의 순리를 터득한 것 같다. 돈을 벌 줄도 알고 쓸 줄도 알며 인(仁)이 무엇이고, 덕(德)은 어떻게 쌓고 베풀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그 가지와 잎 새가 무성해진다. 광주의 정형외과 명의로 뿌리를 내린 계산은 생활신조인 근면 성실 봉사 줄기를 세워 ‘사랑’의 잎을 무성하게 틔워냈다.
한번 뜻을 세우면 먼저 행동으로 옮기고 그 다음 그 뜻을 말하는 사람 계산, 말이 앞서고 실천은 뒤로 미루는 뭍 지도자들과는 사뭇 다르다.
인터뷰를 마치며 살짝 묻는다. 잘사는 비법이 뭐예요? 계산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손해 보는 인생을 살다보니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잘 풀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