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상식이 무너진 사회는 희망이 없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정환담 광주유교대학 학장 nam48@kjdaily.com

2010년 07월 06일(화) 00:00

/사진= 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만난사람·글=남성숙 논설주간 nam48@kjdaily.com

‘본연의 모습’ 돌아가야 혼란 사라져
‘修己治人’ 실천, 가족공동체의 회복
문화도시 광주국제영화제 지속 가능

세상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그런 것들에 대한 감시의 눈도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부정과 불법을 막기 위해 감시하고 고발해야 할 입장에 있는 자가 부화뇌동해서 함께 일을 저지르는 경우 또한 더욱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생 학생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정환담(鄭煥淡·70· 광주유교대학 학장, 광주국제영화제 이사장) 전남대학교 명예교수는 요즘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40년 넘게 학생을 가르치면서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마음속 교본으로 삼은 것이 논어 계씨(季氏)편에 나오는 ‘은거이구기지 행의이달기도 오문기어 미견기인야(隱居以求其志 行義以達其道 吾聞其語矣 未見其人也)’라고 했다. ‘숨어 살면서 자기 뜻한 바를 추구하고, 나아가서는 군신의 의(義)를 행하여 천하에 자신의 도를 이루게 한다’는 뜻. ‘재야에 묻혀 있으면서도 바른 도리의 가치를 실천하거나, 몸소 참여와 실천 속에서 정의를 사회에 구현 한다’는 의미을 품고 있다.
“남이 행하는 선을 보면 나는 감히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남의 선을 보면 끓는 물을 손으로 만지듯이 피하라 했습니다. 남의 선을 보면 나의 부족을 돌아보고 그 선을 따라 행하고자 진력하라는 뜻입니다. 남의 선을 보고 시기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면 나의 부족은 고칠 수 없습니다.”

# 견불선여탐탕(見不善如探湯)
정 교수는 ‘은거이구기지 행의이달기도 오문기어의 미견기인야’와 같은 뜻의 ‘견선여불급 견불선여탐탕’이 삶의 지침이라고 덧붙였다.
“선을 좇고 악을 멀리하라는 경계의 뜻 입니다. 풀어 얘기하자면 견선여불급(見善如不及)이란 이미 내가 행하고 있다 하더라도 선한 것을 보거든 마치 미치지 못하듯 하라는 뜻으로, 항상 올바른 선의 가치를 좇아나가는 마음 자세로 선행을 끊임없이 실천 하면서도 그 끝에 미치지 못해 선의 완성이란 없다는 자세를 가진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견불선여탐탕(見不善如探湯)이란 선하지 못한 것을 보거든 마치 끓는 물을 만지는 것 같이 한다는 뜻으로, 끓는 물에는 손을 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손을 가까이 할 수도 없어 곧바로 빼야 하듯 잠시라도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고 그러한 악행은 가까이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나 인간들이 벌이는 수많은 행태에 대해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모든 현상과 행위들이 단편적인 하나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이해관계 상충 속에서 발생되고 마음속에 들어있는 욕심의 정도에 따라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흑백논리가 횡행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은 동지가 되고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는 말처럼 피아(彼我)의 구별이 어려운 경우도 종종 발생하곤 한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하고도 객관적인 구분과 그에 대한 규정은 삶의 근간을 형성하는 기준이 되며 가치 판단의 중요한 척도가 된다. 선과 악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전제되어야 우리 주변에서 발생되는 현상과 행위들에 대해 자신의 의사결정이 분명해진다. 그저 ‘좋은 것이 좋다’ 또는 ‘세상사는 것이 다 그렇지’ 하는 식의 두루뭉수리 한 생각이 원칙과 상식이 무너진 건강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고 타협이나 어정쩡한 결정 혹은 올바른 판단의 유보로 인해 선악의 구분을 흐리게 만들어 사회와 단체, 심지어는 가정에 까지 원칙과 상식이 상실된 병든 모습을 보여준다.
“원칙과 상식이 무너진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가 팽배한 사회구조에 지배 받아왔던 것은 인정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그러한 일들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반성이 필요합니다. 밝고 건강한 가치관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사회정의라는 말이 필요치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스스로 가치관을 바로 세우고 상식을 준수하고 원칙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의 미래는 밝고 세상엔 웃음이 가득해질 것입니다.” 결국 바른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의가 세상의 기준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우리 모두 바른 의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고, 그런 세상에서 함께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 경력 40년
2006년 전남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직을 정년퇴직 한 정 교수는 충실한 법학 교육과 광범위한 학술활동 및 실천적 법 연구를 통해 학자로서의 명성을 다져왔다. 법률상담소를 개소하고 낙도 오지 순회 상담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법률 봉사를 전개해왔으며 시민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또 독일 일본 중국 등 외국과의 학술교류를 통해 법학의 영역을 확대하는 데도 기여한 바 크다.
정교수가 퇴직 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일은 광주향교에 개설된 유교대학이다. 현재 유교대학 학장을 맡고 있는 그는 ‘전통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유교를 그저 고리타분한 공자왈 맹자왈로 여기는 현대인들의 지적 가벼움에 일침을 놓으며 그동안 1년 과정이었던 유교대학을 2년 과정으로 확대해 사서삼경을 깊이 있게 강의하는 전통대학을 가꿔가고 있는 것이다.
“유학은 한마디로 수기치인(修己治人) 학문입니다. 수기(修己)는 자기 자신의 도덕적 수양을 쌓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유교는 윤리의 학입니다. 그러나 그 수기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과 동시에 치인(治人)을 목적으로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을 다스리기 위한 정치학인 셈입니다. 그런데 유교에서 말하는 정치는 법률이나 형벌로 백성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교리와 언행을 통해 백성을 선도하는 것이며, 따라서 먼저 자기 자신을 닦는 것이 필수가 된 것입니다.”
유교대학에서는 이런 유학의 근본사상인 인(仁)을 가르친다. 인은 사람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을 말하며 넓은 뜻을 내포하고 있으나, 사랑에 가깝고 그 실천에는 특히 충서(忠恕;진심과 배려)가 중시되었다. 인은 먼저 부모·형제 등에서부터 점차 다른 사람에게로 미쳐야 하며 효(孝)를 다하는 것이 인의 첫째이고, 형제에 대한 제(悌)가 그 다음이다.
현재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 가족법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정교수는 인과 효가 무시되는 시들어가는 한국의 가족제도를 통탄해한다. 1960년대 신민법의 가족제도는 부계 8촌을 친족의 근간으로 하여, ‘가계(家系)계승의 원칙’과 ‘타성혼(他姓婚) 혼인의 원칙’ ‘부부와 그 자녀를 핵으로 하는 가족공동체’의 3대원칙으로 구성된 한국형 가족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9년 말에 본종 8촌 중심의 가계계승제도가 개정되었고 1997년 7월에 타성혼의 원칙을 규정한 동성동본혼인의 금혼이 위헌 결정됐다. 2005년 2월 3일에는 호주제가 위헌으로 결정되면서 동년 3월 2일에 전면 폐지하였다. 그리고 2007년 4월 26일에 1인1적법을 가족관계등록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하여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함으로써 한국형의 가족제도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정교수는 이에 맞서 ‘무수한 시련에도 꾸준히 지켜온 자랑스러운 한국형 가족제도의 근간인 가계계승, 타성혼, 가족공동체의 3대 원칙은 송두리채 파괴되었다’고 주장하고 ‘무수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자생력, 방어력, 자기회복력을 지켜온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아 마땅한데 평가 절하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으로 가족제의 회생을 위해 개정법 시행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하고 가족공동체, 구(舊) 호적과 호주의 회복을 동시에 제안하고 기본 호적제의 제안과 가족법제의 수정입법 등을 발의할 예정입니다. 가족공동체의 회복을 청구하면서 그 가족공동체의 공적 장부인 구(舊) 호적의 회복을 청구할 계획입니다.”

/사진= 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 문화도시를 위하여
뜻이 바른 분은 늘 바쁘다. 정교수는 최근 광주국제영화제 이사장을 맡아 분주하다. 지난 2001년 부분 경쟁을 도입한 비경쟁영화제라는 성격으로 야심차게 시작한 광주국제영화제는 그동안 영화제 폐지라는 극단적인 논란의 상황까지 몰고 가는 숱한 난관을 극복하고 올해도 꿋꿋이 오는 9월 24일부터 28일까지 광주 메가박스와 충장로 일원에서 열리게 된다.
“이 영화제는 지속 가능합니다. 인권과 예향, 의향, 미향을 살리는 빛고을 광주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획이 가능합니다. 또 영화제에서 발굴되고 제작된 프로그램을 아카이빙하여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문화 콘텐츠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영상문화 산업을 선도하고 문화관광 상품으로서의 역할과 고용 및 소득 효과 등으로 지역의 경제적 연관 효과가 클 것이구요. 이를 바탕으로 미래영상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영상미디어교육 진행을 통한 영상문화산업 인력을 양성하고 영화제의 문화예술산업에 대한 긍정적 효과와 지역 문화 발전 기여에 대한 여론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광주국제영화제의 입장입니다.”
올해 광주국제영화제는 저비용 고효율 영화제라는 장점으로 광주의 문화 인프라를 다양하게 발전시키고 집중시킬 경우,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실험성있고 창조성 있는 예술 영화와 작가를 소개하고 예술 영화를 비롯한 아트하우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을 새롭게 발굴하고 강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광주국제영화제이다.
정 교수는 이러한 장점과 효과들로 광주국제영화제는 영화와 시민을 하나로 묶는 문화이벤트와 축제를 통해 지역민의 통합에 기여하고 문화중심도시의 긍지와 이미지 구축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및 기업이 이 영화제에 대한 인식과 의지를 제고해 재정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문화중심도시의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본연의 삶
정교수는 작고한 청화 큰스님의 제자로 그분의 말씀을 듣는 광주 금륜회를 만들어 오랫동안 회장을 지냈다. 금륜회는 최근에 불교 도심 법당이 금륜회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금륜이란 영생불멸하는 진여불성인 금강륜으로 영겁을 통하여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구르고 굴러서 파사현정하는 진리의 수레바퀴 곧, 삼세 모든 부처님의 법륜을 말한다.
“오늘날, 어느 계층이나 유무식을 불문하고 갈등과 혼란을 거듭하는 현대사회의 위기현상에 대하여 심각한 불안과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더욱 답답하고 우울한 것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 인간의 고질적 병폐인 탐욕과 분노를 정화하는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갈수록 파멸의 낭떠러지로 치닫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 사회를 막론하고 모든 혼란과 불행의 근원은, 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의 상실에서 오는 것임은 췌언(贅言)할 필요도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무슨 현상이든 근원적인 통찰과 의식의 개혁이 없이 다만 피상적으로 현실사회의 구조적인 모순만을 제거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한, 우리 인간은 혼란과 분열의 수렁에서 영구히 헤어날 기약은 없을 것이다. 혼탁한 탁류를 맑히려면 먼저 그 근원을 다스려야 하듯이, 우리들이 가장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인생관을 확립하고 그에 따른 도덕적 실천에 노력한다면, 인류사회의 모든 병폐와 불행은 그 자취를 감추고 마치 먼동이 터올 때 어둠이 사라지듯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복지사회의 여명이 찬연히 밝아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정 교수의 좌우명은 ‘본연 모습으로 돌아가자’이다. 채근담에 ‘가장 훌륭한 인품은 본연의 모습이다’는 말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무턱대고 남을 모방하는 것은 허위의 느낌을 준다. 진정한 자아를 잃으면 자신은 더욱 초라해진다. 사람은 평범해야 진실하다. 품행을 잘 닦은 사람은 천진한 사람이다. 정교수는 정말 천진한 느낌을 준다.
허세와 허영 그리고 허욕 따위는 왜 거짓이라고 하는가? 그것들은 모두 알맞지 않은 까닭이다. 무엇을 안다고 뽐내는 사람은 조금 알고 있을 뿐, 충분히 알지 못한 증거이다. 잘 모르면 어렵게 말하고 잘 알면 쉽게 말한다. 쉬운 것을 어렵게 둘러침은 서툰 까닭이다. 원숭이는 사다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무 타는 기술이 능숙한 까닭이다. 산새는 앉을 나무 가지를 고르지 않는다. 아무 가지에나 앉을 줄 알기 때문이다. 서툴면 억지를 부리고 쉬운 길을 두고 가파른 길로 어렵게 간다. 그러나 어렵던 것도 잘 터득하고나면 쉽게 된다. 인생에는 어려움과 쉬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상한 짓을 해서 남의눈을 홀리게 꾀를 부릴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다. 알맞은 것은 언제나 그냥 본연 (本然) 이다. 꾸미지 않고 숨기지 않으면 본연이다.
정교수는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본연’보다 알맞은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