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중미술] 1980년대, 부채의식이 품은 희망과 절망 민중미술 30人 재조명 / <28> 박은태 |
| 2010년 11월 26일(금)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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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태는 80년대 학번으로 민중미술 2세대 작가이다. 그는 전라도 빈농의 가정에서 출생해 공고를 졸업하고 도시의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미술공부를 하고 늦깎이로 대학에 진학한 그는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노동미술운동을 시작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광주 5월의 전사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리고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작용되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눈을 팔지 않고 노동자, 노숙자, 도시주변의 소외받는 빈민들 등 소외계층민의 일상의 삶을 화면에 담아오고 있다. 광주 5월의 교훈이 그렇듯이 소외받은 계층이 역사 안에서 들어 올려져야 바람직하고 건강한 세상이 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자신의 예술을 통해 그 깨달음을 구현하고 있다.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면서 과연 우리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고 모두 더불어 행복을 나눌 것인가에 대해 묻는 그의 그림과 미학적 방식은 때로는 희망적이고 때로는 어둡고 절망적이다.
◇빈농의 아들에게 다가온 민중미술
박은태는 전라도 강진의 가난한 집안에서 출생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그릴 수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그림을 그리는 미술반 친구들을 뒤로하고 지게를 지고 논, 밭으로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이후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해 기술을 배워야 했고 졸업 후 성남의 방위산업체인 통신장비 공장에 입사할 수 있었다. 이 공장에서 의무적으로 5년을 근무하면 병역특례와 함께 일정액의 돈을 벌어 부모님께 보내 줄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지치기 시작했고 공장에 다니던 10년 이상된 작업반장 선배들의 삶을 보고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배들의 반복된 삶에서 아무런 희망과 미래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의 10년 후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이기에 막막한 그의 상황을 극복할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광주 5월항쟁이 발생했고 언론매체와, 공장의 동료들은 “광주 ××놈들이 폭동을 일으켰어”라고 말하면서 전라도 출신인 그의 머리에 군밤을 주면서 지나갔다. 당시 약관의 나이였던 그는 무슨 말인지 별 관심없이 그렇게 무덤덤하게 광주 5월을 지나친 것이다.
이후 방위산업체에서 7년을 약간 넘긴 그는 다니던 공장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5년간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익힌 그림으로 대학을 진학했다. 27세, 늦깎이의 나이로 시골 낙도의 미술선생의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함이다.
당시 야학교사였던 미술학원 선생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술선생의 술자리에 자주 따라갔던 그는 야학선생님들이 하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에 귀기울이면서 새로운 현실인식의 눈을 떠가기 시작한다.
박노해의 시집과 전태일 평전 그리고 사회과학서적을 구입해서 읽고 우리사회의 모순과 지금까지 노동자 생활을 쭉 해왔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면서 역사의 주인의식도 갖게 됐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면서 동료들과 도서관에서 광주 5월 영상자료들의 테이프를 접하게 됐다. 이러한 과정들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에게 다가왔고 민중미술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 어떠한 결정적인 사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숙명처럼 다가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광주 5월’의 교훈과 부채의식
박은태가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미술을 시작한 것은 미술그룹 ‘두렁’에서 활동하면서부터다. ‘두렁’ 그룹의 선배들로부터 현실과 역사, 노동과 광주 5월의 진실 등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고 이념적 학습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다.
동시에 ‘노미위’(노동미술위원회)에서 현장미술 실천을 위한 활동을 하게 된다. ‘노미위’는 ‘민족미술연합회’ 소속 단체로, 선전활동과 현장의 걸개그림, 깃발제작, 그리고 개인창작 작업 등을 했다.
박은태는 사회의 여러 모순과 노동자의 현실에 관한 문제들을 사회운동으로 연결시켜 확장해 갔다. 마치 자신이 노동자였듯이 노동자의 삶과 현실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이론과 실천 작업들을 병행하면서 하나하나 성과를 쌓아 갔다.
그가 이렇게 민중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의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민중미술의 선배화가들이 열정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동기와 배경을 이해하고 선배들에 대한 존중과 굳건한 신념이 배경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위에 광주 5월 전사들의 희생적 교훈은 그의 가슴속에 각인돼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우리사회의 기층민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바꾸자는 의지와 정신 속에 민중미술을 실천해 나갔다. 지금도 노동현장에 다시 들어가 자기검증과 정신의 긴장을 유지시켜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사유에서다.
이렇게 박은태는 광주 5월의 마지막 도청을 지킨 전사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안고 살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 어디 그에게만 있겠는가? 민중미술화가 모두가 그러한 의식 속에서 작품을 하고 있다고 보여 지며, 80·90년대 내내 사회운동과 미술운동 전반에 짙게 드리워져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지금까지 그는 한눈을 팔지 않고 노동자, 노숙자들 그리고 도시주변에 소외받는 빈민들 그런 소외계층들의 일상적 삶을 화면에 담아오고 있다. 그 역시도 우리시대의 가장 피진한 서민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그는 자기의 삶과 예술을 일치시켜 예술 속에 삶이 있는 그런 체험적 예술과정을 걷고 있는 화가다.
◇시간이 안겨준 희망과 절망의 미학
박은태는 80년대 학번의 민중미술 2세대 화가로 광주항쟁이후 민중미술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 광주 5월이 그에게 주었던 교훈 즉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계층들이 역사 안에서 들어 올려져야 건강한 세상이 온다는 것을 알았던 세대이다. 마지막까지 광주를 지키기 위해 도청에 남았던 주역들은 소외계층이었듯이 말이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소망과 동력은 바로 그런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라는 광주 5월의 교훈을 지금까지도 단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자신의 예술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광주 5월이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상황은 급격한 중산층의 붕괴로 비정규직, 노동자, 노숙자, 실업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 지점에서 우리 앞에 놓여진 현실들을 보여주고 과연 우리사회가 어떻게 변화돼야 모두 더불어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러나 한편, 그의 그림에서는 지나친 어두움과 절망의 그림자가 깊고 넓게 드리워져 있어 보인다. 광주 5월 현장은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사람들이 광주해방과 더불어 활기찬 희망의 모습을 보였다면 그의 미학은 그런 희망을 읽어 내기가 어렵다. 어찌 보면 절망의 미학이다.
그가 놓친 중요한 것은 광주 5월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교훈으로 그 엄청난 절망과 좌절의 도청 앞과 금남로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에게 과도한 희망만을 말한다면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절망이 광주항쟁 30년이 지난 오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일 수도 있겠다.
이 연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장 경 화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