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자본으로 위장된 공포와 불안 민중미술 30人 재조명 / <29> 이원석

2010년 12월 03일(금) 00:00

‘오늘도~’ (220×150×150㎝, 섬유강화프라스틱, 아크릴페인팅, 2003년 작)

(약력) ▲1967년 경주출생 ▲2006년 홍익대학교 졸업 ▲개인전-5회(서울, 울산) ▲초대전-2010년 경기도힘 전(경기도립미술관), 미술 속의 삶의 풍경전(포항시립미술관)-2009년 전국환경미술축제(울산문화예술회관), 조국의 산하전(헤이리마음 등불)-2008년 거울아 거울아전(국립현대미술관), 고양 국제조각심포지엄(호수공원 주제광장·경기)-2006년 ASIA ART NOW전(아라리오·베이징), 일기 다시 읽기전(모란갤러리), 조국의 산하전(경기도 문화전당)-2005년 횡단과 종단전(일산미관광장·경기)-2004년 금지된 상상력전(민주화운동 기념회관·서울)외 다수

이원석은 80년대 정치·문화적 상황에 세례 받은 민중미술 2세대 작가로 구분된다. 그는 1986년 미술대학에 입학하면서 ‘5월 광주’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후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80년대 비판적 리얼리즘을 계승한다. 그는 매년 5월이면 성지순례 하듯 광주를 찾아왔고, 더불어 정신적 무장과 함께 비판적 리얼리즘 미학의 날을 세워왔다. 작가는 첫 번째 개인전(2006)을 시작으로 정치적 성향의 혁명적 리얼리즘에서 자본이라는 새로운 폭력과 권력 앞에 민중들의 힘과 민중들의 소망이라는 주제를 새로운 형상성의 리얼리즘으로 확장시켜 간다. ‘5월 광주’라는 창을 통해 구축된 정신과 저항적 미학을 통해서 그의 최근작품은 훨씬 내밀해지고 정교해졌다. 그의 예술적 저항목표는 현대사회 속에 눈에 보이지 않은 자본의 탈을 둘러쓰고 숨겨져 있는 것들을 잘 찾아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5월 광주’의 충격과 역사의식
1980년 5월, 이원석은 경주의 외곽에 있는 중학교 1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다. 평범한 중학생이었던 그에게 광주 5월에 대한 정보나 관심은 없었다. 더구나 광주라는 지리적·정서적 환경의 차이는 ‘5월 광주’를 더욱 그의 관심 밖으로 몰아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원석이 ‘5월 광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은 대학 입학 후였다. 1986년 미술대에 입학한 그는 도서관에서 광주민중항쟁과 관련된 사진자료를 접하고, 과 운동권 선·후배를 통해 알게 됐다. 한마디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상당기간 정체성에 혼란을 겪어야했다. 점차 ‘5월 광주’에 대한 진상을 알아가면서 그는 우리나라의 역사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가 다녔던 대학은 보수적이면서 서구의 형식미학을 중점적으로 지도했던 터라 운동권 활동과 민중미술 실천에 그만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대학생활을 소홀하게 되고, 교문 밖 현장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원석은 특히 80년대 후반 진보적인 미술그룹(청년미술공동체, 1988)을 조직해 민중미학과 사회과학 이론공부에 매달렸다. 또 매년 5월이면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찾았으며, 故 구본주와 함께 소집단(참흙, 1991)을 만들어 이론학습과 실천적 활동을 적극 펼쳤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지역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심층적 공부를 하기도 했다. 호남권, 영남권, 태백권을 각각 여행일정에 따라 나누고 매번 종착지 광주에 모여 토론했다. 이렇듯 그에게 광주는 정신적 지주가 됐고, 광주를 통해 리얼리즘 미학의 날을 세웠다.

‘위험한 과속, 우측통행’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0년 작)

◇새로운 리얼리즘 지평 확장
이원석은 80년대 정치적·문화적 상황의 세례를 받은 민중미술 2세대 작가로 새로운 리얼리즘의 첫 번째의 기수이다. 80년대 후반부터 그는 노동자, 농민 계급을 옹호하며 변혁운동에 앞장섰던 ‘혁명적 리얼리즘’을 표방했다.
이후 그는 90년대에 들어 결혼과 육아 등 가장으로의 역할에서 누적된 생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휴면기에 접어든다. 그리고 2002년에 들어와서야 6년간의 긴 휴면기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다.
90년대부터 그가 취해왔던 혁명적 리얼리즘 미학의 입장은 과거 민중미술 1세대의 선배들과는 또 다르게 예술적 성취를 바라는 것은 성급한 욕심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정치·사회·문화적 환경이 모두 80년대와는 다르며, 특히 진보진영 조차도 세분화돼 사회운동과 함께 예술적 실천의 동반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작품제작에 전념하면서 중산층이나 소시민들의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해낸다. 이러한 작품들을 모아 선보인 첫 번째 개인전(2005)은 새로운 리얼리즘 조각가로의 발판을 확보하는데 큰 계기가 됐다.
첫 번째 개인전을 기점으로 과거는 정치적 성향이 강한 혁명적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작품들이었다면 긴 휴면기를 지난 후의 작품은 현대사회의 소시민들과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아내는 작품들로 변화된다. 리얼리즘의 새로운 형상성의 모색에 성과를 일구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전시작품 ‘비대한 숨’(2005)은 자본주의 욕망과 허구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재생산으로 비대해진 한 남성의 몸을 통해 현대사회를 향한 은유적 비판을 담아내고 있다. 또한 ‘내 탓이요’(2005)는 남성이 끊임없이 반복해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무한한 생존경쟁을 하는 현대사회에 노출된 개인의 나약한 존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요구한다.
이제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점이나 목표가 이동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진심과 따스함을 담고 있다. 다시말해, 현실사회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그의 휴머니티에서 출발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첫 번째 개인전을 중심으로 그는 자본이라는 새로운 폭력과 권력 앞에 민중들의 힘과 민중들의 소망이라는 주제로 리얼리즘의 새로운 형상을 치열하게 확장시켜 간다. 특히 故 구본주 등과 함께 민중미술 2세대의 새로운 리얼리즘 지평을 열어 가는데 앞장선 작가 그룹 층으로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리얼리티하고 힘이 있다.

‘티’ (210×150×150㎝, 섬유강화프라스틱, 2004년 작)

◇자본은 폭력, 그리고 공포와 불안
이원석은 80년대 후반 대학시절을 보냈기에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회과학에 과도하게 노출된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노출에서 탈출해 자본의 물리적인 힘에 의해 소시민에게 미치는 다양한 권력과 폭력현상들을 포착해내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은 IMF, 미국발 금융위기, 신자유주의 등의 상황에서 끊임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들이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무한한 탐욕경쟁의 공포에 항상 노출돼 언제라도 불시에 실업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소시민들의 불안한 심리적 리얼리티는 냉혹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예측할 수 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오늘도’(2003)는 도시의 출·퇴근 시간에 전철이나 버스 안의 소시민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오늘도’를 통해 그는 현대사회를 예술가로서 사회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구조를 분석하고 소시민의 내밀한 상황을 날카롭게 포착해내고 있다. 그는 치열한 몸부림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 소시민들의 모습을 직접 체험했다. 자신이 몸소 겪은 경험을 통해 불안함과 인간소외의 현상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가는 작품이다.
그는 80년대에는 정치권력이 폭력과 공포의 대상이었다면 신자유주의가 극에 달한 오늘날에는 자본의 권력과 폭력은 공포와 불안의 대상이 되는 그러한 사회를 담아내고 있다.
‘5월 광주’의 정신과 저항적 미학이 이원석의 작품을 통해 훨씬 내밀해지고 정교해졌다. 80년대는 우리들이 저항해야 될 목표가 훤하게 보였다. 그러나 현재는 자본이라는 탈을 둘러쓴 권력과 폭력은 숨겨져 있다. 작가는 그 숨겨진 것들을 잘 찾아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장 경 화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장)

이 연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