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민중미술 30인’으로 ‘광주미학’을 보다 민중미술 30人 재조명 / <32·完>에필로그

2010년 12월 30일(목) 00:00

2010년은 국치 100주년, 6·25동란 60주년,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으로 그동안 고난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꿈꿨는지 문화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민중미술 30인’을 통해 우리시대의 미학에 대한 읽기를 하였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미술, 즉 리얼리즘미술은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자생적으로 발생한 진정성 있는 한국의 현대미술이라고 생각한다. 민중미술은 형식미학의 모더니즘 비판, 자연주의 미술에 대한 비판, 유신독재와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부당함에 대한 저항으로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새로운 현대미술을 창조했다. 필자는 30회의 연재를 통해 이러한 민중미술이 이제 광주에서 다시 정리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즉, ‘5월 광주’라는 출발점에서 다시 시대의 미학적 관점을 올곧게 바로잡아야 한다. 5월은 민중미술을 분석하는 데에 있어 정신적·문화적 자산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한국현대사를 읽어가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기 때문이다.

오윤 作 ‘통일대원도’ 캔버스에 유채(1985, 349×138㎝)

◇민중미술은 진정성 있는 현대미술인가?
예술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존재해 왔다. 하나는 마치 누에가 뽕 잎 속에 안주해 있듯이 예술을 위한 예술지상주의인 ‘순수예술’이요, 다른 하나는 시대와 역사 앞에 예술을 무기로 투쟁하며 정당성을 외치는 ‘참여예술’이요, 마지막으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낭만주의식의 ‘퇴폐주의 예술’이 그것일 것이다.
그 어떠한 유형의 예술도 역사 앞에서는 당대의 문화와 정서를 함축하고 있는 시대의 증언자로 모두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지만 우선 전제돼야 하는 것이 예술의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역사와 시대 앞에 얼마만큼 보편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미술계에 입문한 이후, 80년대를 관통해오면서 한국현대미술사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의미의 현대미술이 있었던가?” “있다면 과연 어떤 것이 한국현대미술로 자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한국의 현대미술은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서구 형식미학을 무작정 차용하고 트렌드를 카피하는 역사가 아니었던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에 자유로운 답변을 내놓기가 매우 어려움을 확인하면서 그동안 연구해온 한국현대미술사에 대한 혼돈스러움은 상당기간 이어지게 됐다.
이제라도 당당하게 우리의 미학적 원형과 아우라(窓)를 찾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의식 있는 젊은 사람들이 중심이 돼야 할 일이다.
이러한 연장선에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현대미술 중 198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미술, 즉 리얼리즘미술을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자생적으로 발생한 진정한 의미의 한국현대미술이라고 보는 것이다. 1980년대 리얼리즘미술은 이 땅에 왜곡된 채 이식된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 그리고 순수라는 이름으로 화단정치에 여념이 없었던 자연주의 미술에 대한 비판부터 새로운 구상화의 세계를 만들었고 억압적인 유신독재와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의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한국만의 독창적인 현대미술을 창조했다.
필자가 ‘민중미술 30인’ 연재를 위한 인터뷰와 그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민중미술가 30인이 이룩한 자생적인 이 땅의 현대미술에 대해 한없는 자부심을 느낀 것이다.


◇문화적 원형의 회복과 광주미학
필자가 만난 민중미술가 30인은 자아의 발견에서부터 치열한 현실과 역사를 발견하고 영혼의 자유를 찾아 끊임없이 저항했던 발자취에 때때로 희망과 낙관이 도도하게 흐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자유로운 예술적 상상력은 어떠한 권력도 어느 누구도 절대로 막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민중미술의 태동은 역사적으로 보자면 1979년 광주에서는 ‘광주자유미술인협회’(광자협)가 서울에서는 ‘현실과 발언’(현발)이 각각 조직돼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 모두 1980년 5월 광주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치열하게 투쟁할 수 있었던 사회·정치적 환경과 더불어 뚜렷한 명분을 줄 수 있었을까?
‘5월 광주’는 한반도의 80년대를 뜨거운 현장으로 만들었고, 광주에서 시작된 함성은 90년대로 이어져 전국의 거리와 노동현장으로 확산됐다. 이러한 연장선에 민중미술도 역시 운동현장과 전시장에서 정치적 구호에서 노동구호로 바뀌어 확산된 것이다. 이렇듯이 민중미술은 ‘5월 광주’의 역사적 자극으로부터 크게 확산되어 나갔다고 보는 것이다.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목표도 5월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단이 가장 큰 슬로건이었다.
이러한 민중미술이 이제 광주에서 다시 수집·정리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다름아닌 ‘아시아문화도시’로의 명분 외에도 30년 전의 ‘5월’이라는 출발점에서 다시 민중미술과 함께 광주의 정신적·미학적 관점을 올곧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민중미술 30인의 작품을 분석함에 있어 광주정신을 바탕으로 미학적 근거들을 설정하고 분석했다. 특히 민중미술은 어찌되었든 광주 5월이 가져다준 정신적·문화적 자산으로 광주의 미학적 원형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광주는 또 하나의 문화적 컨텐츠와 민중미술이라는 시장을 창조하고 선점하는 것으로 세계의 모든 민족·국가와 문화를 교류를 함에 있어서도 그들의 문화를 광주적 미학의 창으로 분석하고 광주문화로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겨진 숙제와 인권·평화미술관 건립
무척 아쉬운 부분이지만 민중미술 30인을 선정하고 인터뷰하였지만 좁은 지면상 누락된 작가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때로는 필자에게, 때로는 작가에게 여러 가지의 사유들로 인해 인터뷰를 못했던 아쉬움도 남아있다. 그리고 30인 작가별로 연구한 성과를 충실하게 담으려 노력했지만 여러 일들에 쫓기면서 소홀함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연재를 하는 과정에 중요하게 작동된 점은 광주의 미학적 원형을 어떻게 선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작가별로 다양한 취재를 하였으며, 또한 작가별로 광주의 미학적 관점을 달리해 작품을 분석했지만 필자의 논리의 한계로 아쉽고 부족한 점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2011년에 ‘민중미술 30인’의 원고를 재정비하고 묶어 단행본 책자로 발간을 계획하고 있어 앞서 지적했던 점들을 다시 한번 치밀하게 보강하고자 한다. 특히 민중미술작가 30인을 통한 광주의 문화적 미학적 원형을 보다 치열하게 연구하여 점검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광주의 ‘인권·평화미술관’ 건립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인권도시 광주에 인권·평화미술관은 당연하며, 아울러 광주에 새로운 문화컨텐츠는 물론 인권이라는 마켓을 창출하고 선점해 갈 수 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민중미술을 광주에 결집시켜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며, 인권도시 광주가 정신적 문화적으로 당당함은 물론 그 민중미술로 인하여 100년 앞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만난 ‘민중미술 30인’. 그들은 오늘도 또 다시 어둡고 습기 찬 작업실을 고통스럽게 지키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만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붓을 잡고 있을 것이다.

이 연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장 경 화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