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통시장의 추억 박준수 논설위원

2011년 09월 06일(화) 00:00

추석이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급속한 기술문명의 발달로 생활양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추석과 설 만큼은 명절의 위상을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농경사회로부터 시작된 추석은 우리 민족의 정과 맛과 멋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조상을 기리고 가족들과 오붓하게 정을 나누고 흥으로써 시름을 달래는 추석이야말로 인간세상의 가장 평화로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축제를 준비하는 손길이 벌써부터 분주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통시장이다. 전통시장은 농경문화의 원형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처럼 현대식 시설에 세련되고 치밀한 마케팅기법은 없지만 넉넉한 인심과 살가운 인정이 넘쳐난다.
간혹 전통시장을 지나갈 때면 고향에 들어선 것처럼 편안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도 그 속에 서민의 정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따금 시간이 나면 회사에서 가까운 광주 양동시장을 산책삼아 둘러보게 된다. 양동 금호아파트 입구에서 시작되는 시장 순례길은 닭전머리, 수산시장, 복개상가, 돌고개 부근까지 1시간 남짓 소요된다.
시간이 완행열차처럼 느리게 흐르는 양동시장은 80년대 풍경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나 양동시장은 70, 80년대 호남의 대표적인 상권으로 당시로선 가장 현대적인 유통시설이었다. 원래 있던 자리에 옛 장옥을 걷어내고 슬라브식 상가를 짓고 맞은편 광주천을 복개해 주상복합상가를 신축했다.
규모와 시설에서 월등한 양동시장은 상품구색이나 물량면에서 비교우위를 차지해 호남 상권을 주도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유통산업합리화 정책에 따라 현대식 대형점포들이 줄줄이 생겨나면서 양동시장을 비롯한 전통시장은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다행히 최근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여러 가지 시책이 성과를 나타내 차츰 활기를 되찾고 있다. 광주시와 교육청, 대학, 기업, 금융기관들은 매주 토요일을 ‘전통시장 가는 날’로 지정하고 가족과 함께 전통시장 장보기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광주·전남지방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광주·전남지역 전통시장은 136곳, 점포 수는 1만459개로 나타났다. 전통시장 통폐합 등으로 2년 전보다 시장 수는 14곳 줄었지만, 점포는 243개 늘어났다. 시장 당 하루 평균 고객 수는 지난 2005년 2천895명, 2008년 1천552명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2천267명으로 증가했다.
전통시장은 상거래 장소이기도 하지만 서민들의 생활터전이고 문화공간이자 추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번 추석 차례상 장만은 전통시장에서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고물가속에 전통시장의 식품류 판매가격이 대형마트나 대형슈퍼(SSM)보다 15% 가량 저렴하기 때문이다.
광주시가 최근 소비자단체를 통해 전통시장 4개소, 대형마트 4개소, 대형슈퍼(SSM) 4개소 등 총 12개소에 대해 선어류·건어물·생육·곡물·과실·채소·가공식품·공산품 등 36개 품목의 가격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조사 결과 이번 조사 품목에서 동일제품이 없는 쌀을 제외한 35개 품목 중 전통시장 가격이 비싼 것은 두부 등 9개 품목에 불과한 반면 나머지 26개 품목은 전통시장이 대형마트·SSM의 판매 가격보다 싼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 대상 품목을 일괄적으로 구매할 경우 전통시장에서는 18만2천800원이 소요되는데 반해 대형마트에서는 21만4천410원 그리고 SSM에서는 21만1천640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나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와 SSM 대비 각각 3만1천610원(14.7%), 2만8천840원(13.6%)이 저렴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형점포에서 쇼핑하는 게 익숙해진 현대인들이지만 추석 차례상 장보기만큼은 잠시 패턴을 바꿔 전통시장을 찾아보자. 그곳에서 값싸게 장도 보고 덤으로 넉넉한 인심과 추억 한 꾸러미 안고가자. 그래서 올 추석대목에는 시장 한켠에 좌판을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주름진 상인의 얼굴에도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