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고려인 극작가 ‘한진’ 작품 조명 김병학 시인 …5·18 다룬 희곡 등 고려인 문학자료 최초 발굴 /정다운 기자 swiss@kjdaily.com

2011년 09월 07일(수) 00:00

1985년,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 연극 ‘폭발’의 막이 내리자 객석을 가득 메운 중앙아시아 고려인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5·18광주민중항쟁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쓴 이는 극작가 한진. 그는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에서 극작가로 일하며 수많은 희곡 작품을 남겼다.
재소고려인 극작가 한진의 탄생 80주년을 맞아 그가 평생을 바쳐 써온 작품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김병학 시인이 펴낸 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문예총서 제12권 ‘한진전집’(인터북스 刊)이 바로 그 책이다.
1931년 평양에서 태어나 모스크바영화대학을 졸업한 극작가 한진은 촉망받는 북한의 인재였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정치적 사변에 휩쓸리게 되자 망명길에 올랐고, 소련 땅에서 비극과 고난의 생활을 연명했다. 그는 온갖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 한민족 최초로 설립된 우리말 극장인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서 극작가로 일하면서 희곡과 소설을 남겼다.
특히 5·18을 주제로 한 희곡 ‘폭발’을 발표해 당시 소비에트연방 카자흐공화국 작가동맹에서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에게 주는 상인 베. 마일린 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재소고려인들이 생산한 본격적인 문학 작품 가운데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으로는 이 희곡이 유일하다.
순수하게 구소련에서만 작품 활동을 해온 재소고려인 작가의 전집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책에는 한진 작가가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서 극작가로 일하면서 쓴 10편의 희곡과 19편의 단편소설, 그리고 3편의 글이 실려 있다. 그중 희곡 6편, 소설 7편, 글 1편은 김병학 시인이 처음으로 발굴해 한국에 공개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희곡 1편과 소설 7편은 구소련에서도 그 존재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김 시인은 한진을 비롯한 10명의 소련유학생들의 망명사건과 그들의 고난의 생애도 각종 문헌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상세히 고증해냈다.
또 이 전집에는 작가 한진이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던 시절, 평양에 있는 가족들, 망명동료, 기타 소련 고려인 작가들에게서 받은 편지 등 각종 서신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진의 어머니가 전쟁 중에 헤어진 아들의 소련 유학과 망명,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급박한 사건들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아들에게 보내온 24통의 애끓는 편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극적이고도 통렬한 한민족 수난사의 축소판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다.

■ 김병학 시인은…

김병학 시인은 임자도 출신으로 지난 1992년에 카자흐스탄으로 건너가 고려인 최초 강제이주지 우스또베에서 민간 광주한글학교 교사, 수도 알마틔에서 알마틔고려천산한글학교장, 알마틔대학 한국어과 강사, 재소고려인 신문 고려일보 기자를 역임했다. 2005년에 시집 ‘천산에 올라’를 펴내면서 시인으로 등단했고, 재소고려인 구전가요를 집대성한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1, 2’ 에세이집 ‘카자흐스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 등을 펴냈다.

/정다운 기자 swiss@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