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인프라 태부족…적정예산 편성 실효성 확보해야 응급의료 지방화모델 만들자 / 4. 한국형 중증외상센터 모델은 전국 16곳 설립 추진…예산 2천억 운영부실 불보듯 외상전문의 인건비 7억-27억 불과 현실 여건 외면 국감서 문제점 지적 복지부 재검토 공모 잠정 중단 /박상원 기자 swp@kjdaily.com

2011년 10월 28일(금) 00:00

중증외상센터 설립은 의사가 직접 탑승해 진료를 가능하게 하는 닥터헬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 지바현의 경우 반경 50㎞을 기준으로 닥터헬리가 15분에 도착해 의사가 직접 외상환자의 진료에 들어간다. 사진은 지난 9월 운항에 들어간 전남지역 응급의료전용헬기에서 이송된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

지난 1월 해적소탕을 위해 펼친 소말리아 해역의 아덴만 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 치료를 계기로 우리나라 외상치료시스템에 대한 성찰과 필요성이 본격 논의됐다. 10개월이 다 돼 가지만 보건복지부와 국회, 의료계의 주장이 서로 상반되면서 소모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논의된 쟁점을 정리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또 시사점을 제공할 일본 닥터헬리 분야 권위자인 일본의과대학 지바현 호쿠소병원 구명구급센터 益子 邦洋(Kunihiro Mashiko)교수의 인터뷰를 싣는다.

■외상진료체계의 요건 서울대병원 서길준 교수 자료

보건복지부가 이달초로 예정됐던 중증외상센터 공모 사업을 잠정 중단했다. 중증외상센터 예산 지원을 둘러싼 실효성 문제 등이 불거져 불가피하게 미룰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중증외상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무한데다 전담인력마저 부족한 상태에서 전국 16곳에 2천억원의 예산을 분배하면 무늬만 흉내낸 중증외상센터가 난립할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후 일정은 정치권과 추가 예산지원 방안에 대해 조율한 뒤 빠르면 12월께 공모가 재개될 전망이다.
복지부는 지난 3일 중증외상센터를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전국에 16개소(2013년 개소 예정 부산대병원 포함)를 설치키로 발표했다. 중증외상센터에는 응급의료기금을 통해 중환자실(40병상), 혈관조영실 등 외상전용 시설장비 설치에 80억원, 외상외과 전문의 충원계획에 따라 매년 7-27억원의 인건비를 연차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매년 2만여명의 외상환자를 치료해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을 현재 35%에서 20%로 줄인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복지부가 제시한 중증외상센터의 개념은 365일 24시간 교통사고, 추락 등에 의한 다발성 골절·출혈 환자 등에 대해 병원 도착 즉시 응급수술이 가능하고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 장비, 인력을 갖춘 외상 전용 치료센터를 말한다.
하지만 이 사업은 대한응급의학회 등 관련 학계와 국회의 국정감사 등에서 예산 지원을 둘러싸고 정책 부실 문제를 강도 높게 지적, 비판하면서 보건복지부가 사업 자체에 대한 재검토에 나섰고 결국 공모를 잠정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일부 병원은 정부의 전액지원을 주장하며 공모에 불참의사를 밝혔고, 정치권과 일부 전문가들은 2천억원의 예산으로는 센터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없으며 추가예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복지부가 그동안 추진한 중증외상센터 사업을 보면, 지난해 3월 김 윤 서울대 의대교수에게 의뢰한 ‘한국형 권역외상센터 설립 타당성 및 운영모델 연구’에서 6곳의 권역외상센터에 6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경우 2.08의 비용 대비 편익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이는 6천억원을 투입하면 1조2천억원의 효과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2009년도 중증 외상환자수(자료:통계청, 2009년 사망원인 통계)

그러나 이같은 결과가 나온 지 1개월 후 기획재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맡긴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이 0.31-0.45 수준으로 효과가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복지부는 경제성 논리를 앞세운 재정부 안을 채택, 당초 필요예산으로 책정했던 6천억 대신 2천억원으로 예산안을 제출했다. 이를 토대로 6개 권역센터 대신 16개 기관에 2천억원을 분배하는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는 국내의 여건과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고 예산규모에 맞게 졸속으로 처리, 관련 학계를 비롯 국회에서 중증외상센터의 기능과 역할이 무늬만 흉내내는 외상센터 역할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지적하자 결국 재검토를 거쳐 공모가 중단된 상태다.
우리나라의 예방가능사망률은 지난해 35.2%로 미국·일본의 10-15%에 비해 높은 편이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외상전문진료체계를 도입해 외상환자 사망률을 크게 감소시키고 있다. 미국은 203개소, 독일 90개소, 일본 22개소, 런던 4개소의 중증외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개소도 없는 상황이다.
복지부도 현재 우리나라 중증외상진료체계에서 외상전용 중환자실과 외상외과 전문의사 부족을 가장 시급한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개선하려는 대책은 너무 안이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중증외상환자는 생명이 위급할만큼 신체 여러부위를 동시에 다치며 발생초기에 정확하고 신속한 처치가 생존율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외상센터는 민간병원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의 경우 다양한 인력자원 투입과 장기간의 환자재원기간, 위험부담과 야간근무 등 근무강도가 높아 대표적인 기피분야로 국가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현재 중증외상환자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회와 정부, 의료계가 지혜를 모아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합리적인 여건을 구축해야 한다.


“日 닥터헬리·구명센터 연 50억 지원”
구니히로 마시코 日의과대 지바호쿠소병원 교수

“한국에서 추진하는 중증외상센터는 일본의 고도구명구급센터와 유사한 의료기관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고도구명구급센터는 한 현(우리의 광역단체 도에 해당)에 1-2개 정도로 정부가 지정하며, 심한 화상·중독·절단 접합 등 3가지 중증 환자는 반드시 거부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요건에 부합해야 한다.”
구니히로 마시코 일본 의과대학 지바호쿠소병원 구명구급센터장(교수)은 일본의 고도구명센터와 일반 구명구급센터의 차이점을 이같이 설명하고 “일반 구명구급센터도 시설이나 인력 여건에 따라 고도구명구급센터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외상센터 건립 문제에 대해 “일본의 경우 구명구급센터에서 중증 응급환자를 맡고 있으며 이들의 신속한 진료를 위해 인구 등을 고려 반경 50㎞를 기준으로 닥터헬리를 운영하고 있다”며 “한국의 여건을 모르는 상황에서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지바현을 예로 들면 600만명당 2개 닥터헬리, 1개 닥터헬리가 300만명 반경 50㎞를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마시코 교수는 “도시의 경우 지역의 넓이와 인구 등이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농촌 등은 인구 보다는 거리기준이 합리적이다”면서 “한국도 인구 300만명당 닥터헬리 1대를 기준으로 16개 도시에 외상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좋은 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시코 교수는 또 “한국에 닥터헬리가 없지만 일단 닥터헬리가 있다면 외상센터로 볼 수 있다”며 “닥터헬리가 이송해 온 환자는 50%가 외상환자이고 그 절반이 교통사고 환자로 닥터헬리가 있는 곳을 거점센터로 보면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닥터헬리 2억1천만엔, 구명구급센터 1억5천만엔 등 연간 3억6천만엔(50억정도)을 지원하고 있다며 일본의 사례가 한국의 외상센터 설립에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마시코 교수는 “응급의료기관 설립의 경우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의료인의 사명감이 중요하다. 일본은 인구 10만명당 4명이 사망하지만 한국은 10만명당 10명이 사망하는 수준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나가려는 의료기관의 의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획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상원 기자 swp@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