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들] 섬진강 도깨비로 꿈과 상상의 나라 만든다 전라도 전라도 사람들 / <2>김성범 ‘도깨비마을 사람들’ 촌장 인형극·동요부르기·동화읽기 등 다양한 활동 곡성지역 문화공동체 중심축…문화의 꽃 활짝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

2012년 01월 20일(금) 00:00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방망이로 두드리면 무엇이 될까~ 금 나와라 와라 뚝딱 은 나와라 와라 뚝딱.”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소리 높여 불렀던 동요다. 여기에서 도깨비는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만들어 내는 신기한 요술쟁이다. 뿔 달린 도깨비지만 전혀 무섭지 않다. 되레 친근하다. 우리에게 도깨비는 친숙한 장난감이었다. 대개 시골에서 자란 40대 이상의 장년들은 코흘리개 아이였을 때 어른들로부터 도깨비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가을 추수를 끝낸 초겨울 밤, 화롯불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할아버지로부터 머리에 뿔이 솟은 도깨비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당 건너편 뒷간 옆에 서 있는 빗자루만 봐도 움찔 겁을 먹고 후다닥 방으로 뛰어들었다. 여름날 밤엔 파란불이 하늘을 날고, 냇가에 붉은 불이 일렁이는 것을 보면서 정말 도깨비가 있는 줄 알았다.


이렇게 ‘전설의 고향’처럼 전해오는 도깨비 이야기에 생생하게 숨을 불어 넣은 사람이 있다. 그는 섬진강 도깨비 살 앞에 ‘도깨비대장’을 세우고 아예 ‘도깨비마을’을 만들었다. 전설의 뒤안길로 사라질 지역 설화를 ‘오늘’로 불러들인 주인공은 ‘도깨비마을 사람들’의 촌장, 김성범 동화작가다.
도깨비 설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 섬진강가의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산기슭에 터를 잡고 10년 넘게 ‘도깨비마을’을 가꾸고 있다.
그는 2001년 고향인 곡성에 터를 잡았다. 광주에서 반듯한 직업(세무회계사)으로 남 부럽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계속 솟구치는 문학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그를 시골마을로 인도했다.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호곡리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해 동학농민전쟁과 도깨비살 등 고향에서 소재를 찾아 동화를 쓰면서 설화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다. 아이들에게 신나고 즐겁게 옛 이야기를 들려줄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 섬진강 도깨비 설화에 ‘필’이 꽂혔다.
꿈과 동화를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도깨비는 좋은 소재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
도깨비를 다룬 많은 동화를 쓰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이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우리 역사와 설화 속에서 잘못 전해지는 도깨비의 실상을 바로잡고 알리는데 주력했지만, 어느새 도깨비가 흥겨운 공동체를 만드는데 좋은 수단이 됐다.

심술깨비

나도깨비

2004년부터 뜻이 맞는 이웃들과 함께 ‘도깨비 마을 사람들’을 출범한 다음 시골 주민들과 함께 도깨비를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고 창작동화를 쓰고 인형극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50여명의 어린이와 주민들이 참여한 ‘도깨비마을 사람들’은 이제 200여명으로 늘었다.
곡성읍내 작은 교실을 텃밭으로 삼은 ‘도깨비 마을’에서는 지금 다양한 문화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도깨비를 주제로 한 인형극에 푹 빠진 어린이와 어른들은 일주일에 두차례씩 모여 공연을 위한 맹훈련을 하고 있다.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연출과 출연을 직접 하면서 서로의 정을 돈독히 나누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력이 갖춰지고 또 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어린이단체나 도서관 등에서 공연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요청이 들어오면 회원들은 신나게 달려간다. 김 촌장은 “인형극단은 자체적으로 운영될 만큼 자생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동요 부르는 어른들’도 신이 났다. 주부와 직장인들이 주축이 된 ‘동요 부르는 어른들’은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정겹게 동요를 합창하며 동심을 추억하고 있다.
동화 읽는 어른들도 시원스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동화책을 낭독하면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꿈과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있다. 이들도 주위 사회·문화·복지단체에서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청소년 음악반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아름다운 정서를 함양하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문화공동체 활동에 들어간 곡성의 ‘도깨비 마을 사람들’이 지역 축제에 참가해 그동안 연마한 실력을 펼쳐보이고 있다.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동화와 동시를 읽고 쓰고 창작하는 문학반은 취미활동을 넘어 전문작가 수준을 넘보고 있다. 최근엔 등단한 동시작가가 탄생해 문학반의 위상을 확실하게 알렸다.
김성범 촌장은 “더불어 살고 즐기자는 데 뜻을 같이한 지역의 원로 등 몇 몇 분들과 함께 처음 도깨비마을의 문을 열었을 때는 주민들이 선뜻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각 그룹별로 스스로 운영계획을 짜고 또 열정을 쏟는다”며 흐믓해 했다.
‘도깨비마을 사람들’이 작은 마을 곡성에서 문화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는 아직 성이 차지 않는다.
도깨비 천지로 가득찬 도깨비 마을을 만들어 ‘꿈과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게 하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다.
지금 작업실이 있는 고달면 호곡리를 텃밭으로 삼을 작정이다. 섬진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이 곳에 도깨비 세상을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조각가이기도 한 그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5천 년 동안 설화·전설·민담에 등장하는 말썽쟁이·심술쟁이·요술쟁이 도깨비들을 되살리는 작업도 같이 하고 있다. 그가 손을 대기만 하면 다양한 표정과 생생한 몸짓을 지닌 친근한 도깨비들이 탄생한다. 그의 산골집에는 온갖 모양의 도깨비들로 가득하다.
그는 “도깨비는 모이면 춤추고 노래 부르는 신명나는 존재이듯 우리 서민들의 얼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면서 “곡성에 오면 도깨비의 모든 것을 보고 즐길 수 있는 ‘도깨비 세상’을 만드는데 땀방울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곡성군에서도 도깨비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곡성군은 섬진강 마천목장군의 ‘도깨비살 설화’를 근거로 하는 ‘도깨비공원’ 조성계획을 확정하고 문화·관광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곡성의 명물인 기차마을에 도깨비라는 특징적인 주제에 걸맞게 꿈과 상상력이 가득한 흥미롭고 매력적인 테마공원을 만든다는 것이다. 군은 2013년까지 1단계 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도깨비공원에는 상상 체험마을과 삼림욕장, 휴양 펜션 타운이 들어서며 그 안에는 도깨비 체험관, 도깨비 연수원, 도깨비 조형물, 도깨비 역사박물관, 숲 속 한방클리닉, 도깨비 길 등이 만들어진다.
곡성군은 도깨비공원을 기차마을, 섬진강 천문대, 심청 이야기 마을 등과 연계하면 체류형 관광이 이뤄져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