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도 사람들] 농촌공동체 운동 매진…복지 통해 세상 바꾼다 전라도 전라도 사람들 / <3>강위원 ‘여민동락’ 대표 /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 |
| 2012년 01월 27일(금)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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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촌의 현실은 암울하다. 수입 개방의 파고와 해마다 널뛰기하는 농·축산물 가격 등은 농민들의 가슴을 옥죈다. 도시에 비해 열악한 교육여건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게 하는 요인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농촌공동체’ 운동이 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가 실패로 돌아갔다. 기존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공동체의 폐쇄성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광군 묘량면의 ‘여민동락(與民同樂)’ 공동체는 주목할만 하다. 농촌공동체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으면서 농촌의 변화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여민동락 공동체는 작고 가난한 농촌복지단체다. 소박한 노인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농촌지역 어르신들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 동행하고 있다. 폐교 위기의 시골학교를 살려가려 애쓰면서 마을기업과 공동체회사를 설립하는 등 농촌의 교육과 문화, 복지와 경제의 부흥을 위해 힘쓰는 일터공동체다.
특히 지역주민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복지 너머의 복지’를 꿈꾼다. 농민들과 더불어 농사를 짓고 밥을 먹으며 작은 시골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농촌의 삶터를 새롭게 살리는 지역일체형 공동체를 지향한다.
여민동락을 설립하고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은 바로 강위원(41)씨다. 1990년대 학생운동과 시민사회운동에 관심이 있던 이들에겐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강위원 대표는 학생운동의 사실상 마지막 시기로 평가받는 1997년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이었다.
사회 변혁을 꿈꾸며 학생운동의 최선봉에 서 있던 그가 작은 농촌 마을에서 농촌공동체를 만든 건 우연이 아니다. 필생의 꿈인 사회복지를 이루기 위한 첫 발걸음이어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꿈은 두 번의 옥고를 치르면서 완성돼 갔다.
“한총련 의장으로 활동하던 1997년 7월 국가보안법(이적단체 결성) 위반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됐습니다. 4년 2개월 간의 수감 기간 동안 사회복지에 대한 꿈이 확고해졌습니다.”
이미 서석고 3학년에 재학중이던 1989년 전교조 지원 활동으로 광주교도소 정치범 독거방에 6개월간 수감된 바 있다. 당시 광주지역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맡았다. 광주교도소에서 기라성같은 학생운동 지도자들을 보면서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무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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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당시 두 가지 다짐을 했다. 하나는 ‘5·18 광장에는 절대 서지 않는다’였다. 또 다른 하나는 ‘생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즉, 학생운동을 후방에서 지원키로 마음먹었다. 4년간의 타향살이가 녹록치 않았을 터다.
대학 입학 후 1989년 광주교도소에서 만났던 학생운동 선배들을 찾았다. 그의 눈에 비친 선배들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생활을 위해, 생존을 위해 사상적 좌표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강 대표의 삶을 지배하는 줄기가 됐던 선배들의 변화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후방지원’을 다짐했던 그는 다시 전면에 나선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투쟁을 계기로 전남대 학생회장이 된 것이다. 1997년 한총련 의장까지 학생운동은 그의 20대를 관통했다.
“이상하게도 옥중에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운동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유실시키지 않고 청춘에 세웠던 길을 놓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또 생활인으로서 전문성을 갖고 내 분야를 설정, 전문가로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인식했던 시기였습니다. 복지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2001년 8월 경주교도소를 출소했지만 당장 사회복지로 뛰어들지 못했다. 대신 2년간 한총련 합법화 운동에 매달렸다.
2003년 가을, 주변과 모든 연락을 끊고 대구 효경노인복지원 자원봉사자로 변신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4년 간의 자원봉사자 생활은 그에게 사회복지의 지향점을 보여줬다. 관행적이고 관료적인 복지의 문제점을 파악했다. 국가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운영이 힘든 복지법인의 구조에 회의를 느낀 것이다. 대구에서 쓰던 가명도 돈(보조금)을 지원해달라는 데 빗대 ‘김지원’이라고 할 정도였다.
2007년 대구 생활을 정리하고 곧장 고향인 영광으로 향했다. 10년 가까이 구상했던 농촌공동체 모델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학생운동을 같이 하던 후배 2부부와 2008년 여민동락을 설립한다.
여민동락을 만들었지만 우여곡절은 계속된다. 강 대표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아서다.
“시골 어르신들은 강위원이가 교도소 들락거리더니 결국 인생 실패하고 온 것 아니냐고 생각하신 듯 했습니다. 또 하나는 주민들에게 신뢰를 얻어서 결국 뭐(정치) 좀 해보려고 한다는 인식도 많았습니다. 정치에 대한 오해는 여전합니다.”
영광으로 들어간 뒤 1년 동안 세 부부는 부부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생활비가 없어 4명은 시골에서 일하고 나머지 2명은 외지로 돈을 벌러 다녔다. 두 사람이 벌어온 월 400여만원으로 여민동락 운영비에, 세 가족 생활비까지 충당했다.
세 부부가 가진 모든 재산을 여민동락에 쏟아 넣고 ‘퇴로’를 차단했다. 구성원들의 이탈로 실패하는 다른 공동체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선택한 배수진이었다.
힘겨운 1년이 지나고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그토록 불편해 하던 구성원들이 시골 생활에 만족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민들의 신뢰도 얻어졌다. 세 부부로 출발한 여민동락에는 지금 7가구가 들어와 산다.
현재 1만400평의 농사를 짓는다. 여민동락 구성원들은 스태프 역할을 맡고 농업 전문가인 지역 어르신들이 농사 일을 한다. 협동농장 형태다. 후원회원도 500명 가량 된다. 이들이 내는 후원금과 물품 지원으로 여민동락의 1년 살림살이가 이뤄진다. 2011년의 경우 현금 후원이 8천여만원 정도였다.
마을기업인 ‘할매손’(모싯잎 송편 공장)과 ‘동락점방’을 설립하고 영농사업단도 조직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여민동락은 2억7천만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올해는 5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여민동락은 폐쇄적 공동체가 아니라 농촌의 한 면(面), 생활공동체 한 단위를 복지를 매개로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로 만드는 스태프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여민동락 구성원들은 정착 초기 묘량면을 벗어난 본 적이 없다. 묘량면 내에서의 활동을 원칙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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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4년 째, 여민동락은 현재 진행형이다. 기틀은 잡았지만 100% 성공 모델로 보기엔 아직 부족한 게 많다. ‘생협’ 구조로 정착돼야 진정한 농촌공동체로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현재 ‘후원회원’을 ‘생협회원’ 형태로 전환하고 그 수도 1천명까지 늘리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지난해 초 강 대표는 두 번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외도’를 시작했다. 광산구노인복지관 관장 직을 맡은 것이다. 그가 구상한 사회복지 실험은 세 단계다. 농촌공동체를 시작으로 도농복합공동체, 도시공동체로의 확대다.
여민동락이 농촌공동체라면 광산노인복지관은 도농복합공동체로 볼 수 있다. 농촌과 도시가 혼합된 광산구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최적의 장소다. 그는 40대 10년을 공동체 활동에 쏟아부을 계획이다.
강 대표는 50대 이후의 삶을 아직 빈 칸으로 남겨뒀다. 그럼에도 스스로 ‘망상’이라 표현하는 바람은 있다. 바로 통일시대 북한의 농촌복지 운동에 일조하고 싶은 것이다.
“시간이 더 흘러 제 묘비에 새기고 싶은 말은 ‘복지로 변혁을 꿈꾸는 진보주의자’입니다. 사회복지는 제가 잘 할 수 있으면서 행복한 일입니다. 학생운동은 사명감, 부채의식, 당위 이런 걸로 했는데 사회복지는 재미, 의미, 기질로 합니다. 지금 전 너무나 행복합니다.”
스스로 행복에 빠져 있는 ‘복지운동가’ 강위원. 그의 ‘꿈’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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