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들] 달빛 어루만져 만들어낸 전남 대표 체험마을 전라도 전라도 사람들 / <4>송일근 담양 무월녹색농촌휴양마을 추진위원장 농사짓는 도예가, 이장 맡아 행복마을 만들기 주도 한옥짓고 돌담쌓고…체험관광 활성화 외지인 북적 “문화콘텐츠 없으면 미래 없다” 文香 넘치는 동네로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

2012년 02월 03일(금) 00:00

담양군 대덕면 무월마을에서 달을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농부이자 도예가인 송일근씨가 자신의 공방에서 토우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주민들과 한마음으로 일궈낸 행복마을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무월마을 한옥체험관에서 송일근씨와 마을 어르신들이 하트모양을 만들고 있다.

<題字-담헌 전명옥>

‘어루만질 무(撫) 달 월(月), 달을 어루만지는 마을’. 이름처럼 아름다운 담양군 대덕면 무월(撫月)마을이 요즘 뜨고 있다. ‘떠나는 농촌’이 현실인 전남의 여느 시골마을과 달리 이곳은 찾아오는 농촌이 되고 있다. 금산을 배경으로 40여가구가 오붓하게 둥지를 튼 무월마을은 지난 한 해 농촌마을이 차지할 수 있는 명성이란 명성은 전부 차지했다. 녹색농촌체험마을(2009년), 행복마을(2009년), 경관조성우수마을(2011년)로 지정된 이곳은 지난해 농촌관광명소 육성 프로젝트인 Rural-20에 전국의 내로라하는 농촌마을을 제치고 대한민국 대표 마을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전남도의 행복마을평가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곳 달빛 무월마을에는 달을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농부이자 도예가인 농촌지도자가 있다. 마을 한 복판에 자리잡은 ‘허허공방’의 주인장이기도 한 송일근(54)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12월까지 내리 3년동안 마을 이장을 맡았던 그는 탯자리인 이곳을 젊은 시절 잠시 떠났다가 스물여덟 청춘 때 다시 돌아온 이후 줄곧 지키고 있다. 어린시절 함께 골목길을 누비며 자란 또래친구들만 13명에 달할 정도로, 60여호에 이르던 큰 마을이 ‘돈’벌려고 하나 둘씩 도시로 떠나면서 32가구까지 줄어든 무월리에서 토우(土偶)를 빚으면서 마을을 지켰다. 집 앞 논에서 캔 흙을 버무려 도기를 굽고 뒷산에서 베 온 나무로 집을 지으면서 그 옛날처럼 동네사람들이 함께 북적거리며 사는 날을 꿈꿨다.

그런 그에게 마을을 활기 넘치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전남도가 야심차게 추진한 ‘행복마을 사업’에 무월마을이 선정된 것이다. 농촌마을살리기 프로그램에 주민들이 의지를 보인 덕분이었다.

처음엔 절박한 심정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한 유서깊은 마을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마을의 존립을 위협하는 일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경관을 심하게 훼손하는 채석장이 들어선데 이어 쓰레기처리장 문제가 불거지고 심지어 군부대 낙하훈련장 후보지로 거론되면서 잘못하면 동네가 없어지게 되는 상황까지 전개됐다.

주민들의 의사는 무시된 채 일방통고식으로 일이 추진되자 주민들은 마을을 유지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방안으로 행복마을사업을 신청하기로 한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마을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 장기적으로는 마을을 계획에 의해 가꿔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다행히 2009년부터 행복마을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당시 50대 초반의 젊은 그에게 책임이 맡겨졌다.

행복마을의 전제조건은 한옥을 짓는 일이었다. 먼저 마을을 한옥촌으로 바꾸고 민박과 함께 특산품을 판매하며, 이어 마을의 대표 문화프로그램을 만들어 체험관광을 활성화해 농촌을 살리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자 어려움이 뒤따랐다. 개인의 부담이 뒤따르다보니 주민들이 선뜻 나서지 않았다. 한옥을 짓겠다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뒷전으로 물러났다. 이러다간 죽도 밥도 되지 않겠다고 판단한 마을주민 몇몇은 앞서 행복마을을 추진했던 다른 마을을 찾아가 실상도 보고 조언도 받았다. 마을이 변모하고 민박이 이뤄지면서 소득도 제법 올리는 것을 보고 주민들의 마음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처음엔 10호 정도가 한옥을 짓는데 동참했다. 집이 완성되면서 마을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이곳의 풍광과 맑은 공기에 매료된 외지인들이 땅을 구해 집을 지으면서 마을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다음은 돌담쌓기에 돌입했다. 여기에는 철저하게 울력을 부쳤다. 마을사람들의 단합 여부가 행복마을가꾸기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판단하고 주민 모두가 동참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덕분에 2.3㎞의 돌담을 쌓는데 민원 한 건 발생하지 않았다. 자기 땅이 조금 들어가더라도 길을 넓히는데 선뜻 내놨다. 작은 사안이라도 갈등이 없도록 서로 양보하고 또 동의가 이뤄지면서 마을 사람들간의 소통도 갈수록 원활하게 이뤄졌다.

마을의 자랑이자 명물로 자리잡은 돌담은 이렇게 탄생했다.

마을이 가꿔지면서 이제는 식구가 늘기 시작했다. 이 곳이 고향이었던 출향인 5가구가 다시 들어오고 4가구는 연고가 없는데도 마을로 찾아 들어왔다. 동네는 41호로 다시 커졌다. 3년 사이에 한옥은 21동이 지어졌고, 지금도 2동은 건축중이다.

이제 무월마을은 전남의 대표 행복마을이자 농촌체험마을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한옥과 돌담길을 따라 조성된 마을산책로, 디딜방아간, 공동우물샘 등 볼거리·즐길거리에다 전통 토우공방 등과 연계한 풍부한 체험기반이 구축돼 도시인의 발걸음을 유혹하고 있다. 여기에다 마을주민 전체가 체험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는 등 열성적이어서 모범적인 농촌체험마을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의 마을가꾸기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문화콘텐츠를 갖고 있지 않으면 마을이 영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동네를 미래로 보고 있다. 문패 하나를 달더라도 예술작품으로 만들고, 대문도 좋은 그림판이 된다고 보고 특색있게 꾸미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주민들의 참여가 기본요소가 된다. 별의별 재능을 가진 주민들이 직접 작가가 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손재주가 좋은 노인은 대나무공예를 선보이고 술 담그는 비법을 갖고 있는 아주머니는 전통주를 빚는다. 한과도 만들고 천연염색도 하면서 마을 전체가 예술인촌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연스레 체험활동이 이뤄지면서 마을이 활기를 띠는 것이다.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마을을 새롭게 이미지화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지금도 머리를 맞대고 있다.

마을의 역사를 지키고 창조하는 일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지금은 1년이지만, 이게 10년이 되고 100년이 되면서 역사가 되는 것”이라면서 “우리의 아들·딸은 물론 그 후손들에게 무월마을이 이뤄진 과정을 잘 간직해서 남겨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월대보름마다 마을주민들이 함께 달집을 만들고 달맞이 행사를 거창하게 치르는 것도 무월의 역사를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마을에 민속관이나 문화관을 만드는 것도 소중한 마을가꾸기의 한 작업으로 꼽고 있다. 마을의 역사를 모두 담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체험객이 늘어나고 소득이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좋은 곳에서 살고 있고 또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일을 하고 있는지, 주민들이 깨닫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제 첫 걸음이지만 지난 3년 사이 마을이 변하는 것을 직접 체험한 주민들이 이제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일을 해 낼 것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그는 작업장인 ‘허허공방’ 한 켠에 앉아 있는 토우처럼 환하게 웃었다.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