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병] 나라 ‘풍전등화’…신분 초월 6천여 의인 칼을 들다 광주시.전남도 공동기획 구국 항쟁의 횃불, 호남 의병 제1부 임진왜란기 - 포충사에 들리는 함성(2) 야트막한 제봉산 병풍처럼, 송림으로 고즈넉 의로운 맹세 ‘생생’…인근엔 고경명 생가터도 /사진=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

2012년 02월 20일(월) 00:00

광주·전남지역 의병의 본산 포충사는 시민들의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드넓은 잔디밭이 휴식 공간으로도 쓰이고 있다.

◇알림=본보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임진란과 이후 광주·전남 의병활동과 전적지, 의병장 등을 발굴해 본란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062-650-2060



임진왜란 발발과 시작된 호남의병 활동, 정유재란, 한말까지 다듬어보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첫 번째 선택한 포충사. 호남 의병의 본영이다.

제봉산에 올랐다. 포충사를 병풍처럼 둘러안고 섰다. 야트막한 야산이라 하지만 기개는 높다 하겠다. 그 명칭은 바로 호남 제일의 의병장 고경명의 호를 따 붙인 것이다. 제봉산을 경계로, 딱히 경계랄 것도 없을 만큼 한 걸음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선생의 옛 집터가 자리한다. 제봉산을 산책삼아 옛 집터까지 30분이면 충분하다.

구사당은 사당 좌측편의 높은 언덕위에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주위에는 송림으로 뒤덮여 있고, 조망도 뛰어난 편이다.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예고 없는 왜적의 침입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조선. 나라와 민족, 고장을 구하고자 했던 선생과 숱한 의병의 뜻을 다시 새긴다.

◇흐르는 피로 내를 이뤄 왜 발목 잡고

구사당은 선조가 포충사라 사액한 최초의 사당으로 지방문화재 7호로 지정돼 있다.

귀하고, 천하고 든 간에 신분을 초월해 어깨 걸고 나섰던 6천여명의 의병들이다. 당시의 기준으로야 마땅히 귀천이 있었겠지만, 누구 하나 소중하다 하지 않은 목숨이 있었을까.

각기의 마음속에 담은 의로운 맹세는 또 어떠했을까. 날쌘 장수들마저 모두 무기력하게 패하고, 관군은 혼비백산한 상황.

고경명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60세의 고령으로 말 위에서 격문을 지어 각 도에 돌리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에 너나할것 없이 아비가 아들에게 명하고, 형이 아우에게 전하여 규합해 전장으로 나선 것이다.

칼을 들고 창을 메고, 심지어 도끼를 챙겨 전쟁에 나선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무엇보다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더 앞섰을지 모른다. 홀로 끼니를 때워야 할 노모를 두고, 배고픔에 굶주리는 생때같은 새끼를 두고….

옷깃을 헤집는 겨울의 칼바람 속에 순간 멈춰섰다. “충청도를 돌아 왜놈들이 이리로 온다. 죽일 놈들, 다 쓸어버리자. 절대로 두려워 하면 안된다”. 그 날의 함성이 귓전을 파고든다.

출병과 이어지는 백병전. 불을 뿜는 왜의 신식무기 조총 앞에 육탄으로 맞서 무수히 쓰러진 이름도 없는 의병들. 숨은 끊어졌어도 부릅 뜬 눈은 감기지 않았다.

이들은 흐르는 피로 내를 이루어 왜의 발목을 잡고, 쌓이는 주검으로 동산을 이루어 넘지 못하게 하니, 또 다음날 피로 내를 이루고 주검으로 동산을 만들었으니…. 호남이 살고, 나아가 조선이 살았다.

◇거친 자연석에 새겨진 노비 이야기

포충사 뒤편에 자리한 고경명 선생 생가터 위에 후손들이 집을 지어 지금은 고원희 가옥으로 명명돼 있다.

대촌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구사당은 관리상의 이유로 지금은 개방되지 않고 있다. 구사당 옆에서 내려보는 들녘, 드넓은 나주평야가 어렴풋이 들어온다. 전쟁의 성패를 가르는 군량미 창고로서의 기능도 빼놓을 수 없다.

구사당으로 가는 길. 충노비가 발길을 붙 잡는다. 다듬어지지 않고 거칠어 보이는 자연석이다. 의병을 모집해 출정할 때마다 따라 나선 노비 봉이와 귀인을 위해 건립한 것이다.

금산전투에서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물밀 듯 들이치는 왜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선생이 임종 전에 말하기를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양반들이 못나서 인데, 너희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고 했다.

이들은 선생의 시신을 거두어 정성껏 장사지냈고, 다음해 살아남은 맏아들 종후가 복수의병장이 돼 나간 진주성 전투에서 함께 순절했다. 충의의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드넓은 잔디밭 휴식공간으로도 활용

말 위에서 구국 일념을 일깨우기 위해 작성해 보낸 마상격문.

포충사는 고경명 선생과 두 아들과 유팽로, 안영을 배후한 사우이다. 광주시 남구 원산동(광목간 도로변에서 2㎞)에 위치한다. 크게 구사당과 사당으로 이뤄져 있다.

구사당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철폐되지 않은 광주·전남 2개 서원중 하나이자 호남의 대표적 호국선열 유적지로 꾸며졌다. 시민들의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드넓은 잔디밭이 휴식공간으로도 쓰이고 있다.

선생의 옛 집터는 포충사에서 대촌으로 1분여 가다보면 압촌마을 고원희가옥 이정표를 보고 진입하면 된다. 넓은 터 위에 많은 건물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사랑채와 안채, 곳간채, 위패를 모신 사당만 남아 있다.

매년 4월15일 포충사에서는 제향행사가 열린다. 광주시와 의회, 남구, 그리고 문중이 참여한 가운데 열리는데, 올해의 경우 일요일이여서 금요일(13일)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연간 15만명 찾는 충절의 본향”
포충사 관리사무소 문남열씨

“충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학생 견학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포충사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문남열(55)씨는 “연간 15만명이 방문하고 있으며, 많게는 하루에 1천200명-300명에 달한다”면서 “겨울철에는 상대적으로 뜸한 편이지만 조용하게 찾아 숭고한 뜻을 기리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문씨는 “선생과 아들 종후 인후 등이 출정, 순절했던 충남과 전북, 경남 진주 등지에서도 방문객이 찾고 있다”며 “국난 극복을 위한 당시의 충혼이 지금까지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씨는 “간혹 웃지 못할 이야기로 절이냐는 질문도 있다”면서 “포충사의 의미와 정신 계승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글=김종민 기자 kim777@kjdaily.com

/사진=김애리 기자 kki@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