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들] 영화 ‘천년학’ 무대…꽃잔치로 관광객 ‘유혹’ 전라도 전라도 사람들 / <7>최귀홍 장흥 선학동마을 이장 4월 유채·10월 메밀꽃 향기 가득 ‘꽃동네’ 40가구 경관보존직불제 참여…수익 짭짤 인터넷카페도 인기 연간 탐방객 3만 돌파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

2012년 02월 24일(금) 00:00

최귀홍 이장이 마을 앞 영화 천년학 세트장에서 곧 다가올 선학동의 봄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너털웃음 속에 노란 유채꽃 향기가 묻어난다.

<題字-담헌 전명옥>

누구보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 봄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이 곳은 마을주민 모두 한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다. 남도에서 가장 먼저 봄이 찾아오는 동네이지만, 이들은 지난 겨울이 오기 전 논밭에 유채씨앗을 뿌려놓고 노란 꽃망울을 터뜨릴 새 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름도 아름다운 남녘땅 정남진 장흥의 선학동 마을 사람들이다.
남도의 한과 정서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영화, ‘천년학’의 탯자리인 이 곳은 봄만 되면 마을 주위가 온통 샛노란 유채꽃으로 뒤덮인다. 이곳에서 2㎞ 남짓 떨어진 진목마을이 고향인 소설가 이청준의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무대이자, 이를 원작으로 해서 만든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이 탄생한 마을이다. 지금도 마을 입구에 당시의 세트장이 고즈넉이 앉아 있는 선학동은 4월초가 되면 마을을 둘러싼 23㏊(6만9천평)전체가 꽃송이로 장관을 이룬다. 파~란 바다색깔과 조화를 이룬 노~란 유채꽃의 매력을 만끽하려는 탐방객들로 한적했던 시골마을은 활기로 가득찬다.
10년전엔 이 곳도 인구가 줄고 빈집이 늘어가는 여느 시골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은 농촌지도자가 있었다. 10년째 마을일을 맡고 있는 최귀홍(56) 이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곳에서 태어나 고향땅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최 이장은 마을을 살리는 방안으로 ‘꽃동네’를 생각해 냈다. 마침 정부에서는 농촌살리기 사업의 하나로 ‘경관보존직불제’를 실시했다. 경관보존직불제는 주민이 직접 마을에 어울리는 작물과 경관을 찾아내 가꾸면 이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최 이장은 가장 화려한 봄꽃으로 꼽히는 유채를 선택했다. 주민들은 보조금을 받는 대신 고추·참깨 등 밭농사를 포기했다. 2006년 늦가을 처음 23가구 주민들과 함께 밭에 씨앗을 뿌렸다. 노인들만 남은 동네에서 처음엔 그가 절반이상을 파종했다.

겨울 한파를 견디고 2007년 4월 유채가 그 모습을 화려하게 들어냈을 때 영화 ‘천년학’이 개봉됐다. “촬영을 마친 천년학이 장흥에서 첫 시사회를 할 때 꽃이 만개했죠. 우리마을을 있게 한 이청준 선생과 임권택 감독이 마을을 둘러보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더군요.” 최 이장은 그 때처럼 가슴이 뛴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조촐하게 마을잔치를 열었다.

영화가 화제를 모으면서 마을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찾아들자 주민들은 아예 잔치마당을 벌였다. 바로 마을축제를 시작했다. 행정당국에서 거창하게 펼치는 축제가 아니었지만 유채꽃 향기가 가득한 마을에서 펼쳐진 잔치는 탐방객들에게 새로운 인상을 남겼다.

한 순간에 마을이 확 바뀌자 그는 바로 그 해 여름엔 메밀을 심었다. 가을이 되자 이번엔 마을이 온통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얗게 반짝였다.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오게 됐고, 이번에도 그는 마을주민들과 함께 축제를 진행했다. 축제 끝마당에는 메밀을 수확했다. 23㏊에서 18톤을 거둬들이자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는 단위당 수확량이 가장 많고 품질이 우수하다며 시중가보다 훨씬 나은 가격을 쳐 주며 사갔다. 기존에는 보리나 콩을 재배했던 주민들이 손이 훨씬 덜 가면서 수익도 많아지자 입이 함지박만큼 커졌다. 이제는 마을 전체 40가구가 경관보존직불제에 참여한다.

그리고 꽃동네로 변한 4월과 10월엔 한달동안 마을에서 잔치한마당을 연다. 부녀회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 천년학세트장에서 주막을 운영한다. 탐방객들은 애절한 사연이 담긴 그곳에서 막걸리 한 잔 걸치며 추억에 잠긴다. 해를 거듭할 수록 마을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연간 3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대표적인 농촌마을로 각광받고 있다.

이곳 선학동마을은 인터넷에서도 인기다. 인터넷 마을카페(http://cafe.daum.net/jnjhseonhakdong/)는 2007년 유채꽃이 만발하면서 마을이 확 달라지자 최 이장의 조카가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자”며 카페개설을 요청했다. 당시 그는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컴맹’이었다.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아 홈페이지가 만들어지자 운영방법은 혼자 터득했다. 사진을 올리고 간단하게 글을 쓰면서 마을을 소개했다.

효과는 기대이상이었다. 가장 먼저 먼 곳에서 사는 향우들이 감동했다. ‘오늘은 ○○댁 생일입니다’라는 작은 공지소식에 “고맙다”는 답글이 이어졌다. 마을카페는 지금 730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전라남도에서 우수사례로 발표도 했다. 그는 오늘도 호주머니에 ‘디카’를 담고 다닌다.

이를 보고 방송국에서 찾아와 ‘패밀리가 떴다’라는 인기TV프로그램도 촬영했다. 마을이 전국적으로 또 한번 알려지게 됐다.

이제 인터넷카페 ‘선학동마을’은 주민들과 출향인, 그리고 마을에 관심을 갖고 있는 탐방객들을 끈끈하게 연결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선학동 나그네’와 ‘천년학’에 푹 빠져 살았다. 이청준 선생이 ‘선학동 나그네’를 발표했을 땐 이곳에 ‘선학동’이 없었다. 이 곳의 마을 이름도 산 아랫마을인 산저리였다.

그런데 1996년 모 지방지를 읽다가 눈이 확 커졌다. “신문에 이청준 선생이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라고 가르킨 곳이 바로 우리 마을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관음봉’ ‘구슬바위’ ‘동섬’…, 모두 우리마을에 있었다.” 그는 그 때부터 “우리마을이 선학동이다”라고 알리고 다녔다. 소설을 읽고 찾아온 독자들이 회진까지 와서 선학동이 어디냐고 물을 때 아무도 정확한 곳을 모르는 그 때 그는 자기 마을로 안내했다. 선학동 안내인으로 10년을 넘게 살았다. 그는 자연스레 ‘선학동 나그네’와 영화 ‘천년학’의 박사가 됐다.

결국 마을은 지난해 10월 그동안 불린 산저리를 벗어 놓고 선학동으로 이름을 바꿨다. 마을 입구에 향우들은 큼지막한 돌로 표지석을 세웠다.

오늘날 선학동 마을을 있게 한 이청준 선생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그는 “내가 일을 제대로 못하면 선생님께 큰 오점을 남기는 것”이라며 “이청준 선생이 없었으면 선학동은 없기에, 잘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주민들이 절대적으로 믿어주기에 저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진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동네 구석구석을 서성이며 봄을 기다린다. 지난해 씨앗을 뿌린 유채는 4월초가 되면 노란 꽃망울을 떠뜨릴 것이다. 그러면 동네는 온통 꽃향기로 가득찬다. 그리고 마을은 또 한 달간 축제열기에 휩싸인다.
/글=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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