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들] 버섯으로 연 ‘인생 2막’ 고용·나눔 전도사로… 전라도 전라도 사람들 / <10>이명수 화순 ‘번지뜰버섯농원’ 대표 귀농 15년째 새송이 재배로 직원 50명 고용 외국인근로자 보너스에 4대보험까지 보장 이주여성 고향 보내기·농촌학교 활성화도 지원 /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

2012년 03월 23일(금) 00:00

화순 번지뜰버섯농원 이명수(53) 대표가 어려운 농촌의 현실에서도 고용 창출과 나눔, 2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해준 새송이버섯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題字-담헌 전명옥>

우리 농촌은 갈림길에 서있다. 전통 농업방식으로는 농촌에서 살길이 막막한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농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청장년층은 찾아보기 힘들다. 농사를 지으며 고정적인 수입을 올리기란 녹록치 않다. 빈곤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각 지자체마다 이같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하지만 묘안은 보이질 않는다. 이런 면에서 농촌에서의 일자리 창출은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환경 파괴 요인이 많은 제조업 공장이 아니라 순수 농업이라면 그 효과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 있는 ‘번지뜰버섯농원’. 오지호 기념관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이곳은 외견상 농사를 짓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생각하는 농업현장과 달리 공장과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다. ‘시골’에 있는 버섯농원만을 생각하고 찾아가서였을까. 엄청난 규모에 위화감마저 느껴졌다.

작업복을 입고 취재진을 맞은 이명수(53) 대표는 천상 ‘농사꾼’이다. 귀농한 지 15년. 평생 농사일만 해온 사람처럼 농업에 대한 의지, 목표의식이 뚜렷했다.

동복이 고향인 이 대표는 고교 진학을 위해 광주로 유학한 뒤 20년 가까이 도시에서 생활했다.

전남대 법대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에 입사, 12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다. 적지 않은 연봉을 받는 대기업 간부사원으로 일하면서도 마음 한켠엔 고향, 농촌에 대한 회귀 본능은 늘 존재했다.

현대자동차 영업소 점·소장으로 실적에 대한 압박과 고객관리의 스트레스는 귀농에 대한 꿈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1998년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곧바로 고향인 동복으로 향했다. 부모님이 고향에 계신 데다, 막연한 자신감도 넘쳤다.

“어린 시절부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습니다. 당시에도 틈틈이 내려와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곤 했습니다. 대기업에서 일하는게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지만 실적에 쫓기고 인간관계 등 고민이 많았습니다. 농업이 스스로 노력해서 성취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죠.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귀농을 결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재정적인 면이나 지역 여건을 감안, 버섯 재배를 택했다. 인근 마을에서 6-7명이 버섯재배를 하고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느타리로 버섯 재배를 시작한 이 대표는 소규모였음에도 연간 4천만-5천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처음 접한 농사일에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자신감이 더욱 커졌다.

새송이 버섯에 주목하고 2년간 차근차근 준비했다. 2000년 전남대 농업최고경영자과정 임업반 버섯재배 과정 교육을 수료했다. 종묘기능사 자격증도 준비했다. 종묘기능사는 버섯균을 다룰 수 있는 자격증이다.

새송이 버섯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균을 직접 만들어 배양물을 갖고 재배까지 일관농업이 가능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2002년 부모님과 여직원 1명 등 4명으로 새송이 버섯 병 재배를 시작했다. 대출에다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끌어 모아 4억원을 투자했다.

“새송이 버섯은 순환이 빠릅니다. 한 재배지에서 두달에 세 번은 수확이 가능합니다. 실패할 때도 있지만 자금 순환이 빠르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과 10년 만에 이 대표의 새송이 버섯 농원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록했다. 농원 규모는 3천500여평에 달한다. 현재 농원에서 일하는 직원만 50여명이다. 하루 3만5천병 가량 생산하는데 1년으로 따지면 1천만병이다. 연간 매출액 25억-28억원 사이다. 수출은 30% 정도다. 나머지는 광주 텃밭마트와 도매시장 등지로 출하된다. 말이 농사지 중소기업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동복면에서 1명 이상 고용하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역 내에서 번지뜰버섯농원이 갖는 의미는 농원 그 이상이다.

농사로 인생의 승부를 보겠다는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자 이 대표는 지역으로, 주변으로 눈을 돌렸다.

“새송이 버섯 농사에 성공한 게 저 혼자만의 능력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어찌됐건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농촌에서 숫자는 늘고 있지만 사회·경제적으로 기반이 미약한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번지뜰버섯농원에는 다문화가정 이주 여성 등 15명의 외국인이 일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들에 대한 임금 등 처우를 내국인과 똑같이 해주면서 이주 여성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끔 돕고 있다./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2005년부터 다문화가정 이주 여성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번지뜰버섯농원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필리핀,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등)은 일용직을 포함해 모두 15명이다. 전체 직원의 30%를 차지한다. 다문화가정 이주 여성과 외국인 근로자 비율은 반반 정도다. 이들의 임금수준 등 처우는 내국인과 똑같다. 이들이 안정적 소득을 통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준 셈이다.

최근 농촌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졌지만 이곳은 월급에 보너스, 4대 보험까지 보장, 차별화된다. 특히 1년에 한번씩 2주간의 특별 유급휴가를 준다. 고향에 다녀오라는 취지다. 물론 비행기표는 이 대표가 직접 마련해준다.

“다문화가정 이주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그분들이 한국에 대해, 한국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천시받는 게 현실 아닙니까. 한국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꿔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고국으로 휴가를 보내주는 것도 이런 생각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일에는 도움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명절이면 주변 이웃들에게 위문품을 전달하고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폐교 위기에 몰린 농촌지역 학교 활성화를 위한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엔 인근 중학교의 수학여행 경비를 모두 대주기도 했다.

이처럼 지역을 위해 여러 가지 봉사를 하고 있지만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농촌에서의 일자리 창출이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지역내 젊은 사람들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주기 위해 구심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정부나 지자체의 공모사업을 구상해 농촌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싶어서다. 지난해 처음 시도했지만 시기적으로 늦어 탈락했다. 올해에는 조금 더 착실히 준비해 다시 도전하려고 한다.

“우리 농촌에는 안타깝지만 구심점이 없습니다. 누군가가 구심점 역할을 해 경제적 자립기반을 잡아주면 나머지는 청년들이 알아서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채소단지 등 서너개 작목을 중심으로 연중 재배가 가능한 순환농법이 가장 잘 맞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공모사업을 통해 제가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성공적으로 추진돼 자리만 잡히면 제 역할은 끝납니다. 현재 상황에서 돈을 더 번다, 그런 개념은 무의미합니다. 농원을 잘 이끌어서 지속적으로 고용을 창출하는 것, 제가 이 시점에 농원을 하는 유일한 이유고 목표입니다.”

어려운 농촌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새로운 지향점이 이런 모습은 아닐까.

/글=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