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들] 템플스테이·참선수행…누구나 오고 싶은 사찰로 전라도 전라도 사람들 / <11>해남 미황사 금강스님 2000년 주지 맡은 뒤 한문학당 성공적 운영 작은학교 살리기 산사음악회 등 공동체 실현 /오경은 기자 white@kjdaily.com

2012년 03월 30일(금) 00:00

미황사와 인연을 맺은 모든 이들과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는 금강스님. 절의 주인은 스님이 아닌 마을주민들이라며 땅끝마을에서 아름다운 미황사 공동체를 일구고 있다./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題字-담헌 전명옥>

수수하고, 유쾌하다. 해남 미황사가 그러하고, 그곳 주지 금강스님(47)이 그러하다.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미황사. 달마산을 병풍삼아 아늑한 곳에 잡은 미황사는 우리나라 육지 가장 남쪽 땅 끝에 있는 절이다. 보통 절의 중심인 대웅전(大雄殿)은 웅장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갖추기 마련이다. 그런데 미황사의 대웅전엔 색이 없다. 기둥과 지붕은 나무 빛 그대로다. 그래서 짓다 말았나 하는 의심도 든다. 하지만 조금만 보고 있으면 금세 깨닫게 된다. 그 모습 그대로의 순수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그리고 이 곳엔 유쾌한 금강스님이 있다. 주지를 맡은 지 13년째이지만 아직도 그를 주지스님이라 부르는 사람은 적다. 그도 자신이 그저 금강스님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확실한 사실은 그가 주지를 맡은 후 미황사가 변했다는 것이다. 금강스님은 이곳에서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참선수양프로그램, 산사음악회 등을 통해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13년에 걸쳐 미황사를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누구든 오고 싶어 하는 절로 만들었다. 그렇게 미황사와 금강스님은 수수함과 유쾌함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요즘 힐링(Heailing)이 대세다. 마음 속 치유를 뜻하는 힐링. 각박한 세상 속 무엇보다 내면적 치유가 중요해졌기 때문일 게다. 미황사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힐링이 시작된다. 양쪽으로 늘어선 동백나무의 마중을 받고나면 멀리서 달마산이 팔 벌려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발걸음 소리, 말소리 조차 숨죽이게 만드는 조용한 그곳에서 금강스님을 만나 차담을 나눴다. 말차(抹茶)를 마시니 마음이 편해졌다. 차를 놓고 이야기 하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금강스님은 1982년, 17살 되던 해 해남 대흥사에서 지운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가 스님이 된 이유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권해 준 책 때문이다. 불교수행에 관련된 ‘육조단경’이었다. 책에 감동을 받아 스님을 좇아 대흥사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다니며 승가대신문기자와 편집장을 맡았다. 그리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행을 해왔다. 2000년부터 고향인 해남 미황사의 주지를 맡았다.

미황사에서 템플스테이 중인 외국인들이 봄햇살 속에 쑥을 캐며 진한 추억을 만들고 있다./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그 당시만 하더라도 미황사는 볼품이 없었어요. 위치적으로도 그렇고 스님 숫자도 적고 건물도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았었죠. 1천260년 된 미황사, 여기에 살고 있는 나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들었습니다. 위치가 땅 끝인 미황사엔 그 전부터 사람들이 무슨 희망이 있지 않을까하고 기대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미황사를 찾는 사람들만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정신문화 수행 프로그램을 마련해 사람들을 치유하고 안정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다 웃었다. 누가 땅 끝까지 찾아오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금강스님은 사람들과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한번 다녀간 사람들을 날마다 만나게 됐다. 그러면서 거리감 없이 오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프로그램이 어린이 한문학당이다. 전통적인 스님들의 생활방식들을 한문수업과 더불어 어린이화 했다.

2002년부터는 1박2일 일정의 템플스테이 체험과정을 개설했다. 차츰 템플스테이가 인기를 끌면서 맛보기 참선이 아닌 스님들이 하는 참선수행을 배우고 싶다는 요구도 늘었다. 그래서 2005년부터는 7박8일 과정의 참선집중수행 프로그램 ‘사람의 향기’를 개설했다.

그는 지역주민들을 위해선 괘불제와 산사음악회를 구상했다. 20년 전만해도 지역사람들만 알지 거의 모르는 절인 미황사를 유지해 온 것은 마을 주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 끝 어르신 노래자랑도 열고 아랫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산사음악회도 연다. 괘불을 대웅전 마당에 내걸고 한바탕 대동제를 벌인다. 그렇게 주민들은 미황사 안에서 하나가 된다. 주민들 간의 신뢰가 쌓이면서 폐교위기에 처한 서정분교도 살려냈다.

“8년 전 학생수가 5명이던 서정분교의 폐교를 막기 위해 선생님들과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학생유치에 들어갔습니다. 방과 후 학습 봉사활동 등을 통해 아이들이 오고 싶은 학교로 만들어보자는 거였죠. 그랬더니 진짜 학생수가 점점 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학생수만 70명이 넘고 전남도에서 무지개학교로 선정됐어요. 그야말로 정상적인 학교가 된 거죠. 농촌에 학교가 점점 사라짐으로 인해서 마을사람들의 공동체적인 부분도 희미해지고 없어집니다. 농촌사회가 급속하게 붕괴되는 것이 학교가 통폐합되면서 예요. 아이들이 없는 곳은 얼마가지 못하거든요.”

그는 미황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욕심 부리지 말 것을 강조한다고 했다. 욕심 부린 만큼 손해이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안에 지혜로움, 평화로움이 가득한데 다른데서 찾으려 한다. 내가 이것저것 얽혀 놓고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자유를 찾으려 한다. 그래서 마음의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내가 나의 주인입니다. 세상에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사람들이 당당함을 갖고 어디에서나 주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미황사에 와서도 손님이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다는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스님은 지난 1월 일주일 일정으로 미얀마에 다녀왔다. 미황사에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이곳을 오는지가 궁금해져서였다. 미얀마에서 버스를 타고 7시간을 들어가 800명의 스님들이 수행하며 살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전 세계스님들과 함께 수행을 하고 돌아왔다.

“전혀 다른 곳을 이야기만 듣고 찾아간다는 게 쉽지 않아요.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영어권이 아니어서 대화도 안 되는데 미황사를 일부러 찾아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나도 그런 심정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모두 귀한 식구들이죠.”

그는 매일 ‘聞我名者免三途(문아명자면삼도), 見我形者得解脫(견아형자득해탈)’을 되새긴다. ‘나의 이름을 듣기만 하여도 나쁜 곳에 빠지지 않고 나의 모습을 보기만 하여도 즉시 해탈하게 하여지이다’는 뜻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한다. 내 모습을 보고 정말 기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름만 들어도 힘들고 어려울 때 힘이 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날마다 살아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냥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이면 금강스님은 절을 찾은 식구들과 빗자루 들고 마당을 쓸고 또 쓸어내린다. 미황사를 찾아오는 사람들 위해서다. 그리고 미황사 속에서만이라도 모두가 근심걱정 없이 평화롭길 바란다. 극락세계 들어온 것처럼 행복하기를 말이다./글=오경은 기자 white@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