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들] 전통두부 생산·판매…주민 손으로 기업 일군다 전라도 전라도 사람들 / <12>남기문 장성 덕주마을 이장 ‘불태산 전통두부’ 장성 마을기업 1호 출범 직접 재배한 친환경 콩 활용…주문 쏟아져 소득·일자리창출·주민단합까지 일거양득 /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

2012년 04월 06일(금) 00:00

장성지역 마을기업 1호로 출범한 불태산 전통두부 공장 앞에서 기업을 이끌고 있는 남기문 덕주마을 이장(왼쪽 첫번째)이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마을주민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곳 마을기업에서는 매일 150모 정도의 두부를 생산하고 있다.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題字-담헌 전명옥>

1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 광주를 벗어나 장성군 경계에 들어서면 오른쪽 저 멀리 제법 웅장한 산이 눈 안으로 들어온다. 운전대를 돌려 산 아래쪽으로 다가가면 깔끔하게 정돈된 시골마을이 나타난다. 물고기와 오리, 각종 꽃들이 아기자기 그려져 있는 담장을 바라보며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마을회관이 반긴다. 그리고 그 옆엔 ‘장성군 덕주마을기업, 불태산 전통두부’라고 큼지막하게 쓴 간판을 단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그 간판은 ‘일하는 100세, 아름다운 실버’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간판이 모든 것을 말해 주듯, 이 곳은 덕주마을이다. 굳이 주소를 밝히자면, 장성군 진원면 선적리 덕주마을. 마을을 포근하게 안고 있는 웅장한 뒷산은 장성 산림 8경 중의 하나인 불태산, 이 곳에서 생산하는 것은 두부. 일하는 사람들은 요즘 실버세대라 불리는 노인들. 회사형태는 마을기업. 그리고 기업대표는 남기문(63) 이장이다.

마을기업인 ‘불태산 전통두부’는 불과 몇 달전인 지난해 11월 탄생했다. 연륜이 짧은 것 같지만, 덕주마을의 두부는 예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40여 가구가 오래전부터 터전으로 삼아 온 이 마을에서는 맷돌을 돌리고 장작불을 때서 두부를 만들었다.

남 이장은 “어렸을 때 집집마다 두부를 만들어 대부분 가용으로 썼지만, 더러는 팔아서 돈을 마련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두부는 마을의 전통식품이었던 셈이다.

올해로 4년째, 전체 햇수로는 10년 쯤 마을 이장을 맡아 온 그는 갈수록 고령화로 활기를 잃어가는 마을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해 왔다. 군대생활 3년을 빼 놓고는 이 곳을 떠나 본적이 없는 그에게 4년 전 반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두부만들기라면 달인의 경지에 오른 할머니들이 몇 분 계셨다. 이들 할머니들이 전통방식으로 두부를 만들어 판다면 용돈벌이는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팔순이 넘은 김옥례(82)할머니와 유현남(77), 최정혜(74)할머니는 2008년부터 마을회관 한 켠에 가마솥과 맷돌을 놓고 본격적으로 판매용 두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맷돌은 남 이장이 사비를 들여 구입했다.

전날 저녁 깨끗하게 씻은 콩을 12시간 불린 뒤 새벽 일찍부터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도록 부지런을 떨어 아침 7시께부터 두부가 나오기 시작하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손님들로 마을회관 앞이 북적였다. 불태산 자락 논밭에서 친환경으로 재배한 콩으로 만든 전통두부는 이렇게 입소문을 타고 인기상품으로 떠올랐다.

할머니들은 이렇게 번 돈을 자신들이 다 챙기지 않았다. 땀 흘린 대가로 용돈을 쓰면서 또한 마을회관 운영비로 지원했다.

매일 아침 일찍 정성을 쏟아 전통방식으로 만들어낸 두부는 소문을 듣고 달려온 고객들에 의해 순식간에 동난다.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희사한 금액이 수백만원에 이르자 마을주민들도 두부 만드는 일을 적극 거들기 시작했다. 친환경작목반을 만들어 좋은 원료를 공급했다. 세 할머니의 재래식 손맛으로 탄생한 전통두부가 불티나게 팔리면서 마을주민들을 하나로 합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남 이장은 주민들이 결속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욕심을 냈다. 두부로 마을을 살리고 공동체 의식을 복원하는 방안이 없을까 고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전남도와 장성군에서는 마을기업 육성 방안을 발표하고 공모에 들어갔다.

남 이장은 두부를 주민들이 직접 만든다는 단합성과 웰빙식품의 성장가능성, 그리고 전통기술을 보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모사업에 도전했다. 마을사람들도 3년전부터 마을 앞 너른 학전들에서 친환경으로 우리콩을 재배하는 등 원료공급 체계가 갖춰져 있어 마을기업으로서는 적격 조건을 갖췄다.

마침내 지난해 11월 장성군에서는 마을기업 1호인 영농법인 ‘불태산 전통두부’가 탄생했다. 마을주민들의 동참으로 법인이 출범하면서 지역공동체 비즈니스 형태의 사업장을 만들고 본격적인 판매체계를 갖췄다.

마을기업 출범과 함께 ‘불태산 전통두부’는 연중생산 체제에 돌입했다. 따라서 늙으신 할머니 세 명이 날마다 두부를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그래도 젊다는 남 이장의 아내 신남순(61)씨가 두부만들기에 참여했다. 이들은 2개조로 나눠 격일로 두부를 만들고 있다. 밀려든 주문에 맞춰 생산하고 광주 등 도시지역 배달은 남 이장과 기업의 사무장인 양정옥(58)씨가 도맡았다.

마을기업 탄생 과정에서 손발이 척척 맞은 이들은 판매와 관리에도 콤비를 이루고 있다.

불태산 전통두부는 당일생산·당일판매하기 때문에 유통기한을 표시하지 않는다. 방부제 등 첨가물은 생각지도 않았다. 원료로는 마을에서 키운 친환경 콩만을 사용한다.

전통방식의 제조기법이지만 위생적인 처리시설을 갖춘 사업장에서는 요즘 원료곡(콩)만 하루에 30-40㎏을 소화한다. 생산량은 30모짜리 5판, 150모 정도. 1모에 2천500원씩 판매한다. 당초엔 농한기에만 만들어 팔려고 했는데, 찾는 손님이 사철을 가리지 않기에 일년내내 생산해야 한다. 따라서 원료 확보가 관건인데, 마을에서 20여가구가 콩을 재배하기에 문제없다. 덕주마을에서만 3.2㏊, 거의 50마지기에서 콩농사를 짓고 있다.

남 이장은 “마을에서 생산한 콩은 판로 걱정없이 전체 소화할 수 있고, 부족한 양은 진원면 전체에서 구입하기에 지역의 전체 농가가 혜택을 입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남 이장은 요즘 신이 넘친다. 소문이 퍼지면서 인근의 광주 첨단지구는 물론이고 수완·하남지구 아파트에서 주문이 밀려오고 있다. 정기주문량은 사무장과 번갈아 가며 승용차로 배달하고 있는데, 이제는 운반차량도 장만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왕 벌인 판, 더욱 키워보자며 마을주민들과 뜻도 모았다. 원료가 되는 친환경 콩재배 면적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파트 주민들을 초청해서 재배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또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민들과 함께 두부만들기 현장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남 이장은 “웰빙시대에 건강식품의 대명사이자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으면서 불태산 전통두부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면서 “시골마을 사람들이 우리 힘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마을의 단합이 이뤄진 것이 더 큰 성과”라며 활짝 웃었다.

/글=이경수 기자 kspen@kj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