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판도라 상자’ 박준수 편집국장

2012년 04월 24일(화) 00:00

민주통합당에게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4·11총선은 민주당에게 판도라 상자와 같은 거였다. 과반의석 내지는 제1당의 지위를 안겨다줄 것으로 믿었던 투표함이 막상 뚜껑이 열리자 정반대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거 초반 100석 정도 차지할 것이라던 새누리당이 152석을 차지하고 민주당은 127석에 그치는 참담한 패배로 드러났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우’지도 못한 채 혼란에 빠져 있다. 희망은 닫힌 판도라 상자안에 깊숙이 갇혀버렸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패자의 자숙과 성찰의 태도가 엿보이지 않는다. 패배의 원인진단과 와신상담(臥薪嘗膽)이 눈에 띄지 않는다. 벌써 8개월 후 대선승리를 장담하는 눈치이다.

도대체 민주당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민주당은 지금 판도라 상자로부터 뛰쳐나온 ‘악령’들로 들썩이고 있다. 이같은 사정은 최근 김영환, 황주홍 민주당 당선자가 필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잘 읽히고 있다.

김영환의원(경기 안산 상록을)은 지난 20일 보낸 이메일에서 민주당에 통절한 절규를 쏟아냈다. 시인이기도 한 그의 표현이 다소 감성적이고 과격하긴 하지만 수사(修辭)에 담긴 메시지는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나는 오늘 절망한다’고 시작되는 그의 편지는 마디마디 폐부를 찌른다. “우리는 총선에만 진 것이 아니라 총선이후에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총선의 아우성이 사라지기도 전에 독선과 교만과 아집이 판을 치고 있다. 우리의 적은 명명백백 새누리당도, 박근혜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선거가 끝난 지 열흘이 지나도 제대로 된 총선평가가 없고, ‘내 탓이오’의 자기반성이 없는 이 정당이 수권할 수 있을까?”라고 탄식했다.

이어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잃은 것이 아니라 대선 승리의 희망을 잃었다. 우리가 가진 MB심판도 빛을 잃었고 유력한 대선 주자들이 줄줄이 빛을 잃었다. 누가 이 사망의 늪에서 우리를 구할 것인가! 낙동강 전선은 이제 형체도 없어지고 불임의 불안한 예감으로 밤잠을 설치게 되었다. 전선에서 살아 돌아온 분들이 망연히 안철수교수의 입당에 목을 매는 기막힌 처지가 되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황주홍 당선자(장흥·강진·영암)는 ‘민심의 시장은 양자택일한다’는 칼럼에서 정치학자 출신답게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민주당의 패배원인을 명쾌하게 진단했다. 그는 선거의 유일척도는 민심인데 민주당은 민심을 척도로 삼지 않고 자신들을 척도로 삼은 게 패착이었다고 분석했다. 모바일 경선 선거인단 모집 때 바닥이 불만으로 요동칠 때 지도부는 ‘선거혁명’이라며 민심을 일축했고, 김용민 막말파문 때도 국민정서는 분노했건만 당은 침묵하거나 대중의 ‘편협’을 냉소했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당의 ‘대중 깔보기’ 정치가 계속된다면 대선에서도 참패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대선승리를 꿈꾼다면 민심을 가르치려 말고 ‘닥치고’ 따라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두 꼭지의 글에서 공히 읽히는 민주당의 악령은 ‘독선’과 ‘교만’이다. 민심을 천심(天心)으로 떠받들지 않고 자의적으로 재단하고 군림하려는 태도이다.

이런 악령은 민주당 텃밭인 호남출신 국회의원들이 더욱 경계해야 한다. 20여년간 호남의 정치적 맹주로서 자리를 굳혀오면서 기득권에 안주하는 특권의식은 절대 금물이다. 이번 총선에서 광주의 투표율이 낮고 물갈이 요구가 높았던 건 바닥민심이 그만큼 민주당에게 식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결과에서 민주당이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는 자기성찰과 내부혁신을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노력이다.

지금 민주당은 한자락 절망의 그늘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사에는 희망과 절망이 뒤섞여 있다. 절망이라는 독과속에 희망의 씨방이 자라야 호남을 대표하는 정당으로서 미래가 있다. 4월은 잔인한 달이기도 하지만 부활의 계절이기도 하다. 4월에 부활의 반전 드라마를 쓸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요구된다.

판도라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희망을 일깨우기 위한 민주당의 변화와 쇄신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호남인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