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들] ‘도시공동체’ 전도사 사람중심 광주 만든다 전라도 전라도 사람들 / <13>최봉익 공동체 모닥 대표 1998년 ‘아파트 하자 문제’ 계기로 첫 발 좋은동네 만들기 핵심은 주민참여·소통 “평화로운 개성만점 도시 광주서 살고파” /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

2012년 04월 27일(금) 00:00

공동체 모닥의 대표 최봉익씨는 살기 좋은 도시공동체 만들기 전도사다. 최 대표는 건물 등 외관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공동체를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그는 삭막한 도시 광주가 사람 냄새 나는, 포근한 곳으로 탈바꿈할 때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서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

<題字-담헌 전명옥>

2000년대 중반 전국 곳곳에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 열풍이 불었다. 정부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으며 사업을 유도했다. 여기저기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골목길은 화사한 그림으로 단장됐다. 지자체마다 연수를 통한 벤치마킹을 위해 공무원과 주민들을 해외로, 해외로 내보냈다.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는 정체 상태다. 한마디로 Pause(일시멈춤)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지 못한 데 큰 원인이 있다. 또한 외형에만 초점을 둔 것도 실패 원인 중 하나다. 가장 중요한 사람을 키우고, 바꾸는 데 관심을 두지 못했다. 즉, 하드웨어는 신품으로 교체했지만 소프트웨어는 구제품을 고수한 셈이다.
광주의 스카이라인은 언제부턴가 아파트가 만들어내고 있다. 광주 주거 형태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80%를 넘어섰다. 아파트는 각박한 도시 생활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강운태 시장 취임 이후 광주시는 ‘창조도시’를 들고 나왔다. 창조도시는 쉽게 말하자면 살기좋은 도시 만들기다. 광주시가 참여정부 시절 추진된 ‘창조도시’를 새삼 다시 핵심정책으로 삼은 이유는 간명하다. 그만큼 삶의 질 향상이 중요하다는 뜻일 터다.

삶의 질은 여러 방면의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동해야 눈에 띄는 변화가 가능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공동체 운동이다.

최봉익 대표가 1997년 우연히 접한 ‘전라좌도·광주’ 고지도는 그에게 도시 공동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삭막한 도시에서의 공동체 운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10년 넘게 도시 공동체의 역할과 지향점을 설파해온 이가 있다. 공동체 모닥의 대표 최봉익(69)씨다.

최 대표는 도시공학 전문가도, 도시재생 전문가도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광주교대를 졸업한 그는 잠시 교직에서 일하다 밀알운동과 신협운동에 뛰어든다. 이후 YMCA 등을 통해 시민운동에 평생을 헌신했다.

그러던 그가 도시공동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7년의 일. YMCA 운동의 전면에서 뒤로 물러난 최 대표는 지방신문 1면에 보도된 ‘전라좌도·광주’ 고지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개념이 싹틀 때였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규장각에 있는 자료를 재분류하다 고지도가 나온 거죠. 그 고지도는 19세기 광주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고지도가 회백색이 아닌 컬러, 녹색으로 뒤덮여 있다는 겁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광주는 민주주의의 성지가 됐다. 하지만 진정한 광주정신이 무엇인지, 의향으로서 광주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확실치 않았다고 판단했다.

고지도를 이용해 판화 등 여러 미술작품을 만들어보면서 ‘광합성 광주’를 토대로 공동체의 의미를 담아내는 스토리텔링 작업을 했다.

그 시기는 YMCA가 시민운동에서 주민운동으로 담론을 확장하는 시기였다. 당시 아파트 하자 보수 문제가 사회적 이슈 중 하나였다.

1998년께 YMCA도 주민운동, 골목운동,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 생활문제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최봉익 대표가 ‘전라좌도·광주’ 고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부채 작품.

최 대표도 YMCA의 일원으로 아파트 하자 문제 해결에 참여했다. 머리 속에만 맴돌던 도시 공동체 운동으로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YMCA 구성원의 하나로 ‘아파트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연인원 1만명 정도가 프로그램에 참여해 아파트 하자 문제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도시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 때이기도 합니다.”

이후 1999년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다. 아파트 관리를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에서다.

처음 공부할 때는 하자보수에 대한 개념도 몰랐다. 도시화 과정에서 겉으로 보이는 공동체는 멋있지만 그 속은 실질적인 공동체가 아니었다. 소통도, 관계도, 자발적인 구심점도 없었다.

2년간의 스터디 끝에 ‘좋은동네 만들기’라는 책을 선보인다. 이후 강연 요청이 쇄도하면서 나름대로 도시 공동체 이론을 확립한다. 이를 기점으로 최 대표의 도시 공동체 운동은 틀을 잡게 된다.

그가 운영하는 공동체 모닥은 법인도, 등록단체도 아니다. 법인으로 등록하면 지자체나 정부기관에서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있을 터지만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개인 운영을 고수하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모닥불을 지피는 부지깽이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무실에 박달나무 부지깽이를 갖다 놓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최근 수년 동안 쇄도하는 강연 요구에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도시공동체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강연 때마다 강조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없다. 2000년대 이뤄진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 운동의 실패 사례를 되돌아보고 반면교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동안의 공동체 운동,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는 사실상 ‘삶터 만들기’에 그쳤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삶터로서 환경을 개선하는 것에 국한됐다는 것이다. 또 예산이 있으면 하고 예산이 없으면 안하는 모습이 되풀이됐다.

최 대표는 진정한 도시 공동체는 사람 만들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관계 만들기도 중요한 부분이다.

“도시에서 공동체는 아직 일반화되지 않아 추상적이고 막연합니다. 공동체를 연구하는 관련 학자들도 도시 공동체가 언제나 완성될지 모르겠다고 하는 상황 아닙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주민자치는 결국 사람만들기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관계를 형성하면서 결국 거버넌스를 만들어내고 성공적인 공동체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전문가는 교수나 학자가 아니라 주민들이라는 점을 설파한다. 하지만 주민들이 전문가나 ‘박사’라는 평가를 못받는 것은 하지 않기 때문. 주민들 스스로 여러번 시도해보고 손에 익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환경 개선만 할 경우 갓 태어난 아이한테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속가능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7개 원칙이 필요합니다. 주민참여, 민주적인 자치, 계속적인 학습, 미래세대 우선, 마을자원 활용, 네트워크 연계, 지역사회 책임입니다. 또한 가치 지향적인 마을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을이 세상이다, 사람이 희망이다, 학습이 방법이다, 관계가 관건이다, 과정이 방법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최 대표의 꿈과 도시 공동체로서 광주가 나아가야 할 길은 그가 즐겨쓰는 싯구에 오롯이 담겨 있다.

‘길을 걸으면 아름다운 상념이 떠오르는 광주에 살고 싶다. 도심을 흐르는 강은 맑고 거리의 간판은 작아서 오히려 눈길을 끄는 광주에서 살고 싶다. 골목에는 자치가 있어 이웃이 있고 동네마다 개성있는 표정을 담고 황토빛깔 고향 공동체로 회복되는 광주에 살고 싶다. 푸른숲 경관조례가 있어 도시가 온통 숲에 묻혀 광합성하는 광주에 살고 싶다.’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이런 광주의 모습. 시민 개개인이 조금씩만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 우리 곁으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글=김재정 기자 j2k@kjdaily.com

/사진=김기식 기자 pj21@kjdaily.com